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스테판츠민다
나는 눈 오는 도로에 갇혀 있다.
이곳은 스테판츠민다 마을로 가는 길. 3시간 전 트빌리시에서 출발했다.
낡은 미니밴 안에 나와 운전기사, 그리고 운전기사 친구로 보이는 남자가 있다. 그 중년 아저씨 둘은 말이 없다. 기사는 멍하니 앞차를 바라보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붙잡았고 옆에 앉은 아저씨는 퍼즐형 핸드폰 게임에 빠져있다가 이따금씩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밖엔 진눈깨비 눈이 소리 없이 내린다.
차는 움직일 생각도 없이 멈춰있다. 앞뒤로 낡은 승용차나 트럭이 늘어져 있다. 그 끝은 뿌연 하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나는 창밖에 내리는 눈을 구경한다. 큰 눈송이와 작은 눈송이가 떨어지는 속도 차이를 가늠해 본다. 헤드셋으로 전람회의 Blue Christmas를 듣고 있다. 바디감이 높은 레드 와인 같은 목소리라고 생각하면서.
기왕이면 이런 감성적인 말로 이 상황을 포장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너무 배고팠다. 기사는 기름값을 아끼려는지 히터를 자꾸 꺼서 추웠다. 싸구려 인조 가죽 시트가 얼어붙을 정도로 추워지면 다시 틀고, 앞차가 살짝 움직이면 다시 틀고.
언제 갈 수 있냐고 물으면 기사는 30분이라 대답하지만 벌써 1시간째 기약 없이 기다린다. 나는 목도리를 구겨 배게 삼아 차창에 기댄다. 꼬르륵 소리가 나면 배낭에서 남은 젤리를 하나씩 꺼내 녹여 먹으며 버틴다.
이곳은 온통 겨울이다. 입김마다 겨울이 뿜어져 나오고 걷는 걸음마다 겨울이 달라붙는다. 조지아의 귀퉁이에서, 겨울과 함께 갇혀 있다.
왜 이 추운 미니밴 안에 갇히게 됐는지 설명하고 싶지만, 딱히 설명할 것도 없다. 그냥 어쩌다 보니 겨울에 조지아로 왔고, 어쩌다 보니 도로가 막힌 오늘 도시를 떠나 스테판츠민다로 가는 미니밴을 탔다. 그 모든 결정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따져보면 분명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여행이란 리투아니아 리넨 장인이 짠 직물처럼 촘촘한 운명의 그물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행위니까.
오늘은 한국을 떠난 지 86일째 되는 날이다.
이 시기에는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제 귀국하면 무슨 일을 하지 라는 생각이 슬슬 스며들면 자칫 마지막 일주일을 망칠 수 있다. 눈앞에 펄떡이는 신선한 여행을 두고 늘 먹던 걱정을 고를 순 없지 않은가 싶으면서도 이른 현실이 찾아와 나를 좀먹는다. 너 가서 어떻게 살래?라는 목소리가 들리면 뭐라고 대답할지 모르겠다. 나름 긴 여행을 했어도 도통 담담할 수가 없다.
“말보루, 하나 피워보고 싶다.”
가뜩이나 도로에 갇혀 하루를 날려 먹은 것도 억울한데, 옆에 앉은 아저씨는 담배까지 삥 뜯는다. 그래도 별 수 있나. 이렇게 갇힌 것도 인연인데.
“피우세요. 대신 저도 하나 주세요.”
아저씨는 웃으며 이름 모를 담배를 건넸고, 나는 말보루 골드를 내주었다. 동시에 차에서 내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쩐지 어색해서 아저씨와 일정 간격을 두고 떨어졌다. 눈은 계속 내린다. 사람들은 겨울잠 자는 청설모처럼 눈을 피해 차 안에 숨어 있다. 눈이 그치지 않고 이대로 밤새 내린다면 이 청설모들은 봄이 올 때까지 잠을 자야겠지.
아저씨가 준 담배 맛이 구렸다. 알고 있었지만 이 맞교환은 내 손해다.
다시 또 한 시간 뒤, 어스름한 땅거미가 내려앉더니 결국 밤이 됐다.
깜깜해지자 더 추워졌고, 벌써 6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탓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아무리 배고픈 배낭여행이라지만 이 정도 굶주림은 나 자신을 학대하는 수준이다. 기사 아저씨에게 얼마나 더 걸릴 것 같냐 묻는 것도 지쳤다. 옆에 앉은 아저씨는 핸드폰 게임도 질렸는지 팔짱을 끼고 차창 쪽으로 몸을 기댄 채 잠들었다.
딱 이 무렵, 드디어 차가 움직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드디어! 와! 하고 박수를 치자 아저씨 둘은 굿! 이라며 엄지를 척 들어 화답했다. 별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갇혀 있는 동안 공기 중에 내적 친밀감이 분포되어 있었나 보다.
