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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 진짜로

꿈을 기다리며, 현실을 안아보는 연습

by 피큐


어린 시절, 엉뚱한 꿈을 꿔보지 않았었나? 거대한 수박으로 만들어진 수영장에서 수영을 한다거나, 공룡을 키운다거나, 선택받은 아이가 되어 디지털 세계를 여행한다거나. 그중 단연 가장 많이 꿈꾸고, 가장 간절히 바던 꿈은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헤엄칠 수 있을 정도로 큰 수박은 없을 뿐더러, 몸이 끈적해지는 문제도 있고, 공룡알은 아무리 마트 신선칸을 찾아봐도 없었다. 디지몬은 TV에나 나오는 만화 세상 속 얘기였고 아무리 그래도 TV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진 않았다. 이러한 이유들로 부엉이가 배달해 주는 호그와트 입학통지서는 나름대로 가능성 있는 현실적인 꿈이었다.


무엇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첫 영화가 개봉했을 무렵, 나도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이였다. 얼추 내가 학년이 바뀌는 주기로 다음 책이나 영화가 공개됐었다. 그래서 그런지 함께 성장한다는 일종의 동질감이 생겼다. 머글 사회에서 자란 마법사.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던 나는 머글의 세계에도 마법사 세계에서도 겉도는 해리와 함께 성장한다는 동료의식이 생겼다.


사실은, 아직도 어딘가로 오배송된 호그와트 입학통지서를 기다리고 있다. 늦잠을 잔 날, 순간이동 마법으로 출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지, 시간을 돌리는 타임터너로 지난 실수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 사랑의 묘약만 있었다면. 지구 어딘가에서 멍청한 부엉이 덕분에, 아직도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입학통지서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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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일본에도 진심으로 기적을 믿는 아이가 있다. 가족이 다시 함께 살 수 있 화산 폭발을 소망하는 아이,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은 코이치의 소원으로 시작한다. 엄마와 아빠의 이혼으로 떨어져 살게 된 코이치네 가족. 코이치는 엄마와 함께 가고시마로 동생인 류는 아빠와 함께 후쿠오카로 간다.


코이치가 살게 된 가고시마는 매일 같이 화산재가 떨어지는 화산 지역이었다. 툭하면 떨어지는 화산재에 널어놓은 빨래가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답답하게 쓰고 다녀야하는 마스크, 취소되는 체육 수업까지, 마음대로 안 되는 일 투성이었다. 코이치의 마음에도 점점 화산재가 쌓여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 다른 신칸센 열차가 교차하며 달리는 순간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하며 기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코이치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만약 화산 대폭발이 난다면, 가고시마 사람들은 피난을 떠나야하고, 그러면 우리 가족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코이치는 친구들과 함께 기적을 빌기 위해, 신칸센이 교차하는 지점을 향해 모험을 떠난다.


코이치의 친구들도 간절히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 렌노는 죽은 반려견을 되살리고 싶었고, 타스쿠는 아빠가 파칭코를 그만두고 조금이라도 변하길 바다. 동생인 류가 여배우가 되고 싶은 친구, 그림을 더 잘 그리길 바라는 친구, 달리기가 더 빨라지길 원하는 친구를 데려왔다. 기적을 바라는 일곱의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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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신칸센 교차 지점에 도착한 아이들, 있는 힘껏 각자의 소원을 외친다. 누군가는 죽은 강아지가 돌아오길, 누군가는 꿈을 이룰 수 있길. 열차가 지나가며 나는 굉음에 지지 않도록, 목청이 터져라 외치는 말은 모두 달랐지만 마음만은 모두 같았다. '이루어져라. 이뤄져라. 이뤄져라.'


열차는 지나가 버린다. 아주 빠르게. 아주 요란하게.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가 돌아온다. 죽은 강아지는 여전히 숨을 쉬지 않고 차가워졌다. 렌노는 덤덤히 집에 돌아가 마당에 묻어주겠다고 말한다. 코이치는 동생에게 아빠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지만, 어쩐지 마음은 가볍다. 무언가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내려놓을 수 있게 된 하루. 아이들은 그렇게 인정하며 내려놓으며 성장해 나간다. 어린 시절엔 늘 뭔가가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누군가가 나를 데리러 오거나, 갑자기 세상이 바뀌거나, 기적처럼 무언가가 풀리거나.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뤄내는 것일지 모른다.


PS. 입학통지서를 잃어버린 부엉이에게. 그래도 지금이라도 배송이 오면 용서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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