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티미쇼아라-브라쇼브
루마니아로 떠나는 날,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일찍 잠에서 깼다.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내리는 비에 쇳가루가 섞여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차가운 냄새가 났다. 비는 곧은 직선을 그리며 아스팔트로 추락했다. 이곳이 숲 속이었다면 흙에서 올라오는 싱싱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비가 내리는 족족 녹슨 수로를 향해 가는 도시에서는 비릿한 기분만 느껴질 뿐이다.
오늘 루마니아로 가는 길이 멀고도 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가야 했다. 전날 ‘GEA TOURS’라는 여행사에서 티미쇼아라행 봉고차를 예약해 두었다. 세르비아에는 루마니아로 가는 플릭스 버스가 없었고, 비행기는 직항도 아닌 게 터무니없이 비싸 여행사를 끼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약속시간 10분 전, 호스텔 건물 밖으로 나왔다. 차가 근처를 돌며 사람들을 픽업하고 오는 길이라 언제 올지 몰라 일찍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도시 소음에 뒤섞인 목소리로 도착했다고 말했다. 큰길에 차가 많아서 한참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보라색 글씨로 ‘GEA’라 적힌 봉고차를 발견했다. 나는 굵은 빗방울을 뚫고 달려가 차에 탔다.
“이름?”
“예. 인. 정”
“오케이 출발.”
루마니아는 너무 추웠다.
세르비아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레더재킷 하나로 버틸만했는데 여기는 달랐다. 무스탕 재킷 속에 갖고 있는 옷가지를 전부 껴 입어도 칼바람을 막을 수 없었다. 바람이 뭐 이리 거세고 날카롭게 부는지 귀가 잘려나가는 줄 알았다. 마지막 가을바람이 겨울의 문턱으로 나를 떠미는 듯했다.
티미쇼아라는 아름다웠다. 작지만 고풍스러운 오페라 하우스를 시작으로 줄지은 건물이 예뻤다.
희고 클래식한 건물은 오스트리아 빈, 광장 중앙에 작은 관람차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잿빛 빌딩은 독일 베를린을 연상케 했다. 이 나라의 특색은 뭘까? 아마 저 멀리 보이는 성이겠지.
관람차 너머에 진갈색 벽돌로 지어진 성이 있었다. 짙은 초록색 고깔모자를 쓰고 꼿꼿이 서 있는 그 모습이 이곳의 랜드마크라는 인상을 톡톡히 주었다. 보름달이 뜬 밤, 스산한 안개 효과와 함께 드라큘라가 등장하기 딱 좋은 성이다. 나는 멀리서 그 성을 멍하니 보다가 이만 돌아섰다. 사실 성이고 뭐고 너무 추워서 견딜 수 없었다.
광장 근처에 있는 옷가게에서 2만 원짜리 목도리를 샀다.
얼굴과 목을 꽁꽁 싸매고 나니 한결 나아졌다. 배가 고팠다. 눈앞에 보이는 맥도날드에 들어가 쿼터 파운드 치즈 버거 세트를 먹었다. 여행 중엔 역시 지겹도록 맥도날드다.
소화도 시킬 겸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어딘가 공허한 광장에 분수가 있었다. 그러나 작동하지 않아 그저 빗물받이로 전락한 모습이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색이 다채로웠다. 여기는 체코 프라하 느낌이 나네. 민트색, 노란색, 보라색. 그 배경이 잘 보이는 카페로 갔다. 추웠지만 야외 테이블에 앉고 싶었다(나를 청개구리라고 불러도 좋다). 전기난로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자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카푸치노를 마셨다. 날이 추워 금방 식었다. 맞은편 대각선 자리에 앉은 외국인 할아버지가 자꾸 크게 기침했다. 그 모습에 전날밤에 본 정보가 떠올랐다. 루마니아의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EU국가 중 최저라는 기사였다. 여기서 코로나에 걸리는 상상을 해보았다. 괜히 움츠러들어 목도리로 입가를 가렸다.
둘째 날, 광장에서 가장 줄이 긴 빵집에서 페스츄리를 먹었다. 인기의 비결은 맛이 아니라 싼 가격이었다.