어둠 속을 밝히는 헤드라이트와 붉은 브레이크 등으로 물든 하얀 도로를 달렸다. 20분쯤 달렸을 때, 기사 친구 아저씨가 외딴 시골집 앞에서 내렸고 또 30분쯤 달려 스테판츠민다 마을에 도착했다.
“너, 호텔.”
“가는 길 알려드릴게요.”
사실 트빌리시에서 출발했을 때, 이 미니밴에 다른 승객들도 있었다. 미국인 커플과 러시아 남자. 어찌 된 영문인지 그들은 스테판츠민다까지 가지 않고 ‘아나누리’라고 하는 마을에서 내렸다(도로에 갇힐 걸 알고 있었던 걸까 알고 있었다면 왜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은 거지?).
기사는 오늘 기름값도 벌지 못 했을 거다. 어디서 들었는데 미니밴에 승객을 적어도 5명 이상 태워야 일당을 벌 수 있는 구조라고 했다.
그래도 이 아저씨는 어두운 밤에 내가 길을 잃을까 걱정 됐는지 숙소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자기가 택시도 아니면서… 거기다 계산할 때, 동전을 탈탈 털어보았지만 딱 3라리가 부족했다. 100라리 지폐를 주자 그가 잔돈이 없다며 그냥 37라리만 주고 가라고 했다. 아주 쿨하게.
참아보려 했는데, 도저히 못 참겠다. 이 부분에서 조지아 미니밴 기사와 튀르키예 택시 기사를 비교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사실 이전에 눈 오는 도로에 갇혀 있을 때, 마음을 잼이 되도록 많이 졸였다. 튀르키예 택시 기사에게 당한 게 있어서 이 아저씨들이 찝쩍대거나 돈으로 사기 처먹을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숙소까지 군말 없이 데려다주고 3라리나 깎아 주다니! 생김새는 튀르키예나 조지아나 별 다를 바 없는데, 그 속은 아주 달랐다. 조지아 사람들은 어딘가 털털하고 담백한 면이 있고 튀르키예 사람들은 혈관에 좋지 않은 기름이 많이 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숙소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울타리 문을 열고 공터로 들어갔다. 주인집으로 보이는 2층 건물에 희미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경사면 위에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서 만든 펜션 두 채가 보였다. 워낙 어두워서 그 밖에 멀리 있는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날이 추워 몸을 웅크린 채 앉아 펜션 주인을 기다렸다. 이윽고 키가 2m는 될 정도로 큰 남자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길 건너편 레스토랑 불빛에 의해 그의 실루엣이 보였을 때, 꽤나 공포스러웠다. 로알드달 소설 ‘내 친구 꼬마거인’에 나오는 거인이 떠올랐다. 그가 금방이라도 주머니에서 킁킁 오이를 꺼내 우적우적 먹을 듯했다. 가까이 오자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코가 찰흙으로 빚어서 붙인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컸다.
“……….”
그가 손짓으로 컨테이너 숙소를 가리켰다. 그러더니 냅다 조지아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영어로 되물어도 소용없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아주 천천히 말했다. 근데 희한한 건, 뭐라는지 대충 알아듣겠다는 거다.
“여기 불 켜는 스위치가 있고… 저기에 보면 와이파이 비밀번호… 보일러는…”
이건 내가 초월 번역 한 것인데, 아마 맞을 거다. 숙소 불을 켜고 밝은 데서 그의 얼굴을 다시 봤다.
정말 기묘하리만큼 코가 컸다.
조목조목 따져 보면 눈도 크고 귀도 컸지만 코가 압승이다. 그게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 숙소의 첫인상을 묻는다면 자연스레 큰 코가 떠오른다. 아무튼 빅노즈 사장님 덕분에 잘 체크인했다.
숙소 안은 아늑했다. 2인용 숙소라 침대가 퀸사이즈였고, 가운이나 슬리퍼, 의자, 수건, 칫솔 모든 게 두 개씩 있었다(이런 걸 보면 자연스레 외로워진다). 화장실이 깔끔했고, 휘황찬란한 패턴의 이불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한 가지 단점 있다면 두꺼운 샤워가운에서 익숙한 악취가 났다. 그건, 고등학생 때 자주 가던 학교 앞 카페의 담요 냄새다. 그 담요는 개업이래 단 한 번도 세탁한 적이 없는 걸로 유명했다. 그 전설의 담요 냄새가 조지아 펜션 샤워가운에서 폴폴 풍겼다. 어쩌면 조금 향수병을 자극했을지도.
나는 짐을 풀자마자 펜션 건너편 길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달려갔다.
오는 길에 봐둔 곳이다. 한눈에 봐도 꽤나 고급 레스토랑으로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무슨 날인가. 하루종일 제대로 된 밥 한 끼 못 먹고 고생한 날 아닌가. 나는 네이버에 라리 환전을 검색해보지 않고 카드를 긁겠다는 다짐을 한 뒤 문을 열었다.
