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슬로베니아를 책으로 비유하자면 대형서점 매대에 보기 좋게 전시된 베스트셀러보다는 작은 동네 서점 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절판된 책 같다.
그 책에는 화려한 묘사나 절정을 향해 몰아붙이는 플롯, 숨 막히는 반전 따위는 없다. 그저 조용히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른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날 읽고 싶고, 손이 많이 가는 곳에 두고 싶고, 읽을 때마다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달라지고, 베토벤의 위대한 악절보다는 들꽃이 그려진 시집 첫 구절에 영감을 받아 쓴 피아노 곡이 어울리는 책이다.
슬로베니아는 나에게 있어 의미가 깊은 나라다. 내게 가장 사랑하는 나라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단연 슬로베니아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튀르키예에서 여권을 잃어버린 바람에(정확히는 잃어버렸다고 ‘착각’한 바람에) 슬로베니아에 긴급여권으로 입국했다. 이 긴급여권이라는 것은 참 까탈스러운 놈이다. 어떤 나라에 한번 입국하면 다시 재입국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공항에서 이 여권을 꺼내면 입국심사관이 범죄자 몽타주를 대조하듯 아주 면밀하게 여권을 훑어본다. 그리곤 서큐리티를 따라가 확인 도장을 받으라고 돌려보내는데, 그게 또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해서 번거롭고 혹여 비행기를 놓칠까 불안하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어디 하나 통과할 때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뭐, 사용 가능하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런 이유로 나는 슬로베니아에 발이 묶였다. 마음만 먹으면 긴급여권의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다른 나라에 갈 수 있었지만 그런 마음이 먹어지지 않았다. 튀르키예에서 진이 빠져버렸고, 여권 관련 문제는 다신 겪고 싶지 않았고 그저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에서 요양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렇게 슬로베니아에서 40일을 보냈다.
40일 동안 행복했다. 그건 순도 100% 행복이었다. 어떤 서러움으로 인한 극대화나 이 정도는 응당 누려야 한다는 끄덕임, 알코올이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얻은 도파민이 혼용되었거나 타인으로 인해 씌워진 필터 없이 그저 순수하게 너무나 행복해서 팔짝팔짝 뛰고 싶은 순간들을 누렸다.
말하자면 슬로베니아에서 비로소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호수를 참 좋아한다. 굳이 따져보면 계곡보다 강이 좋고 강보다 바다가 좋고 바다보다 호수가 좋다(물론 바다도 굉장히 사랑하기 때문에 그 차이는 미세하다 훗날 남미에 가서 멋진 바다를 발견한다면 순위가 뒤집힐지도 모를 일).
호수는 잔잔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 곁에 앉아 있을 수 있다. 호수의 윤슬을 숨죽여 지켜보면 이름 모를 물고기가 지나가는 파동을 볼 수 있다. 바다에서 그런 걸 보면 엇 물고기인가 하고 끝이지만 호수에서 보면 왠지 미지의 존재라도 목격한 것처럼 두근거린다. 혹시 괴생명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는 기묘한 신비로움이 있다. 그것은 호수만의 것이다.
블레드 호수의 아름다움을 목격한 이후로 유명한 호수를 찾아다녔다.
폴란드 모로스키에 오코호수, 독일 퓌센 호수, 스위스 브리엔츠 호수, 몬테네그로 코토르 호수,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호수.
가는 길이 험하거나 교통편이 좋지 않거나 표가 매우 비싸더라도 갔다. 모두(특히 스위스) 아름다운 호수들이었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 1등은 블레드 호수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쯤 달리면 블레드에 도착한다.
그 지역은 호수가 주체다. 신체로 빗대어 봤을 때 호수가 뇌 역할을 하고 있다. 호수 주위로 관광지가 형성되어 있고 호수와 멀어지면 집이나 사람, 레스토랑 등이 차츰 사라진다.
나는 블레드 호수 하나만 보기 위해서라도 슬로베니아에 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호슐랭 3 스타라는 뜻). 미안하다. 아름답다는 말만 지겹도록 하고 있어서. 근데 진짜 너무 아름답다.
이 호수 근처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래서 여기에 온 첫날엔 낮 동안 하루종일 호수 옆 산책로만 걸었다.
블레드 호숫길은 꽤 길다. 한 바퀴를 천천히 돌면 대략 1시간 반 정도는 걸린다. 걷다 보면 다양한 길이 나와서 마치 모자이크 기법으로 붙여 만든 산책로 같다.
