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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목은 또 뭐라고 하지?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고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고

by 피큐


농땡이나 부리면서 슬슬 써볼까. 맥주를 마셔서 얼굴에 열이 오른다. 얼굴도 조금 빨개졌을까? 약간의 피곤함과 주말이 사라지고 있다는 초조함도 느껴진다. 아 왜 이렇게 벌려놓은 일들이 많을까.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걸까. 내일까진 에세이를 한 편 완성해야 하고, 화요일까지는 뉴스레터 원고를 써야 한다. 겨울에 진행할 텀블벅 프로젝트의 원고도 준비해야 하고, 사진 수업에서 주어진 과제들도 있다.


게으름과의 줄다리기 대결에서 밀린 시간들이 미워진다. 그냥 적당히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뿐인데. 무자비한 시간에 쫒기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들이라 불평할 수도 없다.


아, 혼잣말을 너무 많이 했나. 시간은 부족한데 도저히 글이 시작되지 않는다. 평소에 나는 글 구조를 다 짜놓고 쓰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기로 한다. 술기운이 적당히 올라와서 그런가? 이것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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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봤다. 이번 달 뉴스레터에 소개할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한 지역에 살고 있는 소년과 미국인 간의 애x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졌다. 한여름 밤의 꿈 같이 아름다운 이야기. 나는 술이나 퍼먹고 이렇게 퍼질러져 있는데, 그들은 열성을 다해 여름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무더운 여름이 화면을 한가득 채운다. 뜨겁지만 따갑지는 않은 햇볕,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빨갛게 익어가는 과일들. 아 여름은 이토록 다채로운 계절이구나. 저런 여름을 지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질투심에 열감이 더 오른다.


나는 시간이 억지로 밀어내는 데, 저들은 그들의 시간을 유영하는 것 같다. 머리까지 올라온 열과 술기운을 주인공 엘리오와 올리버처럼 물로 좀 식혀볼까? 여름답게 그들은 수영을 많이 한다. 아, 이거 안 하던 방식대로 쓰려니 쉽게 이어지지가 않네.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지. 엘리오와 올리버처럼. 그들은 이 관계가 일시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엘리오는 계속 이탈리아에 남아 있어야 하지만 올리버는 여름이 지나면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상처가 될 것을 걱정하기보다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아 지금의 나보다 머리가 더 뜨거웠던 건 저들이구나. 제 정신이었다면 저런 사랑을 할 수 있었을 리 없어.


"낭비한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요. 왜 티를 안 냈어요?" 엘리오는 애정 섞인 투정을 부린다. 이런 말을 듣는다면 상대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지나간 시간이 아쉽다니, 이 얼마나 미친 사랑인가. 사랑하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저들도 지나가는 시간이 무섭고 아까웠구나. 지나 본 뒤에야 이름 붙일 수 있는 시절도 있다지만, 때로는 지나기 전에도 사라질 것을 아는 시절이 있구나. 여름은 가을이 오기 전에도 여름인 걸 아는 것처럼. 청춘도 그런 건가보다.


우리네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누구나 삶에 끝이 있다는 걸 알잖아. 그러니까, 시간이 부족하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사랑하자. 엘리오와 올리버처럼. 내일의 출근을 위해 오늘의 술주정은 여기까지.




written by.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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