나는 내일 ‘브라쇼브(Brasov)’라는 도시로 이동할 계획이다. 이유는 모르겠다만 루마니아 온라인 티켓 사이트에서 내 카드로 결제가 되지 않아 직접 티켓을 사야 했다.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 몸이 고생할 수밖에.
잿빛 도로 옆 인도를 20분 동안 걸었다. 광장을 벗어나자마자 펼쳐진 풍경에서 루마니아 역사의 잔재를 목격했다. 세우다 만 것 같은 건물이나 버려진 공터,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해 애매하게 자란 가로수 나무, 이름 없는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따뜻한 관광지 영역을 벗어나자마자 왜 루마니아가 동유럽의 북한이라 불리는지 알게 됐다.
1965년부터 1989년까지 루마니아를 지배한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의 역사적 독재자 중 가장 유명하고 악명이 높다. 나라를 몰락시킨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산주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난 지 35년이 지났지만(물론 짧은 시간이다), 루마니아는 아직도 곳곳에 냉기를 품고 있었다. 사람이나 국가나 상처는 참 오래간다.
기차역에 도착했다. 역시나 건물이 심하게 낙후되어 있었다. 이게 정말 기차역 맞나 할 정도로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간판도 제대로 달려있지 않았다. 그나마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통로로 들어가자 창구가 있었다.
기차 시간이 뜨는 전광판 아래, 따분한 직원이 앉아있는 1번 창구로 갔다. 그 직원은 나이 든 여자였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내일 브라쇼브로 가는 기차 티켓을 사고 싶어요.”
“………”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핵심적인 단어만 골라 다시 말했다.
“내일, 브라쇼브, 기차, 표.”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낡은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탁탁 두드렸다.
“시간.”
그녀가 드디어 말했다. 오래된 마이크를 타고 와서인지 탁하고 허스키한 음성이었다.
“시간표를 볼 수 있나요?”
“아침.”
“시간표!”
“아침.”
“오케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완고한 표정이나 거친 목소리가 나를 수긍하게 만들었다. 나는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내일 브라쇼브로 가는 기차가 맞냐고 3번이나 물었다. 그녀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나서야 내 카드를 넘겼다.
창구 구멍을 통해 표를 받았다. 그리고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오전 6시 4분 출발… 오후 7시 14분 도착.
장장 13시간 동안 기차를 타야 했다. 게다가 수도인 부쿠레슈티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 일정이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그 창구로 가서 표를 변경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요 속의 외침은 이만하면 됐다.
또 한 가지. 마음속 한편에 이렇게 오랫동안 기차를 탈 일이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있을까 싶었다. 아아, 참 바보 같게도 나는 그 표를 갖고 기차역을 나왔다.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중얼거렸던 것 같다.
다음 날 오전 4시 반,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짐을 챙겼다. 망할 호스텔을 떠나서 좋았다. 드디어 이 코골이 소굴을 벗어나는구나 싶었다.
새벽공기가 차가웠다. 기차역은 걸어서 25분 거리에 있었다. 걸어갈까 하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라는 생각에 우버를 불렀다. 택시기사는 5분 만에 나를 기차역으로 데려다주었다. 라틴계 남자였는데, 과묵했지만 시끄러운 음악을 틀었던 기억이 난다.
출발하기 30분 전, 브라쇼브행 플랫폼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전광판도 없었고 기둥에 있는 플랫폼 번호도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알아보기 힘들었다.
선로 사이사이 좁은 공간에 그림자 같은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쓰레기가 이리저리 굴러다녔고 어딜 가도 담배 냄새가 났다. 어디선가 끼익 끼익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아주 어두웠다. 나는 복마전 같은 분위기에 압도당해 길을 잃고 서성거렸다.
그때, 형광 주황색 재킷을 입은 남자가 내 앞으로 지나갔다.
그의 재킷은 마치 모든 것이 무채색인 기차역 속 유일한 색처럼 보였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얼른 쫓아갔다.
“안녕하세요, 5번 플랫폼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저 뒤쪽으로 가야 돼요.”
