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집이 최고입니다
이번 주제는 숙소다.
내가 그동안 가봤던 숙소 중에 최악이었던 곳과 최고였던 곳을 뽑아보겠다.
그것만 하면 소득이 없으니까 좋은 숙소 잡는 팁도 좀 얹어드릴게.
먼저 최고의 숙소!
기분 좋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아무래도 좋으니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산토리니에 있는 'Morning Star Traditional Houses'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출을 볼 수 있는 테라스가 딸려있는 그리스식 호텔이다. 그리스 편을 보신 분들은 알고 있겠지만 산토리니까지 가는 여정이 정말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돈 좀 쓰자싶어 호텔을 예약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오길 잘했어'라고 쾌재를 불렀다.
말그대로 그리스식 건물이라 흰색 벽에 파란 대문이었다.
산토리니 이아마을과 거리가 꽤 멀었지만 나름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 좋았다. 주택이 밀집된 지역에 위치한 이 호텔은 오르막 길을 한참 올라야 있는데, 올라간 만큼 좋은 뷰가 펼쳐져 있어 보람차다.
가장 좋았던 점은 역시 테라스다.
호텔에는 주스, 포도, 빵, 과자 등 먹을 거리가 많았다. 나는 커피를 끓이고 그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테라스로 나가 일출을 보며 조식을 먹었다. 정말 행복했다.
두 번째는 호스텔이다.
바로 스위스 인터라켄에 있는 'Chalet Hostel'!
내 생에 가본 호스텔 중 가장 깨끗하고 큰 호스텔이었다. 비록 1박에 81,000원 대라는 사악한 가격이었지만 스위스 물가를 고려해보면 납득 가능한 정도다.
내가 놀랐던 점을 몇 가지 꼽자면, 일단 깨끗한 수건을 준다!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부자다.
주방이 아주 크고 식기류가 부족하지 않았다!
침구류, 샤워실, 방, 복도 등 더러운 곳이 없었다!
리셉션 직원들이 일을 친절하고 빠르게 잘 처리해주었다!
심지어 조식을 준다! 그것도 다양하게! 토스트! 요거트! 오렌지주스! 시리얼! 치즈!
지내는 동안 너무 감동스러웠던 곳이다. 단점이 있다면 한국인이 너무 많아서 경주에 수련회 온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
이제 최악의 숙소에 대해 말할건데, 디테일한 정보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배달의 민족 리뷰를 쓸 때도 '사장님만 보이게' 쓰는 편이라...
보스니아에서 모텔에 갔다.
이름은 ***호텔이다. 애매한 게 외국에 있는 모텔은 스스로를 모텔이라 칭하지 않는다. 누가봐도 모텔인데 말이다. 입구에서부터 지하던전의 향기가 났다. 아니나다를까 체크인 과정에서부터 쉽지 않았다. 부킹닷컴에서 미리 예약하고 온 거라 분명 도착 예정 시간을 기재했고 실시간으로 호스트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모텔 앞에 도착한 뒤 40분 넘게 기다려야했다. 주인장이 대체 뭘 하러 나갔는지 감감무소식.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고 메일까지 보내고 나서야 문을 열어주러왔다.
모텔의 분위기는... 지구가 멸망한 뒤 50년이 지난 시점, 살아남은 마지막 인류가 모여 사는 부락 같았다. 식량난에 시달려 뼈 밖에 안남은 사람들이 겨우 생을 연명하는 곳, 거친 자만 남아 곳곳에 피비린내가 나는 곳... 실제로 그정도는 아니지만 내 뇌리에 박힌 이미지가 그렇다.
방 구조가 특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짧은 복도가 보이고 그 끝에 화장실이 딸려있다. 반층 계단을 올라가면 침대가 있는 마루가 나온다. 속이 울렁거릴정도로 퇴폐적인 느낌이 들었다. 방만 뚝 떼어놓고 보면 목장에 딸려있는 농막같았다. 흰개미가 여기를 장악하면 최소 3일 안에 무너질 듯했다.
음, 여기까지는 최악의 숙소라고 뽑힐 정도는 아니다.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삐걱거리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와이파이는 잘 터졌던 걸로 기억). 그런데 내 팔에 뭔가가 스물스물 지나갔다. 뭐지? 싶어서 손으로 냅다 내리쳐 잡았다. 자세히 보니 배드버그였다.
충격.
내 몸을 대놓고 기어다니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다. 그 길로 당장 주인장에게 찾아가 배드버그를 발견했다며 방을 옮겨달라고 했다. 다행히 물리지 않았지만 짐을 다 세탁하느라 진땀을 뺐다.
두 번째는 다른 투숙객과 부딪친 사건.
둘 째날 부터 내 방문 앞 로비 소파에 앉아 담배를 펴대는 아저씨가 있었다. 담배를 무슨 산소호흡기 정도로 생각하는지 5분에 한 대 씩 피웠다. 처음에는 '저 사람은 분명 오래 못 살 거야 더 많이 피워대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심해지자 복도는 물론 방 안까지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또 한 가지. 그들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한 두 시간이면 참겠는데 3시간 동안 왁자지껄 파티를 여셨다. 새벽 1시 쯤 이건 아니다 싶어 잠을 자고 싶으니 제발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경고를 날리고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떠드는 소리가 멎었다.
그 짓거리를 3일 내내 당했다!
정말 최악의 숙소였어.
마지막으로 좋은 숙소를 고르는 팁.
당신이 배낭여행자라면 위치가 가장 중요하다. 구글맵이나 숙소 예약 플랫폼(나는 주로 부킹닷컴을 이용한다)에서 주요 관광지와 가장 가까운 곳 중에 주어진 예산에 맞는 숙소를 골라라.
돈을 아끼겠다며 외곽에 있는 숙소를 구했다가 교통비가 더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다음은 위생. 이 부분에서 깨끗한 숙소를 알아보는 지표는 역시 한국인 리뷰가 많으면 된다.
한국인 리뷰가 많을수록 깨끗하다. 유럽이나 중동 사람들이 깨끗하다고 쓴 리뷰를 보고 가보면 사실 더러운 경우가 많다(그들은 위생 기준이 어느 정도인 걸까?).
만약 당신이 즉흥적인 여행자라 숙소를 미리 예약하는 게 꺼려진다면, 여기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나도 최근에 알게 된 팁인데, 그럴 땐 예약 플렛폼을 통해 예약하는 게 아니라 숙소 정보란에 기재된 메일을 통해 예약하면 된다.
예를 들어, 몇월 며칠에 예약하고 싶습니다라고 메일을 보내면 예약을 진행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복잡한 환불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취소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건 추가적인 조언.
당신이 호스텔에 묵는다면, 그 이점을 적극 활용하길 추천한다. 호스텔 리셉션에 앉아 있는 사람은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숨겨진 관광지라던지 이 지역 최고의 맛집이라던지, 최대한 귀찮게 굴며 많은 것을 물어본다면 더 다채로운 여행을 할 수 있다.
아무쪼록 좋은 숙소를 구해 편안한 여행이 되길 바란다.
이번 부록은 이쯤에서 마무리. 본편에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