잿빛 에폭시가 깔린 바닥, 라운드 형 통유리창에 달린 줄 조명들... 레스토랑 한편에 대형 트리가 있었고 넓은 우드 테이블 위에 모던한 느낌을 주는 리넨 테이블 매트가 깔려 있었다. 감각적인 조명 하며 낮게 깔린 크리스마스 재즈 하며 생화 꽃병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내 통장 출혈이 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스타터는 버섯 수프. 내 인생 최고의 수프로 단 번에 등극.
내가 지금까지 먹어온 버섯은 그저 곰팡이라 치부해도 좋을 만큼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자고로 버섯이라 하면 이런 것이라고 가르쳐 준 나의 스승이라 부르고 싶다. 부드럽고 향긋하며 고소하고 진했다. 수프 위에 캐러멜 색으로 구운 식빵 러스크 3개가 있었다. 수프에 적셔 먹으면 그야말로 극락. 요아정도 아닌데 토핑 추가를 연타하고 싶어지는 그런 맛.
메인 요리로 나온 전통 음식은 별로였다. 달궈진 팬에 토마토소스와 조린 고기가 나왔는데, 맛이 그냥 그래서 잘 기억 안 난다. 김밥천국 제육볶음이 15배 더 맛있다.
오늘은 플렉스 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추가 주문한 비프 샐러드. 구운 토르티야 그릇에 양상추, 애호박?, 오이, 구운 고기, 스위트 칠리소스가 뿌려진 샐러드다. 야채가 시들시들하니 가만히 내버려 두면 지 스스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기세다. 장담하건대, 이 양상추는 다른 요리에 쓰고 남은 자투리다.
샐러드를 먹을 때, 갑자기 앞 테이블에 있던 커플이 레스토랑 셰프와 싸우기 시작했다.
조지아어로 말해서 내용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들은 언성을 높이고 분노의 에너지를 주고받았다. 장장 20분 동안 싸웠다. 여자는 가만히 앉아 있었고, UFC 선수 제프 몬슨처럼 생긴 남자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화를 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저 남자에게도 시들시들한 야채가 갔을까.
아직도 그들이 싸운 이유를 알 수 없다. 식사를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종업원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관뒀다. 그때는 제프 몬슨처럼 생긴 그 남자가 내 숙소 문을 부수고 쳐들어 올까봐 무서웠다. 아무래도 물어볼 걸 그랬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궁금하다.
참고로 밥값은 하우스 와인까지 76.7라리 나왔다. 조금 부끄러워져서 원화로 얼마인지 안 가르쳐 줄 거다. 내 기준 꽤 플렉스이긴 한데…
숙소로 돌아왔다. 배를 채우니까 이제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이곳의 밤은 너무 어두웠다. 도처에 사람이 깔려 있는 도시에서 자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완벽한 어둠과 온전한 무소음 상태. 아, 외롭구나.
꽃무늬 이불을 덮고 누웠다. 하루종일 데미지가 쌓인 허리에서 뭉근한 통증이 느껴졌다. 오늘 이동한 거리를 헤아리며 잠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적거릴 틈이 없었다. 어젯밤, 어두워서 이 주변을 못봤기 때문에 숙소 뷰가 어떤지 궁금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걸어가 통유리 대문에 쳐 두었던 흰 커튼을 걷었다.
하얀 설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홀린 듯 대문 밖으로 나갔다.
숨이 턱 막혔다.
5초 동안은 숨 쉬는 법을 까먹을 정도로 그 풍경에 압도당했다.
이런 게 내 앞에 있었어?
그런 생각만 들었다. 자욱하게 내려앉은 흰구름이 마치 드라이아이스에 뜨거운 물을 부은 것처럼 피어올라 카즈베기 산 능선 위에서 아랑거렸다. 이 작은 마을은 산의 커다란 어깨로 휘장을 쳐 둔 채 옹송그린 모양새였다.
하얀 눈이 컵케익 위에 뿌린 슈가 파우더처럼 살포시 내려앉아 굴곡진 산의 혈관이 제대로 보였다. 얼마나 가까이 보이는지 그 산줄기를 보고 세밀화를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저 멍하니 한참 동안 카즈베기 산을 마주 본 채 서 있었다. 이 풍경을 본 순간 오늘 뭘 하기로 했는지 잊어버렸다. 그저 가만히 앉아 이 산만 보며 하루를 보내도 내 생에 가장 황홀한 날이 될 것 같았다.
아아, 지금도 그때 그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이 문장을 쓰는 순간순간 저릿한 감정이 되살아나 자꾸 가슴이 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날 도로에 갇혔다 밤에 도착한 게 그 짧은 5초를 위해 놓인 포석 같다.
나는 일단 마을을 탐방하기로 했다.
낮에는 참 많은 게 달랐다. 어젯밤에 갔던 크리스마스 분위기 레스토랑은 마치 고층 빌딩 꼭지 부분을 뚝 떼어 황무지에 툭 던져 놓은 것처럼 이질감이 들었다. 이곳의 목가적이고 어딘가 척박한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랄까. 문이 닫혀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레스토랑을 지나 더 걸어가니 나무가 있는 작은 공터에 버려진 버스가 있었다.
