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흐바르 섬
10월 말 흐바르섬은 고요하다.
섬에는 관광객의 옅은 자취와 조용한 라벤더 향만 떠돈다.
여름에는 수십 만 명이 찾아오는 황금섬이지만, 바다에 뛰어들 수 없는 날씨가 되면 여기저기 푸석해진다. Close 간판이 걸린 레스토랑이나 천막을 쳐둔 투어 데스크, 수면기에 접어든 요트 등이 활기찬 수분을 빨아들였다.
건조한 가을 끝자락에 혼자 흐바르 섬을 가는 여행객은 이유가 있다.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가는 P유형이거나, 붐비는 관광객을 보면 자동으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타입이거나, 성수기 숙소비를 감당할 수 없는 가난한 배낭 여행객이거나, 큰 범죄를 저질러 숨을 곳이 필요한 도망자(?)이거나.
나는 아쉽게도 도망자는 아니고 성수기를 놓친 무계획형일 뿐이다. 옥토버페스트 때문에 독일에 갔다가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눌러앉았다. 떠나려는데 스위스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들렸다가 돈을 팡팡 쓰고 난 뒤 거지가 되어 크로아티아에 입국했다.
나는 스플리트 항구에서 페리를 탔다.
역시나 흐바르 섬으로 향하는 페리는 텅 비어있었다. 출항 시간이 가까워지자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띄엄띄엄 창가에 붙어 앉았다. 여행 가는 길 치고 지나치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내가 밀항선에 잘못 탔나 싶어 자꾸 티켓을 만지작거렸다.
배가 출발하기 전, 지중해 위에서 듣고 싶은 노래를 골랐다. 어쩐지 차분한 노래가 끌렸다. Wave to Earth의 Bad를 첫곡으로 항해를 알리는 기적이 울렸다.
1시간 후 창문 너머로 작은 항구가 보였다. 엔진 소리가 잦아들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승객들이 비적비적 출구로 모였다.
우리는 베테랑 선원들의 거친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줄지어 페리에서 내렸다.
항구에는 스플리트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우리가 타고 온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맨 앞줄에는 커다란 캐리어를 끄는 동양인 무리가 있었다.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는 그들은 바쁜 투어일정에 맞춰 짧은 관광을 했을 것이다. 여행도 쫓기듯 하면 티가 나는 법이다.
뒷줄에는 햇빛에 그을린 서양인들이 민소매나 리넨셔츠를 입고 서 있었다. 후리한 차림새에도 돈이 많아 보였다. 일찍이 이 섬에 와 멋진 휴가를 보냈다는 선텐 흔적이 그 증거다.
이 섬을 떠나기 위해 모인 그들과 짧은 눈 맞춤을 하며 흐바르 섬에 입성했다. 그들의 눈동자에 서린 게 만족감인지 아쉬움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5일 뒤 똑같은 페리를 타고 이 섬을 떠날 때 알 수 있겠지.
작은 항구는 한산했다.
부두에 돌로 만든 벤치가 있어 몇몇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연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소녀가 주변 모든 것에 무심한 듯 핸드폰을 봤다. 배가 들어오든 말든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왜 항구에 앉아있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항구를 지나쳐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 나도 마찬가지로 구글맵을 켜고 목적지로 향했다.
그때 나는 호스텔 생활에 지쳐있었고, ‘그’ 시기가 왔기 때문에 혼자 쓰는 방을 미리 예약해 뒀다. 여기서 말하는 ‘그’ 시기는 장기여행을 하는 내게 꼭 필요한 시기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는 시기.
하루 4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섬 주민이 사는 주택에 딸린 작은 방을 빌렸다(물론 성수기에는 하루 10만 원을 웃도는 비싼 금액이다).
숙소로 향하는 길, 나는 단 몇 분만에 이 섬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섬에는 흰 돌바닥이 깔려 있어 터키석같이 온화하게 푸른 바다와 잘 어울렸다.
