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는 아이가 되었다.

할머니와 달이(1)

by 달이

28살인 나는 지금 꽤 예민한 사람이다.

감정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하지만 어렸을 적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냥 잘 웃는 아이였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고민이라야

내일은 친구랑 떡볶이를 먹을지, 슬러쉬를 먹을지

그 정도였을 것이다.


내가 고민이 아닌,

걱정을 하기 시작한 건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는 이웃한 두 집을 베란다로 연결해 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오빠는 한 집에 살았고,

나와 할머니는 다른 집에 살았다.


공간은 나뉘었지만 밥은 늘 다섯 식구가 함께 먹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산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할머니에게는 다섯 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중에서 할머니를 모시겠다고 한 사람은 아빠뿐이었다.

다른 자식들은 할머니를 자주 찾아오지도,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아빠가 할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한 엄마의 결정이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엄마를 미워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늘 싫어했다.


할머니는 툭하면 고모들한테 엄마 흉을 봤고,

일어나지도 않은 얘기들을 했다.

그러다 보니 고모들도 엄마를 미워했고,

어느새 동네에는 이상한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엄마가 할머니를 내쫓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싫었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를 욕하는 할머니가 너무 미웠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를 미워할 수 없었다.


할머니와 살을 맞대며 함께 잠들었고,

뻥튀기를 먹으며 전국노래자랑을 봤다.

맛있는 게 생기면 오빠보다 나를 먼저 챙겼고,

맞벌이하던 부모님 대신 대부분의 시간을 나와 함께 보냈다.


나에게 할머니는

제2의 엄마이자, 친구였다.

그렇기에 그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다.


엄마를 욕하는 할머니.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엄마.

그 둘을 지켜보는 나.


나는 그때 고작 열 살이었다.



어느 편에도 설 수 없었다.

누군가의 편을 들면

다른 누군가에게 미움받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눈치 보는 아이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으로 생리를 시작했던 날,

속옷에 묻은 피를 보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걸 화장실 대야에 숨겼다.


몸에서 피가 난다는 것도 낯설었고,

이유 없이 울렁거리는 마음에 엄마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다.


할머니는 그걸 발견해

말없이 빨아 널어주셨고,

퇴근한 엄마에게 말했다.


"어미가 돼서 딸이 생리를 하는 것도 몰라? "


실수는 내가 했는데, 화살은 엄마에게 향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내가 죄인인 것 같았다.


부끄러움, 두려움,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그대로 꾹 눌러 닫았다.

그때부터 나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대로.


기분이 상해도 웃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삼키며
그렇게 눈치 보는 어른이 되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나치게 눈치를 보게 된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어릴 때부터 눈치 보는 아이로 자라왔기 때문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문은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로
열릴 수 있다는 걸.


그때의 나에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그 말을
이제는 내가 해주려 한다.



괜찮아.
이제는 눈치 보지 않아도 돼.


네 옆에 내가 있어.

넌 혼자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