색이 바랜 빨간 버스는 얼마나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는지 가늠이 안 갈 정도로 만신창이였다. 나는 왠지 쉽게 지나칠 수 없어서 길가에 멈춰 그 버스를 유심히 봤다.
그렇다. 이렇게 ‘제대로’ 버려진 버스는 처음 본다. 유리창이 이리저리 깨졌고, 먼지가 두껍게 쌓였다. 게다가 온 사방에 락카 스프레이로 낙서를 해놨다. 버스 옆을 힐끔 보니 문이 열려 있었지만 들어가 볼 용기가 없어 지나쳤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느낀 건데, 여기는 들개가 많았다.
유럽 마을도 한국과 다르지 않게 대부분 길고양이가 주를 이루는데, 카즈베기는 들개가 꽉 잡고 있다. 개들은 하릴없이 동네를 어슬렁 거린다. 늑대처럼 큰 개부터 꼬질꼬질한 시골 똥개까지 다양하다. 나 같은 관광객이 지나가며 보기에는 언뜻 평화로워 보이나 틀림없이 붉은 피가 낭자한 서열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시골 개들도 딱히 편한 삶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카즈베기 마을에는 마트가 하나 있다. 여느 유럽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슈퍼마켓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갖춘 마트다. 비수기라 그런지 주변에 택시 기사만 들개처럼 어슬렁 거리는데, 이 깔끔한 마트만 ‘이곳은 관광지다’라는 인상을 주었다.
오늘은 트레킹을 할 생각이라 샌드위치 재료와 컵라면, 저녁에 마실 와인과 입이 심심할 때 먹을 과자를 샀다. 조지아 물가는 싸다. 정말 싸다. 통장 잔고가 바닥난 이 무렵 여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두 손 가득 먹을 걸 들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서 컵라면을 먹고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바게트 빵과 살라미, 마요네즈 조합이다. 배낭을 가볍게 메고 길을 나섰다.
여행 중 트레킹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겨울길을 걷는 건 처음이었다.
스테판츠민다 마을과 이어져 있는 길을 따라 2시간 정도 도로 길을 걸으면 오늘 목적지인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가 있다. 그 교회는 스테판츠민다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해발 2,170m 언덕 꼭대기에 있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 교회를 보기 위해 이 마을을 찾는다고 한다(갑자기 전문 여행 작가 흉내를 내서 미안하다).
나는 어쩌다 본 사진 한 장에 여기까지 왔다. 전부터 조지아가 한국 여권으로 1년 동안 무비자 체류가 가능한 나라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스위스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볼 수 있어 트레킹 성지라고 불리고 와인 종주국이라는 타이틀도 있다. 게다가 물가가 굉장히 싸다.
여기까지 정보를 습득했을 때,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뭔가 비행기 표를 살 정도로 확 끌리는 마지막 무언가가 없었다. 예를 들면 내가 오디션 심사위원이라고 쳤을 때, 조지아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고 심지어 예쁘거나 잘생겼지만 ‘매력’이 없어 최종 면접 단계에서 끝내 탈락하는 비운의 연습생이랄까. 그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게 바로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 사진이다.
푸른 언덕 위, 뗏목처럼 자연 속을 표류하고 있는 어느 교회가 조지아 스테판츠민다 마을에 있다기에 왔다. 사실 어떤 나라에 가야지라고 마음먹는 것은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진 한 장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그리스는 바다가 예뻐서, 튀르키예는 열기구 때문에, 슬로베니아는 안전해서, 독일은 맥주가 맛있으니까. 뭐, 이런 식이다.
물론 겨울에 온 건 실수였다.
눈 덮인 설산도 멋있겠지, 하고 넘겨짚은 결정에는 눈 덮인 길이 이토록 걷기 힘들다는 예상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겨울 트레킹은 정말 힘들다.
스테판츠민다 마을에는 오스트리아 소도시나 스위스 산골마을처럼 동화 같은 집이 없다. 그저 내 몸 하나 누울 공간이면 충분해라는 생각으로 지은 듯한 판잣집이나 돌담을 쌓아 둔 벽돌집, 그것도 아니면 컨테이너 박스 집이 모여 있다. 전체적으로 칙칙하다. 그 골목 사이사이 젖소나 양, 염소, 나귀, 들개가 돌아다닌다. 동물이 이렇게 많으니 길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똥이 쌓여 있다.
마을을 벗어나자 약간은 경사진 아스팔트 도로가 나왔다. 눈이 적어도 20cm는 쌓였다.
그나마 트레킹 초입에는 차가 지나다닌 흔적이 있어 걸을만했다. 무엇보다 내 눈앞에 보이는 카즈베기 산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힘든 줄 몰랐다. 그러나 올라갈수록 점점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많아졌다. 미끄러워서 다리에 힘이 두 배로 들었다. 그때부터 안개 낀 설산 봉우리도 그 밑에 4B연필로 그린 듯한 사이프러스 나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와, 장난 아니구나 택시 타고 갈 걸 그랬나라고 중얼거리며 땅만 보고 걸었다.