해변 근처 길을 걸었다. 작은 돔 형태의 흰 교회 탑이 보였고, 그 주위를 사이프러스 나무가 감싸고 있었다. 바닷바람에 부유하는 시더우드 향을 느끼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돌담 옆 작은 요트 위에서 낚싯줄을 정리하는 어부도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졌다.
이 모든 아름다움을 즐기기도 잠시, 나는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주저앉았다. 이 놈의 섬은 전부 오르막길 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무거운 배낭을 지고 계단을 올랐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한 발짝도 못 움직일 때가 돼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이럴 땐 작은 나귀를 데리고 여행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나귀 렌트 서비스는 없으려나.
흐바르 섬 번화가에서 동쪽 언덕길을 올라가면 주택가가 나온다.
이곳엔 똑같이 생긴 건물이 즐비해있다. 마구 지은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은근히 규칙성을 띄고 있다. 흰 건물에 주황 지붕. 곳곳에 세워진 차도 비슷하고, 여기저기 얽힌 골목길도 똑같다. 그래서 자칫하면 길을 잃기 쉽다.
건물 벽에 붙은 번지수를 따라가다가 숙소를 발견했다.
마당에 회색 도요타 승용차를 대놓은 일반 가정집이었다. 대문을 두드리자 7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노인이 나왔다. 분홍색 홈드레스를 입고 흰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한 주인은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헉헉 거리는 내게 “오는 길이 참 힘들었지?”하고 묻는 듯했다. 나는 멋쩍게 그 미소를 받았다.
주인집 할머니는 예약번호도 확인하지 않은 채 방을 안내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시기에는 예약하는 사람이 없어 확인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를 따라 집 옆 계단을 내려가자 검은색 철제 대문이 있었다. 그 문은 늘 열려있었다. 내게 열쇠를 주었지만 딱히 잠글 필요를 못 느껴 5일 동안 대문 열쇠는 쓰지 않았다.
대문 안에 작은 마당이 있었다. 마당이라기엔 테라스에 가까웠다. 그 타일 바닥이 깔린 공간에 빨랫줄과 야외용 테이블, 의자, 재떨이가 있었다.
난간에 가까이 가면 바다가 보였고, 그 밑으로 작은 텃밭이 있었다. 주인집 할머니가 키우는 루꼴라나 바질, 푸른 상추 등이 어린 고개를 내밀었다.
할머니가 열어 준 작은 쪽방에는 오랫동안 비워둔 방에서 나는 꿉꿉한 냄새가 났다. 원래 창고로 쓰는 공간인 듯했다.
그녀가 몇 년 만에 처음 말을 해보는 사람처럼 걸걸한 목소리로 방에 대해 설명했다. 보일러 버튼이나 방 안에 딸린 부엌 살림살이에 대해 말했다. 영어 발음이 심각한 수준이라 눈치껏 해석해야 했지만 그 정보가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설명을 마친 후 여권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검지 손가락을 펴 보이며 잠시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방에서 짐을 풀고 숨을 고르는데, 10분 뒤 할머니가 다시 돌아왔다.
한 손에는 내 여권, 그리고 다른 손에는 오렌지 주스 한 잔이 있었다. 내가 고맙다며 주스를 벌컥벌컥 마시자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 면적은 약 297.37 km²로 우리나라 제주도와 매우 흡사한 크기다.
두 섬을 인간에 비유하자면 제주도는 카페 프랜차이즈 브랜딩 성공으로 졸부 반열에 올랐지만 최근 무리한 주식투자로 인해 풀이 죽은 40대 사업가가 떠오르고 흐바르 섬은 1960년 대에 작곡으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현재는 골목 작은 LP 바에서 흘러나오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음악에 취해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시는 80대 노인 같은 느낌이다.