그는 앞에 있던 쓰레기통을 하나 끌고 갔다. 동시에 나를 돌아보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검은 비니를 쓴 그 남자는 환경미화원으로 보였다. 나는 형광 주황색 재킷만 보며 그를 따라갔다. 마음이 놓이는 부분은 그의 재킷 밖에 없었다.
꽤 오래 걸었다. 나는 반대쪽에서 플랫폼을 찾고 있었다. 그는 10걸음에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나를 살폈다. 거리가 벌어지면 빨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그는 고맙다는 나의 인사를 무시하고 곧장 일을 하러 갔다. 차가운 친절. 딱 그를 두고 떠오른 말이다.
기차가 예정 시간보다 10분 늦게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버건디 색 기차가 선로 위를 아주 느리게 걷다 멈췄다. 이내 굉음이 들리고 푸시식 하며 자, 이제 타세요 라는 뜻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차는 굳이 표를 사지 않아도 담배 한 갑이나 감자 한 자루만 주면 태워줄 듯한 모습이었다. 뭐, 시간여행 하는 것 같고 좋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따라 기차에 올라탔다. 객실 안은 생각보다 깔끔하고 좋았다. 좌석도 널찍하니 마음에 들었고 눈이 부실정도로 밝은 조명이 의외의 안정감을 선사했다.
나는 75번 자리에 앉았다. 좌석은 6개씩 유리칸으로 나뉘어 있어 아늑했다. 창가 자리를 차지했다. 형광 주황 재킷을 입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사라진 뒤, 기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나는 일출과 함께 티미쇼아라를 떠났다.
잠시 자다 일어났다. 좌석이 너무 딱딱해서 몸이 쑤시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얼굴이 퉁퉁 부어서 눈꺼풀을 뜨는 것도 힘들었다. 두 눈을 꿈뻑이며 잠에서 헤어 나왔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밀밭과 듬성듬성 피어오른 구름, 손만 뻗으면 잡힐 만큼 가깝게 흔들리는 나무들이 뿌연 창 너머로 느리고 빠르게 지나갔다.
배가 고팠다. 나는 샌드위치와 민트향 아이스티를 꺼냈다.
랩에 싸인 빵을 벗겨 한입 맛보았다. 푸석한 빵, 옹졸하게 뿌린 마요네즈, 싸구려 향이 물씬 풍기는 살라미 조합. 오래된 토마토에서 나온 척척한 즙이 그들 틈에 스며들었다. 아, 이것이 2,500원의 맛인가. 왠지 소화가 되지 않을 것 같아 꼭꼭 씹어 넘겼다.
샌드위치를 다 먹어갈 때쯤, 갑자기 내 앞자리에 누군가가 와서 앉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앉은 게 아니라 가방을 베개 삼더니 좌석에 냅다 드러누웠다. 뭐지? 저 사람은? 나는 씹는 것도 잊은 채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빨간색으로 휘감고 있었다.
빨간색 운동화, 빨간색 스키니진, 빨간색 티, 빨간색 땡땡이 가디건… 심지어 바닥에 던져 놓은 비닐봉지도 빨간색이었다!(선거운동도우미도 이 정도로 색을 맞추진 않는다)
나는 너무도 강렬한 그녀의 등장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뚫어져라 보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라틴계 여자였다.
그녀가 왠지 돌발행동을 할 것 같아 동태를 살폈다. 그녀는 천장을 보며 가장 푹신한 부분을 찾을 때까지 머리를 비적거렸다. 두 개의 좌석 사이에 꽤나 큰 틈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 허리를 대고 팔걸이에 발을 올려두었다.
나는 왜 진작에 누울 생각을 못했지? 하며 슬금슬금 자리를 잡았다. 차창 너머로 들어온 햇빛이 빨간 그녀를 내리쬐었다. 이거 완전 태양초 아닌가. 입술을 악물고 웃음을 참았다.
나는 차마 태양초처럼 눕지 못했다. 나는 그녀처럼 좋아하는 색으로만 치장하거나 검표원이 지나다니는 복도 좌석에서 멋대로 누울 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내 배낭에 비스듬히 기댄 채로 자려했지만 허리가 아파서 뒤척였다.
