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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n 15. 2022

슬기로운 실음과 생활-01합주편

01. 합주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고, 다양한 수업들을 선택할 수가 있었는데, 당시 피아노 실력도 부족하고

신시사이저에도 문외한이었던 나는 합주 수업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처음 보는 선배들과 동기들 사이에서 내 실력을 보여줘야 된다는 부담감에 겁이 나서 선택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처음부터 합주 수업을 선택하지 않았던 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개강하고 첫 합주에 가사를 제대로 숙지 못한 동기들은 선배들에게 쫓겨 나가기 일수였고, 합주실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지 않는 날에는 합주 수업을 듣는 학생들 전체를 불러 모아서 기합을 주는 시간들도 있었다.

 그렇게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받는 동기들을 보면서, 나는 합주에 대한 거부감이 더 생기기 시작했으나,

'위클리'라는 주간 발표 수업 때 교수님께 지목을 당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합주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첫 합주는, 생각보다 그렇게 무섭지 않았던 분위기였다. 사전에 내가 합주를 많이 하는 연주 전공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면 친구들이 보다 편하게 합주를 준비할 수 있는지 꼼꼼하게 물어보고,  전공별로 악보를 찾아서 직접 보내주고, 음원과 링크도 꼼꼼하게 보내줬기 때문이다.

 이처럼, 합주를 하게 되면(합주를 부탁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어떤 가수의 어떤 버전의 음악을 연주할 것인가'를 정확히 알려줘야 한다. 특히 리얼북에서 나올 법한 유명한 재즈곡의 경우, 다양한 아티스트가 연주하고, 그 아티스트들도 무대마다, 앨범마다 각각 다른 연주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보컬들이 가요를 요청할 때 '워낙 유명한 곡이니까 그냥 악보만 주면 되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앨범이나 버전, 링크들을 첨부하지 않는 실수를 한다. 요즘은 기존에 잘 알려진 가요들도 방송마다, 그리고 각종 라이브 버전과 유튜브에 나온 영상마다 키가 달라져 있을 수도 있고, 스트리밍 플랫폼에 올라간 원곡에는 나오지 않는 연주들이 가끔 나오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와 함께 링크를 꼭 첨부해주는 것이 좋다.

 또한, 합주를 들어가기 전에 악기에 대한 간단한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 '어떤 음색'을 연주해야 하는지, '어떤 주법'을 쓰는 게 좋은지 등등 본인이 원하고자 하는 부분을 음악적인 용어를 통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서로 간의 음악적 의사소통이 되면서 원활한 합주가 이루어진다.

  만약에 이런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연주하는 사람들도 답답하고, 요구하는 사람도 답답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원하는지 ' 하나하나 다 쳐보고 맞는지 아닌지를 찾아 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합주는 합주 전에 주어진 음악과 악보를 보고, 각자 충분히 카피와 연습 후에 만나서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런 시간 낭비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합주의 질이 떨어질 수가 있다.

 이렇게 어렵고, 신경 써야 할 게 많은 합주지만, 그럼에도 밴드를 하고 합주를 하는 이유는, 음악을 연주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의 눈빛으로 조금씩 맞춰나가는 연습을 하다 나중에 정확하게 서로의 연주가 맞아떨어질 때, 그 찰나의 시간 속에서 나오는 카타르시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무대에 올라갔을 때는 그 쾌감이 열 배는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동안 나도 몇 년간 밴드 활동을 하면서 느낀 건, 여러 사람과의 의견과 소통 속에서 교집합을 맞춰 나가야 되는 어려운 과정이지만 그럼에도 서로가 하나가 된 듯한 그 기분 때문에 밴드가 싫다가도, 가끔 밴드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는 영상을 보면 밴드가 하고 싶어 진다.

 직업이든 취미든, 밴드를 하는 많은 분들께, 그리고 합주를 하는 많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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