비수기 흐바르에서 신나는 여름휴가를 기대해선 안되지만 지중해 섬 분위기에 ‘조용히’ 취하고 싶다면 10월에 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난 기왕 혼자 있는 김에 고독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에서 내 일과는 이랬다.
아침에 일어나 테라스로 나가 커피 한 잔을 하며 날씨를 살핀다. 볕이 좋으면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빨래를 해 옷가지를 빨랫줄에 널어둔다(보통 해가 지기 전 다 마르지만 짠내가 나서 세탁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12시가 되기 전 근처 마켓에서 사다 둔 빵과 살라미로 아침을 때운 뒤, 간단한 도시락을 싼다. 도시락이라고 해봐야 별 거 없다. 아침에 먹은 것을 쿠킹포일로 싸면 점심이 된다. 거기에 청사과 하나와 로제와인 한 병을 추가하면 근사한 피크닉으로 레벨 업.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Pokonji dol 해변으로 간다.
골목길 끝에 숨어있는 오솔길을 지나가면 나오는 곳인데, 해변이 언덕 밑에 있어 가는 길에 해변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래서 마치 숨어있는 해변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어 좋다.
센 파도를 안주 삼아 로제와인을 병째 마시며 햇살을 즐긴다. 10월의 바다는 차갑고 파도가 거칠어 들어가기 힘들지만, 그래도 꼭 수영복을 챙겨 입는다. 어찌 됐든 기분만 내면 된다는 식의 내 성격과 잘 맞는 짓이다.
오후 4시까지 그곳에 앉아 멍하니 파도를 보며 노래를 듣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그러다 약간 쌀쌀해지면 해변을 지나 바다를 끼고 걷는 오솔길로 간다.
멈춰있느라 뺏긴 열을 걸으며 다시 얻는다.
바위와 소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곳을 찾으면 그곳에 앉아 노을을 만끽한다. 머리에 짠 기운이 잔뜩 서려 진득해지면 집으로 돌아간다. 따듯한 물로 바닷바람을 씻어내고 토마토 파스타를 해 먹으며 와인 한 병을 마저 비우면 나의 하루도 끝이 난다.
여유는 사람을 녹인다. 몸도 마음도 녹아내려 걸을 때마다 찰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하게 휴식하는 것, 하루 이틀이야 아주 좋다. 하지만 정말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다 보면 못 견딜 정도로 심심해진다.
3일째 되던 날, 뭐라도 하고 싶어서 낮동안 요트 투어를 알아봤다. 항구를 돌아다니며 ‘블루 케이브 투어’라고 적힌 투어 사무소를 기웃거렸는데, 비수기에 그룹 투어를 가려면 내가 직접 5명 이상 구해야 했다. 그게 아니면 거금을 들여 프라이빗 보트를 빌리던가.
돈 없어서 젤라토 아이스크림 하나 못 사 먹는 내가 배를 빌리다니.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다는 동굴을 20분 거리에 두고 포기했다. 이런 걸 하나씩 못 하고 가면 언젠가 다시 올 이유를 두고 가는 거라 생각한다. 그런 합리화를 거치면 그렇게까지 절망스럽진 않다.
아쉬운 대로 섬 안에서 할 만한 것을 찾아다녔다. 버스를 타고 옆 마을에 가는 선택지는 패스. 가봤자 할 일 없는 건 똑같다. 결국 그리스 섬에서 즐겼던 ATV 바이크를 빌리기로 마음먹었는데, 이게 웬걸. 프라이빗 보트 빌리는 것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을 정도로 비쌌다. 예약금을 내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돌아가 환불받을 정도로 비쌌다.
결국 하루종일 할 일을 찾다가 해가 져버렸다. 그래서 밤의 흐바르 섬을 즐기기로 결심했다.
3일 동안 마트에서 술을 사다 마셨다. 로제 와인 한 병, 화이트 와인 한 병, 그리고 맥주 여러 병.