나는 잡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편이다.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그 즉시 쏟아져 나오는 생각들로 늘 고통받는다. 특히 자기 직전에 그 증상이 심해진다. 그래서 유튜브를 켜 놓거나 라디오를 들으며 잠에 들곤 했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휴식할 수 있었다.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는 것을 포기하고 멍하니 차창 밖 풍경을 봤다. 루마니아 대륙의 80%가 밀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똑같은 풍경만 이어졌다. 기차는 느렸다. 역과 역 사이 간이역이 너무 많아 좀 달리나 싶다가도 속도를 늦추고 역에 들어설 채비를 했다.
기차 안에서는 데이터 신호도 미약해서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기차가 선로를 달릴 때 내는 규칙적인 소음에 집중하다 보니 잡생각이 고개를 내밀었다.
잠시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내 머리 뚜껑을 열어보겠다. 실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정확하진 않다만 대체로 이런 식이다.
쓰레기통에 바나나껍질을 저렇게 버리면 초파리 안 생기나? 유럽에는 초파리가 없나 당연히 있겠지? 빈대도 있는데. 인간의 유전자랑 가장 흡사한 생명체가 초파리라던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 조그마한 곤충이랑 인간은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데… 뭐 자기가 살기 위해 필요한 부분에 딱 붙어서 윙윙거리는 건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근데 그렇지 않은 인간도 있잖아 초파리도 성격 따라 그냥 지 갈길 가는 애들도 있을까? 혹시 몰라… 한강변 걸을 때 눈앞에 붙어서 쫓아다니는 애들 중에 초파리가 있을 수도 있지. 말도 안되는 소리! 아 나는 왜 이렇게 쓸데 없는 생각을 많이 할까? 다른 사람들도 멍 때리면서 기차에 앉아 있을 때 이런 생각을 할까?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물어볼 수 있을 텐데 좀 아쉽다 혼자 여행하면 자기 생각에 빠져있을 수밖에 없어 지금 내 옆에 다른 사람이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근데 불편한 점도 많겠지 혼자였으면 좋았을 텐데 싶은 순간들이 많잖아 나는 남의 기분을 지나치게 살피니까… 그런 버릇은 어떻게 고치는 걸까 아니 애초부터 그런 버릇이 왜 생긴 걸까? 이건 버릇이 아니라 특성인가
생각의 확장 또 확장.
태양초는 핸드폰 충전을 하기 위해 일어나 창가 쪽 좌석에 앉았고 나는 이제 그녀를 힐끔거리지 않는다.
내가 왜 이 기차를 타고 있지?
그래,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느냐는 말이야. 이래서 잡생각 꼬리 잡기는 무서워. 생각도 오래 하면 썩어. 처음엔 신선한 겉면을 핥을 수 있지만 그 속을 열어보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 들어있어.
도대체 몇 번째 간이역에 도착한 거지? 너무 많은 간이역을 지나치니까 생각이 얽혀.
나는 결국 이도 저도 아니야.
떠돌고 있지만 떠돌이가 될 수 없어.
끝없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지만 내가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어.
이제 뭐가 좋고 나쁜 건지 알 수 없어.
다시 돌아가서 처음부터 시작해 보자.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나는 그랬어야만 했다’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그 무렵 한국을 떠났어야만 했고, 이 여행을 했어야만 했고….
외로움과 맞서 싸우기 위해 외로움을 추격해야 했고, 약한 나를 감쌀 외피를 만들기 위해 유럽 재료가 필요했어. 나의 마음은 작은 자극에도 우그러질 만큼 민감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나를 내몰았어. 고립된 상황으로.
아니, 사실 ‘그랬어야만 하는 일’은 없어. 그저 내가 이 여정을 선택했을 뿐이야.
선택에 따라오는 무거운 짐이 두려워진 건 언제부터였나.
나이가 든다는 건 내 두려움의 무게가 늘어간다는 것일까.
속절없이 깊어지는 생각의 늪에서 허덕이던 그때, 갑자기 노랫소리가 들렸다.