그 눈길을 걸으며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눈 언덕에는 바람이 쓸고 간 흔적이 남아있다. 그 흔적은 멈춘 파도 같았다. 나는 그 조용하고 섬세한 흔적을 알아차리고 한동안 유심히 관조했다. 서울에 눈이 내리면 대부분 바람이 손을 쓰기 전에 차바퀴나 사람이 먼저 지르밟는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수십 번 겨울을 났지만 바람이 눈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이건 내게 마치 뱅크시의 정체가 결국 밝혀졌다던가 하는 정도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숲길을 지나갈 때, 관광객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차를 잠시 갓길에 세워두고 눈을 구경했다. 두 커플인지 남자 둘, 여자 둘이다. 나는 그냥 힐끔 보고 그대로 지나쳤다. 그런데 내가 한 다섯 걸음 정도 갔을 때, 뒤에서 어떤 남자가 “니하오!”라고 소리쳤다. 내가 뒤를 돌아보자 그 두 커플은 낄낄 대며 웃었다. 하하, 이걸 어쩌지. 눈을 뭉쳐 던질까 하다가 “나 중국인 아니야.”라고 소리치고 가던 길 가는 쪽을 택했다. 이럴 때는 뭘 해도 이 외로운 분노가 풀리지 않는다.
두 시간 반을 내리 걸었다. 눈이 갈수록 더 많아져서 이 세상 동양인은 다 중국인인 줄 아는 멍청이 차라도 얻어 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꿋꿋이 걸었다(사실 쉴 수 없어서 걸었다 추웠고 앉을 곳이 없었다).
트레킹을 하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 ‘저 앞에 뭔가가 있다’라는 직감이 발달한다.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질수록 그 직감이 번뜩거린다. 이런 곳을 걸을 땐 구글 지도 GPS가 정확하지 않아 아 이 정도면 반 왔구나, 아직 멀었구나 하고 유추하는 수밖에 없으니 거리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이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가 내 시야에 들어오기 5분 전부터 뭔가 엄청난 게 다가오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탁 트이고 쭉 뻗은 길이 나왔다. 이윽고 저 멀리 조그마하게 교회가 보였다. 나는 극도로 흥분했다. 밀려오던 직감이 달아올라 부글부글 끓더니 팡하고 터졌다. 그걸 도파민이라고 부르는지 엔도르핀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점점 더 가까이 그 교회에 다가갈수록 두 팔에 소름이 돋았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언덕 위 가장 높은 곳에 잿빛 벽돌로 지은 교회가 우두커니 있었다. 그 뒤로 장엄한 기개가 느껴지는 설산이 있어 마치 우울증이 있는 인상주의 화가가 그린 그림 같았다. 교회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하얀 화선지 가운데 떨어트린 먹물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비록 내가 사진으로 봤던 파르께한 여름 산 풍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관광객으로 가득 찬 8월에 왔다면 지금처럼 하얀 천국을 홀로 걷진 못 했겠지. 이 외딴 교회는 늘 이렇게 여기에 서 있다는 공허한 사실도 알지 못했겠지.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이 많았다. 눈밭을 뚫고 걸어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는지 주차장이 꽉 차있다. 사실 차로 오는 게 맞다. 게다가 이렇게 눈이 내린 때는… 참고로 걸어서 2시간 반, 차로 20분 거리다.
경치를 보기 위해 한 바퀴 돌아보았다. 산이 내 눈높이에 올라와 있어 황홀했다. 소문대로 스테판츠민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쌍화탕 위에 뿌린 참깨처럼 작은 건물들이 한데 모였다. 그건 그렇고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너무 불어서 여유 있는 감상은 조금 힘들었다.
샌드위치를 먹을까 하다가 그다지 배고프지 않아 경치가 예쁜 곳에 잠시 앉아있었다. 멍하니 산을 보고 있었는데, 내 앞에 있던 어느 커플이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하, 또 한국인으로 서 대충 찍을 수 없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 구도를 잡고 자연스러운 연출을 위해 디렉팅을 했다. 마주 보고 웃으세요라던가, 다른 포즈를 해보세요 등…
여자는 딱 봐도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꽤 많아 보였다. 커다란 링귀걸이와 튀는 패턴의 헤어밴드, 초록색 코트가 꽤 잘 어울렸고 예뻤다. 남자 쪽도 키가 크고 브라운 계열 곱슬머리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훈훈한 외모였다. 사진을 다 찍고 돌려주자 그들은 너무 고맙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너도 찍어줄까?라고 묻길래 손사래를 쳤다. 사실 나도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두 사람이 너무 잘 어울려 보여서 혼자 찍기 싫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지금이라도 택시를 잡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분명 위험할 것이다.