영국 왕실 정원처럼 잘 가꾸어진 모래 길
단풍나무가 날리는 넓은 길
호수 기슭 그늘 아래 낚시꾼들이 하루종일 앉아 있는 길(잡히는지는 모르겠다만 늘 그 자리에 있다)
빨간 넝쿨 나무가 수놓아진 집 옆길
무례한 바텐더가 있는 펍을 지나치는 길
호수 위를 걸을 수 있는 길
나룻배가 있는 작은 항구 길… 이 모든 길들이 이어져 블레드 호수를 빙 두르고 있다.
그중 가장 좋았던 길은 ‘늙은 화가가 있는 길’이다.
걷다보면 투박한 돌 절벽이 나오며 길이 좁아진다. 그대로 계속 가다 보면 탁 트인 곳에 호수를 배경으로 앉아있는 할아버지가 있다. 80살 즈음되어 보이는 그는 거북목을 쭉 빼고 미동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만약 내가 연출하는 영화에 방랑 화가가 등장해야 한다면 이 할아버지를 섭외할 것 같다.
마른 몸, 검은색 베레모, 투박한 가을 재킷, 타탄체크 셔츠, 색이 바랜 청바지, 하얗게 샌 반곱슬 머리까지 영락없이 방랑 화가다. 어쩌면 평생 블레드 호수를 떠나지 못하는 지박령 화가일지도 모르지만.
발길을 멈추고 거대한 바위 홈에 이끼처럼 끼워둔 그림들에 눈길을 주면 화가는 냉큼 일어나 그림 설명을 한다.
이건 비 오는 날 블레드 호수, 이건 밤에 본 블레드 호수, 이건 노을 지는 블레드 호수…
똑같은 그림이지만 시간대 별로 색깔이 다르다. 맑은 수채화 그림이다. 한 장에 4유로.
그림을 고르면 화가가 이름을 물어본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화가가 그 자리에서 즉석 초상화를 그려준다. 그러는 동안 꿈이 뭔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지, 재밌게 본 영화가 뭔지 등등 그 순간 화가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그는 특이한 기법을 사용했다. 검은 물감으로 슥슥 그리고는 낡은 손수건으로 꾹꾹 누르고 다시 진하게 슥슥 그리고 꾹꾹 누르고. 그런 과정을 서너 번 반복하면 완성.
그림이 완성되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이 계속 웃었다. 서로 왜 웃냐고 물었지만 누구도 왜 웃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었다. 나는 그림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함박웃음을 지었고 화가는 그림이 탐탁지 않은 듯 입술을 삐죽거리며 건네주었다.
지갑에 있던 동전을 전부 털어 그에게 주었다. 유쾌한 만남이었다.
하루는 블레드 호수 가운데에 떠있는 블레드 섬에 가기 위해 나룻배를 빌렸다. 호스텔 가이가 말해준 바로는 블레드 섬으로 가는 방법은 총 3가지라고 했다.
첫 번째, 단체로 타는 전통 보트 플레트나. 한 시간에 한 번씩 출발하는 나룻배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탑승하면 베테랑 뱃사람이 노를 저어주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다시 돌아온다.
두 번째, 나룻배 빌리기. 상당히 낭만적인 방법. 나룻배를 빌려 직접 노를 저어서 간다. 1시간에 20유로.
마지막, 수영해서 가기. 잘하면 편도 30분. 못 하면 익사.
나는 두 번째 방법을 골랐다. 그리고 후회했다.
나룻배 노를 젓는 것은… 아주 아주 아주 아주 힘든 일이었다.
내가 예상한 그림과 달랐다. 나는 내가 노트북에 나오는 레이첼 맥아담스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비록 함께 탄 남자는 없었지만). 유유자적 노를 저으며 평화로운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블레드 호수 한가운데에 둥둥 떠있는 나… 그딴 건 없었다.
출발 전 속성으로 배운 노 젓는 기술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자꾸 배가 오른쪽으로 도는 바람에 남들보다 시간이 두 배나 들었다. 나무로 만든 노는 또 왜 이렇게 무거운지 당기고 밀 때마다 팔근육이 파열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30분 내리 노를 저어 블레드 섬에 배를 정박시켰다. 나룻배를 1시간만 빌렸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섬을 구경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동물원에서 탈출한 미친 고릴라처럼 섬 안을 뛰어다녔다.
