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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넌 개자식이야

by 피큐



'지금까지 대화를 바탕으로 나를 설명해 줘.'


챗GPT에게 이렇게 물어보니 나를 한 문장으로 간단히 정리해 줬다. 심지어는 나의 무의식까지도 분석해 준다. 나란 인간은 이렇게 간단히 정리되는 사람이었나?


때론 자기조차 파악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위탁하고 싶을 때가 있다. 복잡하려면 한없이 복잡한 인간인 나.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나. 누군가가 말끔하게 정리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은 나조차 나를 이해할 수 없을 때, 누군가가 나를 말끔히 정리해 줬으면 좋겠다.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나. 그래서일까, 단 한 줄의 정의에 기댈 때가 있다.



"넌 개자식이야."


대학가 식당. 싸우는 커플. 이 한마디가 세상을 바꿔버렸다.


비가 내리는 가을 저녁, 한 젊은 커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남자는 대화에 전혀 집중 못 하는 모습이다. 자기가 SAT 만점을 받았다는 둥, 사교 클럽에 가입해야겠다는 둥 자신의 이야기를 맥락 없이 계속 뱉어댔다. 남자는 계속해서 혼자 말을 뱉어낸다. 모든 문장의 주어는 '나'였다. 여자는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폭풍같이 몰아치는 의식의 흐름. 그 흐름의 인력에 남자마저 휩쓸려 끝내 선을 넘고 말았다.


"넌 앞으로 여자를 못 만날 거야. 왜인지 알아? 넌 개자식이거든."


이별 통보를 받은 남자는 복수하듯 타자를 두드린다. 술김에 여자 학우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사이트의 코딩을 짠다. 이 일을 계기로 교내 유명 인사가 된 그가 바로 훗날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다.



사람은 떠나도, 어떤 말은 끝내 남는다. 버려야 하는 걸 알면서도, 오래도록 서랍 안에 남겨둔 편지처럼.


나쁜 말이라도 나를 한마디로 정의해준 한 문장에 어떤 통쾌함이라도 느낀 걸까? 마크는 이후로 전 여자친구의 '개자식'이라는 말을 포장지처럼 뒤집어쓰고,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찌르고 다녔다. 남의 아이디어를 도둑질하고, 채용 과정에 술을 먹이는 기행을 하고, 사람들을 무시했다.


영화는 내용적으로는 법정극을 그리고 있지만, 형식적으로는 스릴러, 심리극 스타일을 채택하고 있다. 마크주커 버그의 창업 초기 어떤 일을 겪었는지, 왜 하나뿐인 친구에게 소송을 당했는지를 추격전처럼 빠른 호흡으로 보여준다.


소송을 당하기 전까지 마크에게는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다. 아이디어를 도둑맞은 형제에게 해명할 기회, 친구의 말을 따라 사업을 키워나갈 기회 그리고 우정을 지킬 기회. 하지만 그는 매번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나를 죽이는 말은 항상 달콤하다.


마크는 페이스북 성장세 초기, 숀 파커라는 개발자이자 사업가와 만난다. 숀은 마크에게 달콤한 말을 계속 들려준다. 다 파악할 수조차 없는 페이스북의 어마어마한 잠재력, 페이스북의 성공 이후 벌어들일 수익, 사회적 영향력까지.


달콤한 말에 푹 빠진 마크는 숀의 조언을 따른다. 숀은 마크에게 그가 꿈꾸던 '멋진 개자식'이 된 내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실리콘벨리의 유명 투자자에게 망언을 뱉기도 하고, 집에서 멋진 파티를 열기도 하고, 명함에 욕설을 박기도 했다.


친구의 말은 무시하고, 생면부지의 말을 들은 끝에 마크는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되었지만, 친구의 이름이 적힌 소송장도 받게 되었다.


영화의 종반부, 신입 변호사가 마크에게 말한다.


"넌 개자식이 아니야.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하는 거지."


누군가에게는 개자식으로 보이는 사람이 누군가에겐 여린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은 유혹. 단 한 줄로 남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 누구의 어떤 말을 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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