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타일은 왜 안쓸까? (2)

아파트라는 달콤한 유혹 - 1

by Munthm 지오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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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70년대 강남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업은 건설관련 업종이기도 하고, 한국 건설업의 역사는 사실상 강남 개발 전과 후로 나뉘기 때문에 강남과 아파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입니다. 한국 경제의 근간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전통 재벌/대기업들은 전쟁 전후 모태가 설립되고 1960년대 정부의 본격적 성장 우선 전략 기조에 힘입어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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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설명했던 한국의 메이저 요업사들은 '대기업'들이 자리를 잡을 시점에 모두 생겨났습니다. 대한민국 최초는 보통 계림요업을 꼽는 경우가 많은데 회사로서 창립된 것은 1967년. 건설업으로 사업을 일으켰던 대림 (현 DL)의 자회사로 1971년 편입되며 사업에 탄력을 받았던 대림요업의 모체는 1966~1968년에 설립되었으니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설립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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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에는 현재 inus 로 사명을 변경한 동서산업이 현대건설의 자회사로 출발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쯤되면 감이 오시겠지만, 여의도 시범아파트 등을 시작으로 전국에 아파트 건설 붐이 일고,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던 시점에 요업관련 회사들이 설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현재 개발을 활발히 하고 있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개발도상국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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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을 유치하며 폭발적으로 경제가 성장했던 1980년대에는 이른바 '파동'이 일어날 정도로, 건설자재는 부르는 게 값이요, 특히 위생도기 (양변기) 등은 깨지지만 않았으면 쓰던 제품도 떼다가 팔아서 준공부터 받고보자 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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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요업사들의 기술력은 당시 태국 제조사들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국산제품을 사용하면 물이 안내려간다는 강한 불신이 있었고, 이는 2000년대 중국인도 싫어하는 중국 제품 시대 처럼, 1980년대는 국산 제품을 한국인들이 제일 싫어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역시 1편에서도 나왔던 토토와 손을 잡고 기술 협력을 했던 회사가 바로 계림요업. 그러자 대림에서는 INAX 그룹과 기술제휴를 통해 맞불 작전을 놓았고, 동서산업 역시 이탈리아 회사들과 기술 제휴를 맺었습니다. *동서산업은 이 3사 중에서 위생도기 기술력이 가장 떨어지며, 대신에 타일을 생산하고 있었기에 타일 부문에서의 매출이 잘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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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술력도 올라오고,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의 수출이 호황기에 접어들자 한국의 요업 회사 (위생도기/타일)들은 해외 수출까지 박차를 가하며 90년대에는 본고장 이탈리아 박람회 까지 진출할 정도로 사세를 확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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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같은 시기, 점차 경제를 개방하고 있던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가 1992년 8월 24일 이뤄집니다. 이후 국내 요업계는 서서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는데요, 물론 이 이후 무려 20여년 간을 위상을 떨치기도 했는데 그것은 사실 제 살을 깎아 먹으며 성장을 해왔던 것이죠.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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