내 앞에 앉아있던 태양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낡은 줄이어폰을 끼고 어딘가 처량한 노래를 불렀다. 어떻게 기차 안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지? 그런 어이없는 충격에 자칫 실소가 터질 뻔했다. 그녀가 나를 쳐다보며 노래를 불렀다. 나도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잠자코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녹슨 일렉트릭 기타 반주가 어울릴 듯한 탁한 음성. 베이스도 집어삼킬 만큼 불규칙한 엇박자.
그녀는 분명 원곡과 달리 제멋대로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낯선 언어가 내게는 이런 말로 들렸다. 다 무슨 소용인가. 그냥 지금 가는 길이 멀고 지루하니 노래나 한 곡 부르자.
인상 깊은 여행의 순간을 고른다면 아름다운 산 정상에 올랐을 때나 호수 위에서 나룻배를 탔던 오후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사실 가장 강렬히 남는 부분은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불렀던 노래 같은 것이다.
더 이상은 못 가. 당장 내려줘!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역 부근에 도착했다. 나는 도착 10분 전부터 출구 앞 통로에 서 있었다. 갈아 탈 기차가 40분 뒤라 역에서 먹을만한 것을 사서 포장한 뒤 기차에 타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런 상상은 루마니아를 만만하게 봤을 때나 할 수 있다. 이 나라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분명 제시간에 부쿠레슈티 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망할 놈의 고물 기차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기차가 오고 가는 탓에 코앞에서 줄을 섰다. 선로 수보다 기차가 더 많아서 일어난 불상사였다.
아무것도 못 하고 발만 동동 구르기를 30분. 이제는 죽도록 뛰어도 탈까 말까 한 지경이었다. 다른 승객들은 누구도 불만이 없었다. 그저 이런 연착은 일상이라는 태도로 멍하니 서있었다. 내가 하도 안절부절 못하자 누군가가 아마 탈 수 있을 거라며 무책임한 위로를 던졌다.
기차는 결국 목적지 앞에 멍청하게 서서 45분을 허비했다.
내리자마자 형광 주황 재킷 직원을 붙잡고 브라쇼브행 기차의 행방을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석한 기차는 늘 이럴 때만 연착 없이 제시간에 출발한다.
어쩌면 아직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역으로 들어갔다.
부쿠레슈티 역은 루마니아의 수도답게 규모가 컸다.
마음에 드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매대나 상점이 기차역 한복판 애매한 위치에 자리 잡아 사람들의 동선을 방해했다. 루마니아 사람들이 다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에 모여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부쿠레슈티 역을 떠올리면 머릿속에 사진 한 장이 보인다. 잿빛 필터를 씌워 찍은 사진. 나는 무채색 속 유일한 동양인이고 주변 사람들은 전부 잔상 뿐이다 .
안내소 앞에서 줄을 섰다. 또 기다려야 한다니. 짜증 났다.
한참 뒤에야 차가운 인상의 중년 여성과 마주했다. 창구 너머로 보이는 그 직원은 입 주변 근육이 하얘지도록 굳은 표정이었다. 검붉은 색으로 물들인 단발 곱슬머리를 아무렇게나 빗어 넘겼고 주름진 얼굴에 투명 뿔테 안경을 썼다. 마른 체형은 그녀의 예민함을 설명하는 듯했다. 푸른색 셔츠 위에 입은 남색 조끼에는 루마니아 국영 철도청의 약자 CFR과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세워 앉은 채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제 기차가 연착됐는….”
그녀는 내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 이서.. 히새.. 앤도 Cut. 어.. 레이트. Making the 리프트. Right. Making the 리프트. To Anyone.”
그녀는 오른쪽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나마 건진 단어 몇 개만 가지고 안내소를 떠났다. 아무튼 여기서는 티켓 변경이 안된다는 뜻이겠지.
문제는 이 기차역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다. 오른쪽 코너를 돌자 강남역 지하상가보다 넓고 긴 공간이 펼쳐졌다.
To Anyone이라는 말에 희망을 걸고 맥도날드 근처를 맴맴 돌았다. 그렇게 헤매다 또 다른 창구를 발견했다. 그러나 창구직원은 이곳이 아니라며 8번이나 9번 창구에 가보라고 했다.
