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달이(2)
"달이야 달이야....."
할머니의 애처로운 부름이었다.
방에서 나와서 할머니방으로 갔을 때
할머니는 이미 뒤로 발라당 넘어가 있었다.
할머니는 자주 아팠고,
자주 뒤로 넘어졌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균형을 잘 잡지 못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 앉아 텔레비전을 보시다가도
어느 순간 예고 없이 뒤로 넘어지곤 했다.
할머니가 뒤로 넘어가려는 순간이면
나는 먼저 두 팔을 붙잡아 살짝 앞으로 일으켰다.
그다음 얼른 몸을 옮겨 할머니와 등을 맞댔다.
작은 등으로 할머니를 밀어내듯, 앞으로 바로 세웠다.
열 살짜리 아이가 하기엔 꽤나 버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할머니를 살폈다.
마치 보호자처럼 내 시선은 늘 할머니에게 머물러 있었다.
‘할머니가 뒤로 넘어지다가 머리를 부딪히면 어떡하지.
그럴 일이 없어야 하는데 …'
처음에는 진심으로 걱정했다.
하지만 넘어지는 일이 반복될수록,
어린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어린아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고,
그 불안 속에서 지내던 나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그 감정이 폭발해 버리는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때와 같이 함께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있었고,
할머니는 점점 뒤로 밀리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소리쳤다.
" 아 또! 할머니 왜 그래!! "
그날은 유난히 짜증이 났고,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했다.
늘 하던 것처럼 두 팔을 잡아 일으켜 세우는 게 아니라,
할머니 뒤로 돌아가 두 다리로 등을 받쳤다.
손도, 마음도, 아무 힘도 쓰고 싶지 않았다.
뒤로 넘어진 할머니는 내 두 다리에 어정쩡하게 기대 있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만 삼켰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싫었다.
‘엄마아빠 보라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할머니가 넘어지는 척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할머니를 다리로 받치고 있는 내 행동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다리를 떼어내고
평소처럼 등을 맞대 밀어 할머니를 바로 세웠다.
할머니는 평소에도 고모들에게
엄마에 대한 사실이 아닌 말을 전하곤 했다.
그래서 그날도, 거짓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엄마를 이유 없이 미워하던 할머니였기에,
넘어지던 그 순간의 할머니가 유난히도 밉게 느껴졌다.
이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그 이후로 할머니는 뒤로 넘어질 때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넘어진 채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저 조용히.
하염없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아.. 아... 할머니... 왜 이러고 있어요!!
나 부르면 되잖아!! "
뒤로 넘어가 있는 할머니를 마주 한 순간,
내가 아주 나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날의 내 행동은 할머니에게 분명 상처로 남았던 것 같다.
미안함과 속상함이 뒤섞인 할머니의 몸은
이전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할머니가 싫었다.
아니다,
사실은 너무나 사랑했다.
그래서 더 애를 썼다.
“내가 죽어야지.”
엄마와 다툰 날이면
할머니는 늘 같은 말을 남기고 잠들었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나는 더 긴장했다.
혹시라도 할머니가 그대로 숨을 멈춰버릴까 봐.
곤히 잠든 할머니의 배가 오르내리는지 바라보며
코 밑에 손을 대어 숨이 느껴지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밤,
불안을 베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