섬에 있는 성당에서 소원을 빌고 종을 칠 수 있다고 들었기에 꼭대기까지 무작정 뛰었다. 알고 보니 성당 입장료가 11유로. 들어가는 건 포기하고 성당 앞에 있는 아무 조각상 앞에서 10초 만에 냉큼 소원을 빌었고 99개라는 성당 계단도 50개 정도 내려가본 뒤 다시 뛰어서 정박해둔 나룻배로 돌아갔다. 그게 딱 10분 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소원이 이루어 질까. 나처럼 시간도 없고 돈도 없는 여행객의 소원을 들어주실 만큼 자비로운 분이실까. 대강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이를 악 물고 노를 저었다. 결과적으로 20분이나 초과 됐지만 추가금은 내지 않았다.
나는 블레드 호수와 사랑에 빠져 버린 탓에 계획을 바꿔 일주일 동안 머물렀다.
아침이면 호스텔 가이에게 '아무래도 오늘 하루 더 묵을게요' 라며 숙박비를 결제하는 식으로 일주일이나 있었다.
수영복을 입고 가서 얼음장같이 차가운 호수에 몸을 담가보기도 하고 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 페러글라이딩도 했다. 구름이 예쁜 날엔 호숫가에 앉아 책을 읽으며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다.
새털구름을 담은 푸른 거울. 나룻배가 지나간 자리에 허룩하게 사라지는 물결. 어여쁜 새소리와 저 멀리 가로지르는 철새 떼. 사락 바람에 나부끼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둘러싼 주황 지붕 섬.
너무도 조용하게 떠 있어서 마치 중력이 사라진 듯한 곳. 말 그대로 비현실적인 호수.
봐도 봐도 행복했던 그 풍경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이런 내 진심에 감동한 호수 요정이 그곳으로 순간이동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호수 물귀신이 돼도 좋으니 어떻게 안될까.
블레드 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빈트가르 협곡이 있다. 블레드 호수의 발원지인 라도나강에서 이어지는 협곡이다. 여행객 대부분이 블레드 호수에게 반해 빈트가르 협곡까지 가는 식이다. 블레드 호수라는 메인 퀘스트를 깨면 나오는 히든 퀘스트라고 해야 하나.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 중이라 가는 길이 편했지만 협곡 입장료가 10유로였다.
길이 1.6km의 이 협곡은 나무 데크가 깔려 있어 걷기에 아주 좋았다.
그냥 평지 길이 아니라 협곡의 모양 따라 굴곡진 길이라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물 색깔이 너무 예뻤다. 나는 물을 보고 이렇게나 감탄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걷다가 와… 물이 어떻게 이런 색깔이지? 어떻게 이렇게 맑지?라는 의문이 비집고 올라오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협곡의 흐름을 감상했다. 내가 갔던 때에는 10월 중순 경이라 빨갛게 물든 단풍과의 색조합이 절묘했다.
물은 깊이에 따라 색이 달라졌다. 깊은 곳은 어두운 에메랄드 빛을 띠다가 얕아지면 청량한 푸른색이 됐다. 민물고기가 그 물속을 표표히 지나가면 마치 여름색 실크 스카프 무늬 같아 보였다.
빈트가르 협곡은 코스가 짧아서 조금 아쉬웠다.
이제 좀 본격적으로 걸어볼까 하는 시점에 끝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블레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협곡에서 나와 이정표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갔다.
다들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통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때 즈음 클래식에 빠져있었는데, 쇼팽의 녹턴 No.2를 들으며 걸었다. 고요한 숲길에 어울리는 노래였다.
그렇게 30분쯤 걸었을 때, 샛길이 보였다. 나무들 사이로 유난히 햇빛이 스며드는 길을 따라갔다.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숲이 끝나고 탁 트인 잔디밭이 나왔다.
나는 그 순간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았다.
곧은 나무들이 광활한 잔디밭을 둘러싸고 있었다. 홀린 듯 그곳을 걸었다.
바람이 불자 푸른 잎이 파도소리를 연주했다. 새는 지저귀며 선율을 얹고 내 두 발이 내는 발자국 소리가 박자를 맞췄다. 땅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흙의 풍미에 마음이 무르익었다. 이렇게도 푸른 곳에서도 바다를 연주할 수 있구나.
나는 잔디밭 중앙에 누웠다. 축축한 잔디에 옷이 젖어들었다. 숨을 천천히 깊게 쉬었다.