내 눈에 보이는 창구라고는 로또번호를 걸어둔 구멍가게 밖에 없었다.
급기야 나는 제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목구멍에 뜨거운 게 올라올 정도로 답답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다시 안내소로 갔다. 이번에는 제발 자세히 길 설명을 해주길 바라며 다시 그 직원과 마주했다.
“저기요. 저기 리프트로 갔다 왔는데 이 티켓 보여주니까 8번이나 9번 창구에 가보라고 하는데요.”
“Anyone. Anyone. Making the 리프트. Anyone. Anyone.”
그녀는 Anyone이라는 단어만 반복해서 말했다. 작은 마이크를 타고 들려오는 그녀의 음성에는 짜증과 분노, 까칠함, 답답함, 성가심 등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가 담겨있었다.
“Anyone! Anyone!”
“아무나 뭐요?”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따져 물었다. 그녀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쪽문을 신경질적으로 열고 밖으로 나왔다.
“Anyone! Anyone! Anyone! Anyone!”
이제는 거진 호통치는 수준에 가까웠다. 그녀가 내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러더니 내가 메고 있던 가방을 휙 잡아채며 오른쪽 코너를 가리켰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은 이 상황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배낭을 멘 동양인을 붙잡고 소리를 꽥꽥 지르는 루마니아 국영 철도청 직원.
“Anyone! Anyone!”
그녀가 급기야 내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며 나를 오른쪽 코너로 밀었다. 그러더니 다시 부스로 들어갔다. 나는 욕을 했다. 씨발 뭐 어쩌라는 거야. 그녀는 못 알아들었다. 한국말로 했으니까.
나는 미친 듯이 화가 났다.
화가 나면 모든 생각의 시작은 ‘내’가 된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그저 길을 못 찾아서 물어봤을 뿐이잖아. 심지어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았어.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이유가 뭐야?
내가 물어보면 당연히 대답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저 사람은 그런 일을 하려고 저기에 있는 거잖아.
내가 동양인이라서 인종차별하는 거야?
얼굴이 달아오른 채로 뛰다시피 걸었다. 가는 중에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뭘. 내가 뭘. 그러다 보니 8번 창구 앞이었다. 아까는 죽어도 안 보이더니. 그곳에도 줄이 있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 쉬며 줄을 섰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뒤늦게 손에 쥔 브라쇼브행 티켓도 나를 달래긴 역부족이었다.
나는 그 뒤로 객관안을 잃었다.
내 눈에는 안 좋은 것만 보였다. 먹구름 낀 하늘, 오물 냄새,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담배꽁초, 먼지 쌓인 간판, 칠이 벗겨진 건물 외벽, 누더기로 온몸을 싸맨 집시족, 교회 앞에 진을 치고 앉아 있는 거지… 맥도날드 직원 유니폼에 튄 케첩 자국마저도 싫었다.
그중 가장 슬픈 건 루마니아 사람들이 전부 인종차별주의자로 보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내게 친절한 미소를 보냈던 때나 순수한 마음으로 나를 대했을 때마저도.
브라쇼브(Brasov) 센트룸 하우스 호스텔(Centrum House Hostel)에 도착했을 때, 오후 10시 30분이었다. 이날 장장 16시간 동안 이동했다.
삐걱대는 호스텔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다. 루마니아에 온 것은 최악의 실수였어.
브라쇼브(Brasov)는 루마니아 국가의 발상지다. 동서 간 무역로에 있는 상업 중심지라 도시의 규모도 꽤 크다. 솔직히 말하면 16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온 게 후회되지 않는 도시였다(고작 두 문장을 쓰는 사이에 의견을 바꿔서 미안하다).
브라쇼브 구시가지 광장에는 ‘The Black Church’라고 불리는 건축물이 있다. 이 교회는 유럽에서 가장 큰 독일 양식 교회다.
1689년 '대 터키 전쟁' 동안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가문) 군대 가 이 도시에 쳐들어왔을 때 교회에 불이 번져 연기로 새카맣게 그을렸다. 그 뒤로 ‘검은 교회’라 불리게 되었다. 실물로 봤을 때, 이름만 듣고 그렸던 상상도만큼 까맣지는 않다. 어두운 갈색에 더 가깝다.
