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는지를 되짚어봤다. 10년 전에 평범한 대학생 시절, 한창 스펙 쌓기 열풍이 불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이력서를 한껏 뽐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니, 하고 나서도 고민하던 시기였다. 토익 준비해야지, 공무원 준비해야지, 공기업 취업해서 높은 연봉에 정년퇴직해야지. 하지만 나는 그것들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조금이라도 좋은 회사를 다니고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그렇게 매력적인 인생은 아니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친누나 덕에.
우리 누나는 소위 말하는 좋은 스펙과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교를 졸업했고, 덕분에 삼성에 입사했다. 이 누나가 얼마나 독한지는 우리 가족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가족이 돈 한 푼 없던 시절에 장학금을 타고 성균관대학교로 진학했고, 과외로 돈을 벌어 스스로 중국 유학을 갔다 오고, 삼성에 입사하고 나서도 국제공인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새벽까지 공부하고 다시 출근했다. 참고로 삼성을 다니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그곳은 업무강도와 스트레스가 굉장히 센 편이다. 그렇게 높은 연봉을 받아도 2년 차부터 스스로 퇴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할 정도로 견디기 힘든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 걸 다 이겨내면서 새벽 3시까지 오피스텔에 혼자 공부를 했던 것을 보면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했다. 당시 입사 7~8년 차였던 누나가 대학생인 나에게 한 말은 큰 울림을 줬다.
회사에 다니는 것 말고 다른 것도 생각해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야.
남들이 토익 공부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공기업 취업 스펙 쌓고, 자소서를 하염없이 채우고 있을 동안에 나는 잘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나갔다. 흥미로운 일들은 모조리 '경험'해보자는 것이 내 대학시절 목표였다. 오피스타운에 있는 대형 커피샵에서 커피도 내려보고, 방송국에서 카메라팀에 들어가 방송 현장이 어떤지도 촬영 현장도 직접 보고, 롯데호텔 레스토랑 서버를 하면서 화려함에 감춰진 극심한 스트레스도 느낄 수 있었다.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일하면서 공기업 같은 삶이 무엇인지도 배웠고, 거기서 SK재단 최태원 회장을 실제로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굉장히 인상 깊었다. 너무 영화 같은 등장이었다. 검은 세단 두 대가 학교 정면에 서있었고, 전부 통일된 검은 양복차림의 최태원 회장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경호원들, 그리고 고위급 인사들로 보이는 40~50대의 신사 열댓 명이 단체로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비즈니스맨인 아버지에게 많은 교훈을 듣고, 삼성 이병철 회장과 현대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을 읽고, 수백억짜리 집에 사는 미국 부자들의 삶을 영상으로 보면서 주변 또래 친구들과는 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다들 경제적인 '성공'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에, 나는 오히려 나만의 성공을 정의했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첫 번째, 나만의 전문적인 분야를 확실히 다져놓는 것. 두 번째, 그 분야로 충분한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 이 두 가지였다.
일단 남들처럼 살기는 싫었다. 졸업하면 최대한 안정적이면서 연봉 높은 곳으로 취업하고, 정착하면 결혼하고, 애 키우고... 너무 뻔한 삶을 사는 것은 내가 죽기 전에 큰 보람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한몫을 했다.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것에 별 생각을 하지 않을 때, 나는 독특하게도 조금 인지를 더 자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특히 우주과학 관련 책과 역사책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면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덧없는 먼지 같은 시간으로 끝나는 지 마음 전체가 허무할 정도로 상세하게 보여준다. 역사책에서는 제 아무리 금은보화를 갖고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냈어도 결국엔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관 속에 들어가기 전에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천편일률적인 삶보다는 스스로 방향을 개척하는 '파이오니어(Pioneer)'같은 삶을 살고 싶었고, 감사하게도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나는 '영어'가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것이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더 날카로운 나만의 무기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원어민 회화수업에 들어가 내 실력을 스스로 검증하기 시작했고, 그 강사가 나에게 영어실력이 충분하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면서, 눈길을 해외로 돌리기 시작했다. 유럽의 삶, 미국의 삶. 그들은 과연 우리와는 얼마나 다른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다르게 생각할까? 이게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유럽으로 혼자 한 달 동안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체코를 돌아다녔고, 거기서 정말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다. 프라하에서 스카이다이빙도 해보고, 로마 스페인 광장에서 패션쇼도 보고, 파리에서 아침에 먹는 갓 구운 크로아상이 얼마나 맛있는 지도 느꼈고, 런던 리젠트파크를 걸으면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공원을 눈에 담아보기도 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시카고, 뉴욕, 로스엔젤레스, 마이애미를 여행하면서 미국이 진정 '천혜의 환경과 자원을 갖춘 나라'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물론, 물질적인 욕구도 전부 해소했다. 특히 패션, 와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다. 그래서 런던이나 파리에서는 디자이너들의 스토어 본점도 많이 돌아다녔고, 멋스럽게 꾸며놓은 대형 편집샵이나 갤러리 라파예트 같은 백화점도 구경했다. 그러면서 평소에 정말 갖고 싶었던 모든 옷들, 신발들, 선글라스, 악세사리들을 전부 사모았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작년부터 와인을 많이 마시기 시작하면서, 프랑스 보르도, 뽀므롤, 론, 부르고뉴, 그리고 이태리 피에몬테와 투스칸 와인들에 푹 빠졌다. 최근에는 평소에 너무 먹고 싶었고, 그리고 가족들과 나눠마시기 위한 프랑스 보르도 1등급 와인 오브리옹과 무똥로칠드를 수집하고, 마셔보았다. 이 정도면 나는 충분히 인생에서 하고 싶은 쇼핑을 다 끝냈다. (물론 와인은 마셔도 끝에 없고, 그리고 아직 꼭 마셔야 할 와인이 남아있긴 하다. 이태리의 마세토, 뽀므롤의 페트뤼스, 샹베르땡의 아르망 후쏘, 그리고 대망의 꽁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생각의 차이'였다.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물론 중간에 정말 말도 못 할 힘든 시련도 있었지만, 다 이겨내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끝내 도달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겸손하게 하고 있는 일들에 충실하면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