바다에서 마시는 와인은 산뜻하지만, 숙소에서 혼자 마시다 잠들고 일어나 술병이 발에 치이는 아침을 맞이하면,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었다. 현지인을 만나 흐바르 섬에서의 생활이 어떤지 묻고 싶었고 관광객이라면 어쩌다 여기에 왔는지 묻고 싶었다. 사실 누구라도 좋으니 ‘같이’ 술을 마셨으면 했다. 확실히 외로워졌다.
장담컨대, 3일 내내 쿰쿰하고 찐득한 쪽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면 누구나 외로워질 것이다. 그곳이 재벌들의 여름 휴가지 흐바르 섬이라고 해도.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걸었다. 한 10분쯤 걷자 저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둥둥 거리는 라이브 밴드음악이었다.
그 소리를 따라가자 항구 옆 리조트 앞에 야외 파티장이 있었다. 커다란 파라솔 4개를 덧대 만든 지붕 밑 야외무대에 나이 든 남자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파르께 한 조명이 그를 비췄다.
그 조명 색은 마치 백색 LED 전구에 셀로판지를 대서 만든 색처럼 통렬했다. 그의 관자놀이에 난 흰머리 때문에 머리색이 자꾸 바뀌는 것처럼 보였다.
서브보컬이자 리드 기타인 털보 아저씨가 열심히 더블링을 치며 그를 도왔고, 두 사람 뒤에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드럼을 담당했다.
노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올드팝이었다. 얼굴이 벌게진 60대 남자들이 떼창 하는 노래. 그래서인지 하나도 신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하게 쓸쓸했다. 파티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리조트 투숙객인 듯했다(가드가 입구 앞을 막고 일반인은 못 들어가게 하는 것으로 보아).
어른들은 아이들을 간이 놀이터에 두고 덩실거리며 춤을 췄다. 그들은 가판대에 준비된 값싼 와인을 무제한으로 마셨다. 직원들은 와인이 동 나면 다시 채워놓을 뿐, 딱히 수량 체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미리 낸 파티 참여비를 잊은 채 공짜로 마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취해갔다. 나는 그때, 뭐야 이 뜬금없는 파티는? 하고 관찰하다가 목적지인 재즈바로 향했다.
그러나 곧 왜 사람들이 허술한 파티장에 전부 모여있었나 깨닫게 된다.
골목에 숨어있는 재즈바를 찾느라 한참 헤맸다.
분명 레스토랑과 펍, 클럽이 모여있는 번화가인데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찾아 간 재즈바는 역시 문을 닫았다. 가는 길에 있었던 가게들이 전부 휴가 중이라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다.
나는 바다가 보이는 큰길로 나갔다. 다행히 아직 영업 중인 작은 바가 있었다.
쭈뼛거리며 그 앞을 서성였다. 들어가도 될까 싶었다. 누가 봐도 현지인 뿐이었다. 젊은 남녀 무리가 야외 테이블을 붙여 놓고 앉아 크로아티아어로 열띤 토론을 했고, 그 옆에는 중년 부부가 바다 쪽을 보고 앉은 채 맥주를 마셨다. 지금 휴업 중인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바 내부는 더 혼란스러웠다.
좁디좁은 공간에 잔뜩 취한 흐바르 사람들로 가득했고(타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조명이 어둡고 노랫소리가 커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치이며 바텐더에게로 갔다. 바 앞에 서서 5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바텐더와 눈이 마주쳐서 큰소리로 모히또를 달라고 소리쳤다. 바텐더가 안 들린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가까이 댔다. 나는 다시 한번 모히또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안된다고 했다. 나는 아무거나 좋으니까 되는 술을 달라고 했다. 바텐더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로 안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이 없었다. 술 없는 바는 난생처음이다. 벽면 전체에 술이 가득 즐비해 있는데 없다고 하는 바텐더도 처음 보고.