오늘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카메라 조도를 조정하며 어떻게 하면 더 까맣게 찍을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다. 검은 교회 입장으로 보면 참 허탈할 것 같다. 불에 탄 흔적을 약 335년에 걸쳐 벗었는데, 까맣기를 바라고 찾아온다니.
이곳은 랜드마크인 검은 교회 말고도 볼거리가 많다.
구시가지 전체에 즐비한 옛 건물 들은 마치 인형의 집에 ‘거대거대 빔’을 쏴서 커다랗게 만든 것처럼 아기자기했다(거대거대 빔은 맞으면 커진다고 보면 된다 방금 만들어봤다). 발길이 닿는 곳 어디에나 파스텔톤 감성이 서려있다.
골목을 잘 살펴보다 보면 작은 소품가게나 크리스마스 마켓을 발견할 수 있다. 곳곳에 펼쳐진 야외 테이블엔 브라쇼브 사람들이 저마다 맥주나 위스키를 두고 여유로운 오후를 만끽했다.
다음날 나는 같은 방에 묵는 네덜란드 소녀의 추천으로 탐파산에 갔다. 그 산은 서울에 있는 아차산과 비슷하다. 도시와 가깝고 완만하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브라쇼브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말에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듣던 대로 짧은 코스였지만 전날 비가 내려 땅이 좋지 않았다. 철퍽이는 진흙을 밟으며 산을 올랐다. 산길엔 젖은 낙엽이 물고기 비늘처럼 다닥다닥 달라붙어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브라쇼브는 귤껍질 더미처럼 주황빛이었다. 동유럽 지붕은 늘 주황색이다. 지붕색에 대한 가설 중 가장 유력한 것은 동유럽 지역에는 붉은빛 토양이 흔해서 그렇다는 설과 잦은 전쟁 중 폭격을 막기 위해 민간인 지역이라는 뜻으로 지붕색을 통일했다는 설이 있다. 아마 둘 다 맞는 말이지 않을까.
브라쇼브를 발아래 두고 오랫동안 찬바람을 맞았다. 신선한 공기가 몸속 가득 들어올 때까지 전경을 눈에 담았다.
도시와 멀리 떨어져 보니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안 좋은 점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브라쇼브에서 지낸 3일 동안 회복에 집중했다. 낮동안 많이 걸었고 잘 먹으려 노력했다. 저녁에는 버번위스키 한잔으로 마음을 녹이고 침대에 딱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인 ‘시비우’로 가기 위해 또 기차를 탈 운명이었으므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덜어내야 했다. 의식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마지막 밤, 다시 움직일 의지가 생겼다.
브라쇼브를 떠나는 날, 체크아웃을 하고 기차를 탈 때까지 뜬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호스텔 로비로 갔다. 로비라고는 하나 그저 작은 공간에 커피포트, 전자레인지, 소파, 테이블과 리셉션 용 컴퓨터 한 대가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소박함이 주는 아늑함에 매료되어 지난 3일 동안 틈만 나면 로비 소파를 찾았다. 그때마다 그곳은 텅 비어있었다.
마지막 날이 돼서야 리셉션 가이를 만났다. 아마 오전 시간에만 로비를 지키다 틈만 나면 자리를 비우는 모양이다.
“어디로 가는 길이에요?”
리셉션 가이는 나를 보고 먼저 말을 걸었다. 그는 길거리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였다. 여러 번 빨아 색이 바랜 검은색 후드티와 통이 큰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짧게 밀었다.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특징이랄 게 없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2시간 뒤에 시비우로 가는 기차를 탈 거예요.”
“시비우! 좋네요. 작지만 참 예쁜 도시예요.”
“그래요? 브라쇼브만큼 예쁜가요?”
“아니요. 물론 브라쇼브가 최고죠.”
그가 수더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내가 만나본 루마니아인 중에 영어 실력이 가장 뛰어났다. 비록 발음에 루마니아어 억양이 묻어 있었지만 긴 문장을 구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다 그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루마니아에는 어쩌다 오신 건가요?”
“이전에 세르비아에 있었는데, 며칠 시간이 나서 왔어요.”