교회 옆 공터에 차가 꽤 있길래 서성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배불뚝이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택시? 카즈베기?”
“네, 마을까지 가고 싶은데 얼마인가요?”
“20라리.”
트빌리시에서 여기까지 3시간 거리가 40라리였는데, 꼴랑 20분 가면서 그 절반 가격을 부르다니(원화로 만원이다). 나는 속으로 제대로 흥정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죽어도 안 깎아주겠다면 걸어가면 되는 일이니까.
“노노노. 7라리.”
“노노노노. 20라리.”
이런 식으로 실랑이를 하던 중,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아까 내가 사진을 찍어준 커플이다. 여자는 불쑥 다가와 내 앞에 있던 그 택시기사의 봉고차를 타면서 내게 말했다.
“택시 탈 거야? 같이 타고 가자. 우리가 왕복으로 빌린 거라 돈 낼 필요 없어.”
“정말? 그래도 될까?”
“물론이지. 얼른 타!”
땡잡았다. 다이애나 왕세자비 왈 보상을 기대하지 말고 무작위로 친절을 행하라 했거늘, 틀린 말 하나 없다. 아무튼 고마운 마음으로 택시를 얻어 탔다.
“나는 조지아 사람이야. 너는?”
예쁜 여자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독일사람. 만나서 반가워.”
남자가 말했다. 둘 다 이름을 말해줬을 텐데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마을로 가는 20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둘은 여행 중 만나 커플이 된 유형이다. 남자는 여자를 보러 조지아에 왔고 그런 김에 관광 중이라고 했다. 눈 덮인 언덕에서 꺄르륵 웃으며 뛰어다니던 둘의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나는 부러움을 들키지 않으려 혼자서 여행하는 게 편하고 좋다는 식으로 말했다.
숙소로 돌아와 레드 와인을 오픈했다.
분명 차를 얻어 타서 기분이 좋았는데 돌아와 거울을 보니 내 눈동자가 텅 비어있었다. 유감이지만 이럴 땐 수정체에 알코올을 주입해야 한다.
주방에 있던 원형 철제 테이블과 라탄 에그 체어를 숙소 앞 데크로 옮겼다. 샤워를 한 뒤 옷을 입고 그 냄새나는 가운을 걸쳤다. 어쩐지 가운을 입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여서 코가 마비될 때까지 냄새를 견뎠다.
샌드위치와 카즈베기 산을 안주삼아 조지아 산 레드와인을 마셨다. 묵직하고 깊은 향과 떫은맛이 느껴졌다. 과연 와인 종주국답다. 어느 노파가 집에서 직접 담근 것처럼 진했다.
이 날엔 이렇게 해가 질 때까지 와인에 취해있었다. 산이 주는 울림에 외로움이 가셨다가 조용한 방에 혼자 누우면 다시 들러붙어 속이 시끄러워졌다. 나는 결국 깊은 밤을 이기지 못하고 미디어에 정신을 위탁했다. 중독성이 강한 드라마를 보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이 밤도 그럭저럭 보낼 수 있다.
이튿날 아침, 이곳에서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배낭 주머니 어딘가에 처 박혀 있던 네스커피를 타 마셨다. 이 마을에는 30분 거리 호텔에나 가야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며칠 째 인스턴트커피로 버티는 중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 이상한 꿈을 꿨다.
나는 여행을 할 때 꿈을 많이 꾸는 편인데, 내 꿈에는 ‘최근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나오곤 한다. 혼자 여행을 하면 두려운 게 많아져서 꿈으로 분출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오스트리아에 있을 때, 기괴한 꿈을 꿨다. 생판 모르는 남자의 다리가 잘리는 꿈이었다. 나는 그 남자의 다리를 주워서 논에 심었다.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무 뽑듯 뽑으니까 잘린 부분에 깨끗하고 연한 핑크빛 살이 돋아났고, 가운데에 허연 뼈가 툭 튀어나와 자랐다. 전날 진돗개가 건조된 타조 정강이를 먹는 영상을 봐서 그런 꿈을 꿨나 보다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며칠 전 폴란드 호스텔 계단에서 넘어져 구른 바람에 정강이를 크게 다쳤다. 그 사건의 여파가 커서 꿈도 강렬한 꿈을 꾼 거다. 아직도 내 정강이에는 흉터가 깊게 남아있고, 그 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카즈베기에서 꾼 꿈에는 어린 남자아이들이 나왔다. 그 애들은 내 숙소 주변을 맴돌다가 돌을 던졌다. 유리창이 깨지고 문이 열렸다. 그러더니 내 침대 쪽으로 와 나에게 나가라고 소리쳤다. 카랑카랑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귀를 찢는 듯했다. 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입만 뻐끔댔다.