기분이 나빠져서 그냥 나가려는데 옆에 있던 여자 둘이 내게 접근했다. 그들은 내 눈앞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낄낄거리고 웃었다. 내 얼굴이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배를 잡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그다지 웃기게 생긴 이목구비는 아닌데). 쩌렁쩌렁 울리는 노랫소리를 뚫고 그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순간 작은 테이블 위에 그 여자들의 담배 두 갑이 올려져 있는 게 보였다.
럭키 스트라이크와 말보루 레드.
저걸 휙 낚아채서 도망치는 상상을 했다. 연달아 항구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붙잡히는 장면이 이어졌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들을 쳐다보기만 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한 마디 했어야 하나?
아무리 취했다지만 나를 너무 조롱한 거 아닌가? 아니 사실 나한테 술 없다고 했던 바텐더가 더 나빠.
한국에서 똑같은 일을 당했다면 깔끔하게 100대 0으로 무례한 사람 탓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해외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인종차별인가?라는 의문을 시작으로 지저분한 생각 그물에 빠지게 된다.
아아, 그 그물은 별의별 가능성이 다 얽혀 있어 아주 촘촘하다. 그래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결론이 나더라도 애매하게 38 대 62 혹은 25 대 75 이런 식이라 몇 번이고 항소하고 싶어 진다.
이 흐바르 사건은 인종차별이라 결론 내렸지만 이미 재심 신청 기간이 끝나 버린 뒤다. 결국 ‘인종차별에 멋지고 현명하게 대응하는 상상’을 하며 마무리 됐다.
자정을 넘긴 시각,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싸실한 야외 파티장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사람들이 신났던 여운만 호젓하게 남아있다.
첫날 시더우드 향을 만끽하며 걸었던 항구 옆 돌담 길을 걸었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예뻤다. 낮에는 바다 색에 홀려 고개를 떨구고 걸었는데.
해소되지 않은 외로움이 진득하게 붙어 나를 따라왔다. 아니 어쩌면 그 외로움에 서러움이 섞여 더 짙고 성가신 얼굴이 됐다.
그러나 한 단계 더 깊게 생각해 보면 그들이 나를 배척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흐바르 사람들은 가을만 손꼽아 기다려왔다. 무더위만큼이나 지긋지긋한 관광객이 사라지고 이제야 그들만의 파티가 열렸다. 그 영역에 발을 들인 나는 초대장도 없이 찾아와 술을 달라고 하는 불청객인 셈이다.
이제야 리조트 파티가 어떤 의미였는지 알 것 같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눈치 없이 뒷북치는 관광객을 득시글하게 모아 둔 그곳이었구나.
맨 정신으로 맞이하는 밤은 사무치게 괴로웠다. 그동안 쉼 없이 술을 마셨던 이유는 밤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아, 나는 나를 늘 과대평가한다. 고독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외로운 섬에서 외롭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니.
나는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고 싶다는 갈망을 안고 사는 인간이지만 낯선 곳에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또한 버리지 못한다. 모순 없는 인간은 없다지만 이건 좀 슬픈 모순 같다.
마지막 날, 나는 Pokonji dol 해변이 지겨워져 다른 해변을 찾아 나섰다.
항구가 있는 번화가를 지나 고급 호텔 앞 해변에 갔다. 그곳에는 비싼 음식으로 살을 불린 사람들이 해를 향해 누워있었다. 햇살에 식은 맥주병이 사람들 근처에 나뒹굴었다. 나는 왠지 그곳에 낄 수 없을 것 같았다.
목 좋은 곳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작은 시크릿 해변에는 반나체 커플이 누워있었고, 조용한 해변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나는 갈 곳을 찾아 떠돌았다. 그러던 중 길에서 어떤 남자가 말을 걸었다.
“안녕, 너 바지가 너무 멋지다, 예뻐.”
“어… 고마워.”
내가 입고 있던 검은 바지에는 큰 꽃 모양 자수가 놓여 있다. 그는 그 포인트에 주목한 듯했다.
