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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부끄럽지 않으려면

by 피큐


중학생 시절,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출간되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어른들은 우리더러 이런 사회를 남겨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만큼 세상이 나아졌으면 좋으련만. 그다음에는 3포 세대, N포 세대, YOLO 같은 말들이 차대로 유행했다. 그리고 어느새 내가 미안해할 어른이 되었다.


유독 미안한 마음이 큰 사람이 있었다. 그 당시로는 드물게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하는 여성이었다. 이제 와 추측건 주근깨가 그대로 보이는 하얀 얼굴, 남자가 입을 법한 검은 양장 옷을 보고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종업식날 내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선물해준 그녀는 나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몇 학생들을 모아 토론회를 주최했다. 우리는 88만원 세대나 <메트릭스 트릴로지>, <트루먼쇼> 등을 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을 알려주었다. 순응하지 않을 것, 이웃에게 관심을 가질 것. 마치 키팅 선생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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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사립학교 웰튼 아카데미는 모든 것이 입시 결과로 판단되는 사회였다. 웰튼 아카데미에 새로 부임한 영문학 교사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입시 교육 외의 것들을 가르친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그는 교탁 위에 올라가 세상을 다르게 보라고 말하고, 시와 인생,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말에 마음이 움직인 학생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닐이었다.

엄격한 아버지의 명령에 순응하며, 자신의 꿈도 모른 채 살아가던 닐은 연극이라는 꿈을 처음으로 품었고, 무대에 섰다. 그 무대는 그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가 된다. 부모의 반대 끝에 그는 결국 스스로 세상과 작별한다.


닐의 비극에 대한 책임 소재가 필요했던 튼 아카데미는 키팅 선생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부조리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제자들은 키팅 선생님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가 떠나는 순간, 교실은 다시 침묵에 잠긴다. 그런데 그때, 한 명의 학생이 조용히 책상 위에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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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캡틴, 마이 캡틴.”

니일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토드였다.

그를 따라 또 한 명, 또 한 명. 책상 위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스스로의 의지로 일어섰다. 작용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반항이 아닌, 우리는 선생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으로서의 행위였다. 웰튼 아카데미는 앞으로도 명문 입시 학교로서 존재하겠지만, 이전과는 같지는 않을 것이다.


종업식날, 선생님이 주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책은 선생님이 한때 열 번 이상 읽고, 베껴 쓰던 '고전'이란다. 3학년 교과서에도 실려 있지. OO이라면 언젠가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며 가슴 아파하고 분노할 수 있을 거야. 다른 사람에 대한 동감과 이해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덕목이 또 있을까? 지금보다 더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OO이를 기대하며.'


나는 그 말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선생님이 기대하던 멋진 어른이 되었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가르치며 살고 있을까.


오늘, 나는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혹시라도, 그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있다면 나는 조금 덜 미안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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