[겨울방주 소설] 뽀삐의 일기 50화

뽀삐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배웠어요!

by 겨울방주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은행강아지 뽀삐!


이번 주 뽀삐의 일상은......


아버지와의 작은 갈등과 화해, 한가한 은행과 무거운 정치 뉴스, 졸업 액자와 서울 집회, 그리고 새 교회에서의 담백한 예배까지... 피곤함과 우울 속에서도 ‘나와 가족, 그리고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붙들고 버텨낸 한 주였습니다!










2025년 3월 10일 월요일 맑음 ☀


아침에 밥·약을 먹고 말씀을 읽고 글을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어제 일 때문에 아버지께 한소리 들었고, “폴리텍 대학 같은 곳에서 AI나 신재생에너지 쪽도 알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은행에 도착해 근무 준비 후 9시에 문을 열었다. 팀장님이 오후 늦게 오신다고 해서 나는 13시에 점심을 먹고, 14시에 복귀했다. 오늘은 손님이 적당히 들어오는 정도였고, 16시에 문을 닫았다. 16시 40분쯤 내용증명과 등기우편을 발송하러 우체국에 갔다가 다시 은행에 들렀다. 내용증명 제증명을 분실하면 창구직원·우체국 직원·경비인 나까지 다 같이 피곤해지는 법이라, 영수증만 잃어버린 것과 달리 내용증명 서류 자체는 되도록 내가 직접 우체국에 갔다 와서 창구직원께 바로 전달해야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퇴근길엔 옛날 통닭 한 마리를 사 와서, 집에 와서 씻고 저녁밥과 함께 통닭도 뜯었다. 약을 먹고 누워 영상을 보다 일기를 쓰며,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참 경솔했다. 몸 상태도 좋지 않고, 마음까지 우울한 하루였다”는 생각을 조용히 적어 내려갔다.



2025년 3월 11일 화요일 맑음 ☀


아침에 밥과 약을 먹고, 말씀을 읽고 글을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은행에 도착해 근무 준비 후 9시에 문을 열었고, 오전 고객맞이 도중 정문 SECOM 전등이 켜져 있는 걸 보았다. 처음에는 “영업 시작하면 저렇게 켜지는 게 정상인가 보다” 했는데, 관련 직원에게 확인해 보니 오히려 비정상 상태라고 했다. 9시 1분에 점등을 발견하고, 9시 16분에 다시 꺼진 것을 확인했다. 내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 업무는 큰 문제없이 흘러가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 오후에도 별다른 사건 없이 지나갔다. 16시에 문을 닫고 16시 20분쯤 내용증명과 등기우편을 발송하러 우체국에 갔다가 돌아와, 팀장님 지시로 바로 퇴근했다. 일기를 쓰는 지금에서야 “행낭을 서고에 집어넣지 않고 그냥 퇴근해 버렸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애고애고…’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집에 와서 씻고 밥과 약을 먹고 대학원 공부를 했다. 슬슬 과제를 써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논문 없이 졸업할지, 논문을 쓰고 졸업할지, 2학기 토익 준비와 AI 자격증, 드론·중장비 자격증 재취득까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게다가 윤석환 탄핵이 안 될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기각된다면 헌정질서와 국론분열, 내전 가능성까지 생각해 몹시 불길해진다. “헌정질서를 박살 낸 역적을 그대로 복귀시키는 건 곧 나라를 망치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굳게 하며,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파면되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수십 번 되뇌었다.



2025년 3월 12일 수요일 흐림 �


아침에 밥·약을 먹고 말씀과 글을 읽은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근무 준비 후 9시에 문을 열었고, 고객맞이 도중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하루 종일 기운이 없고 우울한 느낌이었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 오후 근무도 별 탈은 없었다. 16시에 문을 닫고 16시 33분경 팀장님 지시로 행낭을 서고에 제대로 넣고 퇴근했다. 가는 길에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부치고, 집에 와서 씻고 밥을 먹고 약을 먹은 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부터는 ‘감정일기’를 따로 써보기로 했다. 감정이라는 부산물을 글로 꺼내어 따로 담다 보면, 우울감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퇴근길 피로감이 엄청났고, 저녁에는 또 줌 화상 모임이 예정되어 있어 “피곤해도 모임 끝나고 바로 자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근무 중에도 논문을 조금씩 읽으며 “논문 읽기와 감정일기 쓰기를 꾸준히 해야, 이 우울감을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2025년 3월 13일 목요일 맑음 ☀