“너 어디 나라 사람이야? 잠깐 내가 맞춰볼게. 캘리포니아에서 왔지?”
“아니 서울에서 왔는데.”
“아~ 서울! 알지. 멋있다. 나 지금 마침 해변에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너만 괜찮다면 말이야.”
그는 단시간에 내 혼을 쏙 빼놓았다.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키는 170cm 정도, 연청 셔츠를 허리에 두르고 처음 보는 밴드 이름이 프린팅 된 회색 티셔츠를 입었다. 낡고 해진 바지와 그보다 더 낡은 운동화, 영국 캠던 마켓에서 산 듯한 팔찌와 덥수룩한 수염이 눈에 들어왔다. 옷가지들은 언제 빨았는지 모를 탁한 빛, 어딘가 정돈되지 않은 느낌.
익숙한 부류다. 그는 장기 여행자의 특징을 모두 갖췄다. 드디어 말할 상대가 생겼다는 기쁨과 동시에 그다지 내키지 않는 묘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미국인, 30살, 7년 동안 밴드에서 리드기타를 치다가 3년 전부터 스턴트맨이 되었고, 영화학을 배워 여행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스폰서를 끼고 운영하는 채널이라 여행 경비를 지원받음), 비틀즈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밴드라고 생각하며, 뉴욕 출신이지만 자연을 좋아함, 안정적인 연애를 하기 힘들어함, 자신이 특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낌, 촬영 중 드론 3대를 날려 먹고 가장 좋은 사양의 드론을 최근 구매함.
나는 이 모든 정보를 단 한 시간 만에 알게 됐다.
그를 만나자 파도와 햇살에 녹았던 마음이 얼린 버터처럼 굳었다.
그는 내게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질문 폭격을 했다.
왜 여행을 하는 중인지, 서울의 삶은 어떠한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뭔지, 수영은 잘하는 편인지, 글을 쓰는 게 꿈이라면 출판 경험이 있는지, 학교는 어디 나왔는지…….
질문을 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았다. 뉴욕 출신임을 강조했고 본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발자국을 자랑하기 급급했다.
나는 그가 밴드 시절 어떤 곡을 가장 잘 소화했는지 알고 싶지 않았지만, 딱 하나 궁금한 점이 있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사실 나는 남들과는 좀 달라. 나는 스턴트맨이잖아. 남들과 똑같이 출근하지만 일터에 가면 불타는 빌딩에서 뛰어내려야 하고 칼 든 강도와 싸워야 하고 깊은 바다에 맨몸으로 뛰어들어야 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이지. 그래서 나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 내게는 오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
그의 시간은 남들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삶을 게걸스럽게 산다고 느껴졌다. 그는 주어진 하루를 단 한 톨의 후회 없이 먹어치워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나는 그 태도에 큰 부담을 느꼈다. 고작 두어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그는 나를 다 아는 사람인양 행동했고, 거절하고 싶은 제안을 퍼부었다.
“나랑 같이 여행 다닐래? 어때? 너도 혼자 여행 다니잖아. 나랑 다니면 엄청 재밌을 텐데.”
“내일 잘 곳이 없으면 내 에어비엔비에서 자도 돼.”
“오늘 날씨 때문에 너도 배 못 탔지? 내일모레 블루 케이브 투어 갈래? 나랑 같이 배 빌리자.”
모두 거절했지만, 딱 하나 수락한 제안이 있다.
“나랑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
“그래, 좋아.”
흐바르 섬에는 젤라토 가게가 딱 하나 있다.
항구 근처에 있는 작은 가게인데, 이탈리아 영향을 받아 엄청 맛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가격이 사악하다. 젤라토 작은 컵 하나에 8,000원. 앞서 말했듯이 그 가게 앞을 지나갈 때마다 고민했다. 먹어 말아? 매번 에이 그냥 아끼자라는 쪽이 이겼다.
그런데 그가 그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2시간 동안 자랑을 들어준 대가로 그 정도는 받아도 될 것 같았다.