중간에 기억이 잘렸다가 다시 이어지는 장면으로는 어느 호스텔 방 안이었다. 그 방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서 쓰고 있던 안경에 김까지 서렸다. 그곳에서도 어느 외국인 여자가 와서 내 침대를 빼앗았다. 그녀는 자신이 예약한 내역을 보여주며 내게 나가라고 했다. 그 여자와 실랑이를 하다가 잠에서 깼다.
나는 이상하고 긴 꿈을 꾸면 늘 내가 왜 이 꿈을 꿨지? 하고 생각해 보는데, 아무래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안전하지 않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동안 대문을 잠그지 못했다. 아무리 시도해도 열쇠가 말을 듣지 않았다. 어린 남자아이들이 나온 건 낮에 빅노즈 사장님의 아들들이 공터에서 뛰어노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나저나 내 꿈에서 나는 왜 내쫓겼을까? 그럴 이유는 없는데. 지금 여행하는 게 참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숙소 밖으로 나왔다. 스테판츠민다 마을에 온 둘째 날 봤던 버려진 버스를 보러 가기 위함이었다.
이상하게 그 버스가 자꾸 신경 쓰였다.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뚫어져라 쳐다봤고 트레킹을 하거나 숙소에서 밥을 먹을 때도 버스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한 번도 버스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마지막 날인 오늘 마음먹었다. 그 버스 안에 들어가 보기로.
버스로 다가갔다. 푹신한 흙바닥 위에 덩그러니 버려진 빨간 버스. 다시 봐도 기묘했다.
버스는 뒷부분이 도로 쪽에 있고 앞부분이 숲 속을 향해 있어서 만약 시동을 걸고 달린다면 나무를 들이받고 금방 부서질 것 같았다. 나무가 아니라 이 버스 쪽이 산산조각 나겠지 분명.
열려있는 옆문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정면으로 겨자색 벨벳 소파가 보였다. 흙먼지를 가득 머금고 있어 건드리면 안 될 듯했다. 차창에는 잉크가 다 빠져서 푸르게 바랜 대형 포스터가 펜스에 끼워져 있었다. 이쪽도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Free WiFi나 Camping, Bar, Bonfire 정도. 펜션 홍보 포스터 같은데 마치 30년 전 운영되다가 어느 미친 사이코 살인마가 그곳에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바람에 폐업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감상이다. 오해 말아주시길.
버스 안은 철판 바닥으로 되어 있어 내가 걸을 때마다 둥둥, 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유리조각이나 낙엽, 나무토막, 음료수 병 따위가 널브러져 있어 깨금발로 살며시 움직였다. 옆으로 돌자 회색 헤링본 시트로 된 버스 좌석이 그대로 있었다. 맨 뒷줄에 5개, 등을 맞댄 좌석이 좌우로 4개씩, 거기에 마주 보는 좌석 2개씩 더. 멀리서 봤을 땐 마을버스 정도 되겠거니 했는데, 고치고 개조하면 고속버스로도 쓸 수 있을 정도로 내부가 넓었다. 이 버스가 살아생전 어떤 승객들을 태웠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내가 받았던 첫 느낌은 ‘공포’다.
좌측 벽에 꽤 큰 3단 철제 선반이 있었다. 두 번째 칸에 상아색 주전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물을 가득 넣고 끓이면 딱 커피 두 잔 정도 나올 듯한 주전자에는 장미꽃이 그려져 있다. 도대체 누가 여기에 주전자를 놓고 갔을까. 뭔가 알아내려 안으로 들어왔건만 궁금증만 쌓여갔다.
내가 공포스러웠던 부분은 노란 소파도 장미꽃 주전자도, 누군가 앉아 있었던 것 같은 버스 좌석도 아닌 유리창 때문이었다. 밖에서 볼 땐 은연중에 내가 던지는 입장이라 느껴서 그런지 깨진 유리창이 그다지 폭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안에 들어와서' 보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깨진 모양에서 누군가의 분노가 느껴졌다. 이 정도면 장난 삼아 돌멩이를 던지는 정도가 아니라 작정하고 야구 방망이를 가져와 내리친 듯한 자국이다. 전체적으로 난도질을 당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 안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저 유리창이 깨지는 순간 얼마나 두려웠을까.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 순간을 그려보다가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마을 한구석에 버려진 버스가 왜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이상한 버스는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아주 묵직한 엔진소리를 냈다. 굴러가지도 않으면서. 그 공간은 깨진 유리창 사이로 증식해서 여러 갈래로 뻗어져 나갔다. 그 이후 내게 버려진 버스는 많은 의미를 가졌다.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버려진 버스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버스에 다녀온 뒤로 마음이 복잡 미묘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실컷 청승이나 떨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두 번째 와인을 오픈했다. 이번에도 레드 와인이다.
어제처럼 카즈베기 산을 볼 수 있게 밖으로 나와 앉았다. 샌드위치 용 살라미가 남아서 와인 한 입에 하나씩 먹었다. 스테판츠민다 마을에 온 이후 오늘이 가장 맑았다. 늘 구름이 산을 반쯤 가린 채 어슬렁 거렸는데, 처음으로 꼭대기 봉우리까지 다 보였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나는 혼자다.