그때 처음 평화로움에 압도당했다. 마치 새로운 행성에 처음 발을 디딘 것처럼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는 걱정이나 근심, 욕심, 질투, 허영, 화 따위의 나쁜 것들은 살지 못한다. 탄생과 죽음도 없다. 어떠한 시끄러운 소음도 매캐한 공기도 없다. 그저 천천히 숨을 쉬며 누워있기만 해도 시간이 흐르는 곳. 아니 어쩌면 시간이 멈춰 있는 곳이다.
나는 잔디밭과 한 몸이라도 된 듯 한참 동안 누워서 천천히 흐르는 구름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해가 지기 전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나는 아직도 그곳처럼 특별한 공간은 찾지 못했다. 빈트가르 협곡에서 숲을 지나 블레드로 향하는 길 중간 샛길로 빠지면 있는 곳. 이렇게 말하면 절대 모르겠지.
그래서 나는 그곳 좌표를 저장해 두었다. 혹시 슬로베니아에 갈 일이 있다면 류블랴나에 있는 작은 중고 책방에 들려보길 바란다. 운이 좋으면 그 책방에서 요아브 블룸의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한국어 번역본이다). 그 책에 빈트가르 협곡의 비밀공간 좌표를 적어두었다.
내가 그 책을 두고 한국으로 떠난 게 벌써 2022년 11월 28일이니까 책이 아직도 거기에 있을지는 모르겠다.
고작 27살 애송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본 트레킹 중에 최고’라는 표현을 쓴다 한들 얼마나 와닿겠나 싶지만, 가히 그런 극찬을 하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크란스카고라(Kranjska Gora)’다.
슬로베니아 국기에 있는 동그란 문양을 자세히 보면 산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게 바로 슬로베니아의 심장이라고도 불리는 ‘트리글라브’ 산이다. 나는 크란스카고라에 가서 그 산에 오를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 무식한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트리글라브 산은 어려운 산이다.
어찌어찌 산 중턱까지 오르더라도 정상까지 가려면 무시무시한 비아페라타 구간을 지나야 한다. 그렇기에 나처럼 초보 등산가들은 가이드와 함께 가지 않으면 위험하다. 나는 그 사실을 크란스카고라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저기 트리글라브 산에 올라가는 시작점을 알고 싶은데요.”
크란스카고라에 온 첫날 호텔 주인에게 물었다. 흰머리인지 금발인지 헷갈리는 머리를 한 중년 여자였다. 여름에 멋진 휴가를 다녀왔는지 피부가 잘 구워진 휘낭시에처럼 탔고 주름이 깊었다.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는 타입은 아닌 듯했다.
사실 오는 길에 지갑을 잃어버릴 뻔했는데, 고맙게도 그녀가 차를 타고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지갑은 알고 보니 내가 타고 온 버스 좌석 밑에 있었고 다행히 크란스카고라가 종착역이라 버스가 떠나기 전 지갑을 찾을 수 있었다. 만약 못 찾았다면 나는 블레드에 있는 나룻배 수저 친구에게 가서 돈을 구걸했겠지.
“음, 등산을 잘하시나요?”
그녀는 게슴츠레한 눈초리로 나를 훑으며 물었다(아무래도 여행 중엔 풍족하게 먹지 못해 더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아니요. 잘… 은 모르겠네요.”
“장비는 있으신가요?”
“그것도 아니요. 아, 트레킹 화는 있어요.”
내가 신고 있던 신발을 보여주자 그녀는 이걸로는 역부족이라는 듯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내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말했을 때는 버스 회사에 척척 전화를 걸어주던 그녀였는데, 이제는 도무지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듯 지도만 자꾸 들여다봤다.
“사실, 작년에 트리글라브 산을 타던 청년 두 명이 죽었어요.”
“예…?”
아, 이때 사실 곧바로 등산을 포기했다. 그런데 그냥 끝까지 시도해 보는 척했던 것 같다.
“그렇게 위험한 산인가요…?”
“여름에는 갈만 하지만 지금처럼 날이 춥거나 안개가 끼면 좀 위험해요. 정상에는 눈이 있어서 미끄럽거든요. 가이드랑 같이 가면 또 모르지만요.”
“아… 그럼 가이드 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혹시나 해서요.”
“그럼요. 알려드릴게요.”