“무슨 맛 먹을래?”
“나는 애플파이맛.”
“하나면 돼?”
“응.”
“오… 어떻게 이 많은 맛 중에 하나만 고를 수 있어? 나는 절대 못해. 최소 2가지 이상은 맛봐야 직성이 풀리거든.”
그는 주문을 하기 전 가게 주인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저는 바닐라 맛, 코코넛 맛으로 주시고요. 제 와이프는 애플파이 맛이요라고… 그 말에 내가 기겁을 하며 친구라고 소리치자 그와 주인이 깔깔대며 웃었다. 넉살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다.
우리는 작은 광장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애플파이맛 아이스크림은 부드럽고 맛있었지만, 먹는 동안에도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있지. 진지한 연애를 할 수 없어. 늘 여행 다니니까 여자친구 곁에 있을 수 없거든. 너는 어때?”
“나도 그래. 항상 남자친구가 없어. 언제든 떠나버리는 게 문제일까.”
그는 특별한 삶을 살고 있기에 특별한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인생에 심취해 있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아이스크림을 편히 삼킬 수 없었다. 나는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 춥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허리에 두르고 있던 연청 셔츠를 내 어깨에 둘러주었다. 셔츠에서 오래 썩힌 빨래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를 견딜 수 없어 생각해 보니 더 이상 춥지 않다고 했다.
저녁을 먹자는 그의 마지막 제안을 거절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날 나는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이면을 보았다. 삶을 후회 없이 사는 건 분명 좋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왜 그를 불편해했을까? 옷에서 나는 썩은 냄새 때문만은 아닐 텐데.
그때 나는 내 인생의 시점을 현재에 두어야 할지 저 먼 곳에 두어야 할지 정할 수 없었다.
우리는 같은 시계를 쓰며 살아가지만 어떤 이는 과거에 머물러 있고, 어떤 이는 오늘만 살고, 또 어떤 이는 먼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간다(당연한 소리 미안).
그러나 여행 중에는 다른 시점에 도달할 수 있다. 오직 오늘 밖에 없는 인생. 말하자면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할 틈이 없다. 지금 당장 잘 숙소를 구해야 하고, 예산에 맞춰 끼니를 해결해야 하고, 목적지를 향해 움직여야 한다. 현재에 골몰하다 보면 미래는 정말 미래가 되어 버린다.
어느 순간 ‘내가 한국에서 뭐 때문에 그렇게 고민했었지?’라는 생각이 들면 아득해진다.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거울을 보니 사실은 허공에 대고 마임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주한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원했던 인생을 살고 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
그러나 막상 그런 사람을 직접 만나보니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저 남자를 쫓고 있을까, 그 실체가 궁금할 뿐.
이상적인 인생관이 무너지며 나는 소리는 아주, 요란했다.
“너 정말 흐바르 섬을 떠날 거야? 블루 케이브 투어 안 가면 분명 후회할걸? 네가 언제 또 여기에 올 것 같은데?”
배를 타고 섬을 떠나는 내내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거친 파도 때문에 집채만 한 배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정말 내가 흐바르 섬에 다시 올 수 없을까? 이게 마지막일까? 점점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며 내 인생의 시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현재와 미래, 그 사이 어딘가에 두어야 한다면 그곳은 어디인가?
나는 결국 다시 오늘을 생각했다. 나의 오늘은 모두 미래의 나를 위한 과정이라 희망하면서.
이 청춘의 편린들을 그러 모아 두꺼운 디딤돌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가라앉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느라 지칠 때, 그 디딤돌을 밟고 서 있으면 적어도 숨은 고를 수 있겠지.
그래서 나는 오늘을 생각한다.
그러나 저 멀리, 젊은 나를 바라보는 늙은 내 시선을 피할 순 없다.
결국 어느 쪽을 택해도 편치 않은 것이 26살의 가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