아침에 밥·약, 말씀·글쓰기 루틴을 마치고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은행에 도착해 근무 준비를 마치고 9시에 문을 열었지만, 오전 내내 멍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정신이 쏙 빠져나간 것 같은 피로감 탓에 업무에도 살짝 지장을 받았고, 핸드폰을 자꾸 들여다보는 습관도 한몫 해 앞으로 조금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한 뒤, 오후엔 무난하게 고객맞이를 이어가다가 16시에 문을 닫았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급히 와서 “달러 환전해야 한다, 전화도 했었다”라고 주장했다. 황당했지만 전화를 했다고 하시니 내보내기도 애매해 들여보내려 했는데, 주차하겠다며 정신없이 신분증까지 내미는 통에 “일단 주차부터 하고 오세요” 하고 신분증을 돌려드렸다. 십수 분 후 아주머니가 다시 들어와 환전을 진행했는데, 달러, 바트 등 여러 통화를 섞은 복잡한 환전이라 창구 직원분이 조금 짜증을 느끼신 듯했다. 그 후 동료와 “아까 그 아주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길래 괜히 내가 죄송해져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죄송해요”라고 했지만, 직원분은 “당신이 죄송할 일은 아니다”라고 다독여 주셨다. 16시 50분에 퇴근해 학교에 들러 회장님께 인사하고 졸업사진 액자를 수령했다. “내 인생 첫 정식 대학교 졸업사진”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먹을 것을 사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 먹기 전에 일기를 먼저 썼다.



2025년 3월 14일 금요일 맑음 ☀


아침에 밥·약을 먹고 말씀을 읽고 글을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은행에 도착해 근무 준비 후 9시에 문을 열었고, 오늘은 고객맞이와 창구 안내 외에는 별다른 사건이 없었다. 손님 없을 땐 자리에 앉아 뉴스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12시에 점심을 먹고 잠깐 쉬었다가 13시에 복귀했다. 오후에도 무난하게 흘러가다 16시에 문을 닫고 대기했고, 팀장님 지시로 16시 43분쯤 퇴근해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부친 뒤 마트에 들러 손목·팔꿈치 보호대, 케이크, 팥빵, 아몬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씻고 밥을 먹고 유튜브를 보다 밤늦게 일기를 쓰며, “내일은 서울에 올라가 참여연대 총회도 하고 집회에도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윤석환이 결국 파면될 거라는 믿음은 있지만, 그동안 저지른 일들을 떠올리면 국민 모두가 노이로제 걸릴 판이고, 나 역시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만약 이 상황이 더 나빠지면, 타국으로 망명까지 생각해야 하나?” 하는 상상도 했다. 영어가 어느 정도 되니, 낯선 땅에서도 조금만 고생하면 먹고는 살 수 있을 것 같은 불안 섞인 자신감도 함께였다.



2025년 3월 15일 토요일 비 �


아침에 밥·약을 먹고, 아버지 생신이라 꺼내둔 생일 케이크를 바라보며 잠시 쉬었다. 씻은 뒤 공항으로 가 서울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서울 도착 후 YMCA 건물에 도착했지만, 한참 기다려도 모임이 시작될 기미가 없어 다시 공지를 확인해 보니 장소는 YMCA가 아니라 YWCA였다. 글자 하나 제대로 안 보고 잘못된 건물로 가버린 것이다.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YWCA로 이동해 참여연대 총회에 지각 입장, 안면 있는 활동가분께 인사하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총회에서는 일정 기간 이상 활동한 활동가들에게 공로패가 수여되고, 사업·회계 보고와 각종 안건 처리가 이어졌다. 총회가 끝난 뒤 광화문으로 이동하는 길에, 친애하는 동글동글한 여성 강아지 활동가가 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 한 분을 소개해 주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광화문 정부청사 옆에서는 비상행동 집회에 합류해 “윤석환 파면!” 구호를 힘껏 외쳤다. 민주연대당 배지도 달고, 마음을 모았다. 18시 30분에 활동가분들께 인사하고 5호선 지하철로 김포공항으로 이동, 중간에 공덕역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타 19시 21분쯤 공항에 도착했다. 보안검사를 마치고 게이트로 가서 비행기에 탑승해 집 가까운 공항에 내려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씻고 밥·약을 챙긴 뒤, 일기를 쓰며 “오늘도 정말 피곤했다, 이제 빨리 자야겠다”라는 말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2025년 3월 16일 일요일 비 �


아침에 밥·약을 먹고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새로운 교회에 갔다.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설교였다”라고 평가했고, 한 장로님의 기도가 지금 시국에 딱 들어맞는 기도였다고 이야기하셨다. 131년 역사를 가진, 일제강점기 불의에 맞서 싸웠던 역사를 품은 교회라는 점이 마음을 더 무겁게 울렸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약을 먹은 뒤 푹 쉬다가, 저녁을 먹고 또 약을 먹고, 부모님과 함께 넷플릭스로 영상을 보고 밤늦게 일기를 썼다. 오늘은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족과 함께 예배드리고, 집에서 조용히 식사하고, 영상을 보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느끼게 되는 하루였다.











다들 힘내서 다음 주도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힘차게 달려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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