대화는 이쯤에서 일단락 됐다. 나는 그녀가 이면지 종이에 적어준 가이드 번호를 들고 체크인했다. 언젠가는 필요하게 될지 몰라 간직하기로 했다. 여기, 그 번호를 알려줄 테니 필요하신 분은 저장하시길. 그 가이드 프로필 사진으로 추측하건대, 너무 늦으면 안 될 것 같다. 이미 나이가 꽤 있으시다.
10월 말 크란스카고라는 텅 비었다.
호텔에 투숙객이 아무도 없어서 건물 통째로 나 혼자 썼다. 조용하고 또 조용하고 조용해서 좋았다. 코 고는 소리도 없고, 청소하는 사람도 없고, 새소리만 들렸다.
내 방은 2층 복도 가장 끝에 있었다. 폐소공포증이 도질 정도로 작은 방에 싱글침대 하나가 벽에 띡 붙어있는 게 전부다. 아, 방 안에 화장실이 있었지. 그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트리글라브 산 근처까지만이라도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못 먹는 감 쳐다도 보지 않는 편이지만 이곳에는 트레킹 말고는 할 게 없었다. 게다가 나에겐 시간이 넘쳐흐르니까.
다음 날 아침 9시. 배낭을 가볍게 챙기고 호텔을 나섰다.
아주 긴 코스였다.
장장 10시간이 걸렸다. 걷는 동안 내내 혼자였다. 이 세상에 나와 길, 산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사실 정해놓은 목적지가 없었다. 오늘 10시간을 걸어서 목적지까지 꼭 가야지라고 생각했다면 힘든 기억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전히 이 길을 걷는 게 너무 좋아서, 갈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풍경에 반해서 걸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버린 것이다.
트리글라브 산을 멀리서 봤을 때, 그저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다.
나는 미디어에서 돌아다니는 산들은 전부 보정을 해서 만들거나 전문 사진작가가 나사에서 쓰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고 오해했었다.
엽서나 배경화면, 여행 잡지에 나오는 산이 내 눈앞에 갑자기 등장했으니 이거 원 믿을 수가 있나. 산과 가까워지기 전까지 입을 반쯤 벌리고 멍하니 걸었다. 그러다 멈춰 서서 감탄하고 다시 걷고 또 멍하니 바라보다가 걷기를 반복했다.
바위 산의 능선은 바이탈 사인처럼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런 거친 지면에 살지 못하는 나무들은 산 주위 땅에 퍼져있다. 그 둘의 조화가 기가 막혔다. 산이 가까워졌을 무렵, 햇빛이 절묘하게 갈라져 나무에만 비쳤다. 그러자 빛을 받은 나무들은 연둣빛 광채를 뽐내며 허리를 곧추세웠고, 그 뒤에 나를 집어삼킬 듯 커다란 바위 산이 푸른 그늘에 물들어 있었다.
트리글라브 산을 보고 있으면 ‘황홀하다’라는 말의 뜻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세상은 아름다워.
일에 치여 살 때는 떠올릴 겨를이 없었던 단어들이 내 머리통을 탁 깨고 파도처럼 쓸려 들어왔다. 그것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금방 복구될 만큼 가벼운 균열이었다. 그래서 기왕 깨진 김에 만끽했다.
아아,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모르고 살았던 건지 알면서도 모른 척 살았던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적어도 나로 한정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여기라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가을이 가장 싫었다. 날이 추워지면 환절기 비염 때문에 콧물을 죽죽 흘리니까. 자고로 독서의 계절은 집에만 있는 겨울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활기찬 여름이 가는 것도 서운했다.
그러나 크란스카고라에서 숲과 산이 일렁이는 숨결을 느낀 뒤로 가을을 사랑하게 됐다. 한 번 싫으면 죽을 때까지 싫어하는 나의 마음을 바꾼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비록 지금도 때때로 콧물이 나면 가을바람이 미워지긴 하지만.
…… 아무튼 전국에 계신 비염인들에게 심심한 응원을 전하고 싶다.
P.S 사실 크란스카고라는 꽤 유명하다. 호스텔에서 추천해 주는 곳이기도 하고, 트레킹 잡지에도 실렸고, 심지어 마트에 가면 그 지역 엽서도 판다. 진짜 숨겨진 트레킹 코스는 ‘Mojstrana’에 있다. 한국어 표기도 모르겠다. 꼭 가보시길. 두 말 안 합니다.
*Part 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