와인을 더 마셨다. 툭 터놓고 묻자. 그래서 너는 혼자 여행하는 게 정말로 좋아?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한 친구와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지 않냐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문득이 아닐지도 모른다. 조지아에 온 뒤로 유독 커플과 많이 마주쳤다. 그래서 외롭나 하고 스스로를 두둔하며 살라미를 먹었다.
구름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관찰했다.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꼬물꼬물 거리기는 하는데 움직이고 있는 건지 아닌지 헷갈린다. 다른 곳을 보다가 다시 봐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걸 보면 왜 감정이 구름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푸른 하늘이 보였다가 구름이 스르륵 내려왔다가 또 커튼처럼 걷혔다가 덮였다가…
나는 한참 동안 구름을 관찰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깊은 공상에 빠져들었다. 이곳에는 설산과 레드와인, 옛 음악, 그리고 나밖에 없다.
이건 분명 내가 아는 그 외로운 느낌이 맞는데 어쩐지 행복했다. 안 좋은 줄 알았던 고독이 풍경과 와인에 뒤섞여 감미로워졌다. 외로움이 이토록 감미롭다니? 믿을 수 없었다. 해가 지면서 산 위에 있던 안개가 헌걸차게 내려오고 저 멀리 모여 있는 벽돌집에 하나둘씩 불이 들어왔다. 나는 어두워져서 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풍경을 응시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혼자라서 좋았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도, 누군가의 연락도, 정신을 맡길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이 작은 몸뚱이 하나만으로 행복했다.
그동안 여기에 오기까지 모든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순간은 마치 정글 숲을 헤치고 들어가야만 얻을 수 있는 희귀한 과일 같았다. 이 다디단 과육을 맛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나.
이건 외로움과 싸우기 위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정면으로 마주 보고 주먹다짐을 한다기보다는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그래퍼처럼 야생 동물 같은 외로움을 쫓아다니며 연구하는 것에 더 가깝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이건 내 외로움에 대한 고찰이다.
만약 내 외로움이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일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또 다른 존재일까. 말이 많은 편일까 적은 편일까. 확실한 건 MBTI 같은 걸로 규정할 수 없을 것 같다.
휘어잡을수록 강해지고, 쫓아가면 달아나고. 그럭저럭 살만할 땐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기체 상태였다가 절망적으로 그놈을 피하고 싶어지면 강한 육체를 갖고 와 나를 짓누르고.
가끔 글 쓰는 걸 도와주러 올 땐 예쁘게 치장한 채 사근대면서 웅크리고 괴로워할 때는 누구보다 무서운 얼굴로 밤새 내 목을 조르고.
찬란한 순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그게 또 음영이 없는 그림처럼 보여서 또다시 찾게 되고.
모든 인간들은 살면서 평생 동안 해소해야 하는 총량의 외로움이 있는 것 같다. 초년이든 말년이든 외로움을 헤쳐나가는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다. 늘 조금씩 은은하게 외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로움을 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어느 시기에 폭발하는 외로움을 마주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아직 다 살아보지 않아서 어느 유형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전처럼 두렵지는 않다.
이 정도로 알고 있다면 그래도 벗 삼아 와인 한 잔 할 수 있는 정도 아닐까 해서.
짐을 챙기고 떠날 채비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카즈베기 산을 보며 작별인사를 했다.
첫날에 갔던 레스토랑을 지나 다리를 건너 마트가 있는 곳에 가면 표지판 없는 정류장이 있다. 한눈에 봐도 정류장이라 굳이 표지판을 세울 필요가 없긴 하다. 조지아 사람들은 불필요한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들개 밥그릇도 굳이 반려견용을 쓰지 않고 이 나간 그릇을 쓴다. 참, 소박하다.
돌아가는 길엔 돈도 아낄 겸 마슈로카를 탈 생각이라 그 근처를 서성이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바로 첫날 나를 태워다 준 미니밴 기사다.
“오! 아직 여기 있었네요?”
기사는 피우던 담배를 들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그러더니 “트빌리시. 트빌리시.” 라며 함께 돌아가자고 꼬드겼다. 나는 아저씨의 성화에 못 이겨 그만 가방을 내어주었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었다.
낡은 미니밴을 타고 달렸다. 설경을 지나 밀밭을 지나 회색 도시를 향해.
조지아는 도로 사정이 안 좋다. 이놈의 도로는 보수공사를 안 하는지 잔뜩 부서져서 울퉁불퉁하다. 나는 미니밴 안에서 퉁퉁 튀어 올랐다. 그 기억이, 그 느낌이 오랫동안 내 몸에 남아있었다.
어디서든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도로가 말을 걸어온다. 도로에 난 홈 하나하나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조지아는 우락부락한 남자 목소리 같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커다란 몸짓과 함께 천천히 말해서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목소리.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릴 때 그 목소리가 들린다. 그럼 언제든 조지아로 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