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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대한 애도와 찬미

<퍼펙트 데이즈>, <패터슨>을 보고

by 피큐


아, 벌써 집에 가고 싶다. 오늘도 전철을 탄다. 아직 회사에 도착도 안 했는데 집에 가고 싶다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회사에 가는 시간만 1시간 30분이 넘게 걸린다. 경기도인은 인생의 20%를 지하철에서 보낸다던데. 겨우 20%? 적어도 3할은 쓰지 않을까? 길에서 보내는 이 시간을 모아서 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영화도 보고 책도 읽을 수 있을 텐데.


상봉, 군자 환승역마다 점점 승객들이 들어선다. 좁은 차량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옴짝달싹 못 할 것 같던 공간에 사람들이 밀고 들어온다. 전철의 흔들림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리던 몸도 멈출만큼 짜부가 됐다. 불쾌한 체취와 호흡으로 물먹은 공기, 의도하지 않은 접촉. 진땀이 흐른다. 매일 같은 출발점과 같은 도착점, 차창 밖으로 똑같이 스치어가는 검은 풍경. 지겹다. 기상 - 출근 - 퇴근 - 취침으로 이어지는 하루. 오늘 자 일기에 쓸 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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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의 화장실 청소부다. 중년의 그는 옆집의 마당 쓰는 싹싹 빗질 소리에 눈을 뜬다. 작업복을 챙기고 현관에 순서대로 놓여있는 필름카메라, 자동차 열쇠, 화장실 열쇠, 동전 무더기를 차례대로 챙겨 나선다. 낮에는 공공시설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다가, 필름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를 통과하는 햇빛을 찍는다. 퇴근 후에는 단골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귀가 후에 책을 읽다가 잠에 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옆집의 빗질 소리에 눈을 뜬다.


한편, 미국 뉴저지에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이 있다. 그는 매일 정해진 노선을 따라 운전을 한다. 오늘과 내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애완견과 산책, 단골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에게 한가지 취미가 있는데 비밀 노트에 시를 창작하는 것이다. 하라야마는 사진으로 패터슨은 시로 자신의 하루를 남긴다.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와 <패터슨>의 패터슨 두 인물은 닮은 듯 다르다. 히라야마는 숨겨진 과거를 품은 채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히라야마는 강박적으로 루틴을 지킨다. 무탈한 하루를 보내는 것만이 그의 목표인 듯하다. 반면 패터슨은 반복된 일상을 지겨워하는 듯하지만, 그 속에서 리듬과 변주를 발견하는 인물이다. 반복되는 인생은 그에게 있어 커다란 비유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일상 애도하고 <패터슨>은 일상을 찬미한다. 두 영화는 반복되는 일상을 무대로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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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이 없으면 변주도 없다. 매일 같은 듯 흘러가지만, 그 안에는 다른 결이 숨어 있다. 나는 여전히 전철 안에 있다. 내일도 같은 출발점, 같은 도착점일 것이다. 자양과 청담 사이, 창밖으로 환한 빛이 스며든다. 오늘도 같은 풍경을 마주한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아침 일찍 산책하는 사람들

비가 그친뒤 자전거 타는 사람

둥실둥실 떠다니는 오리배

붉은 노을빛으로 물든 수면

삼삼오오 모여 돗자리를 편 사람들


매일 다른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오늘도 어제와 닮았지만, 똑같지는 않다. 지나치는 풍경마다 이야기가 있다 생각하면 스쳐 가는 모든 것들이 조금은 소중해진다.


나도 누군가에겐 위안이 되는

배경이었기를 바라며—


오늘은 일기를 써봐야지.



written by.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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