“아, 그렇군요. 여행은 어땠나요? 루마니아가 마음에 드셨나요?”
우려하던 질문이 왔다. 나는 대답하기 전 짧은 찰나에 그냥 좋았다고 말할지 솔직한 의견을 내비칠지 고민했다. 결정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그가 눈치를 채고 말을 덧붙였다.
“하하, 그다지 좋은 여행은 아니었나 보군요.”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실망감이 내비쳤다. 나는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그 사건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너무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며칠 전 티미쇼아라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에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부쿠레슈티 역에서 환승할 때, 기차를 놓쳐서 티켓 변경을 해야 했는데요, 안내소 직원이 저를 불친절하게 대했어요. 창구를 찾지 못하고 두 번째로 갔을 때는 부스에서 나와 제게 소리를 지르며 밀기까지 했어요. 그 기억 때문에 마냥 행복했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미안해요.”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나요? 미안하다니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아니에요. 이미 지나간 일인데요. 근데… 루마니아에서 인종차별이 흔한가요?”
그는 내 질문을 받고 입술을 옴짝거렸다. 할 말이 바로 떠올랐지만 어떤 단어로 전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복잡한 듯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 인종차별은 아니었을 거예요. CFR은 원래 불친절하고 괴팍하기로 유명해요. 당신이 동양인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모두에게 똑같이 막 대하는 거죠.”
“네? 왜 그런 거죠?”
“박봉이거든요. 말도 안 되는 월급을 주면서 무리한 일을 떠 맡겨요. 그러니 일을 할 때마다 화가 날 수밖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냥 그러려니 해요.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그의 말을 듣고 복합적인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게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모두에게 똑같이 무례하니까?
물론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찾아본 결과 2023년 기준 4년 전, 루마니아 CFR 철도 노동자 조합이 임금 인상 요구 목적으로 4주 동안 대규모 피켓 시위를 했다는 기사가 있다. 회사가 예비 부품에 대한 비용을 할당하지 않아 기관차에 결함이 있으면 중고 부품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열악했기에 기계공 파업도 있었다.
게다가 루마니아는 2월, 3월, 7월, 8월, 9월, 10월에 공휴일이 아예 없고 대체휴일제도 없다. 내가 갔던 때는 11월이니 4개월 동안 쌓인 피로가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가뜩이나 철도청에 불만이 가득한데,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생기는 현장민원을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운명이라면…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또 하나. 현지인과 내가 대우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 언어장벽이다.
하지만 나의 피해의식이라 치부하기엔 그 직원의 행동은 도가 지나쳤다. 내가 거구의 백인 남성이었어도 똑같이 했을까 싶은 것이다. 모두에게 평등한 불친절이니 인종차별이 아니라는 호스텔 가이의 말은 애국심에서 비롯된 안일한 변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프랑스 소매치기범은 전부 불법체류자라고 일반화하는 것과 같다(나쁜 예인가? 전부 불법체류자인가요?).
그러나 외국인을 상대하는 그의 직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나였어도 한국을 여행하는 루마니아인이 이런 일을 겪었다 말한다면 내 나라를 두둔하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을 것 같다.
가치 있는 문제는 절대 최초로 구상한 수준에서 해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조지 앤더슨의 말 때문이라도 나는 그날의 사건을 인종차별이라 단정 짓고 싶지 않다. 오랫동안 그 사건을 잘근잘근 씹어보며 결국 남는 게 뭔지 탐구해 볼 가치가 있다.
무거운 배낭과 무거운 마음으로 호스텔을 떠났다.
나는 그의 의견에 끝내 반론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몰랐네요라고 말한 뒤 대화 화제를 돌렸다. 내 선택은 옳았다. 그 뒤에 그와 즐거운 대화를 나눴고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브라쇼브 기차역으로 가는 길. 이곳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거란 생각으로 브라쇼브 거리를 눈에 담았다. 길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루마니아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한국과 전혀 다른 문화권에 사는 외국인 속은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재질과 성분, 색, 질감, 크기, 깊이,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얕은 지식과 일련의 사건만으로 이 나라를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한 내가 부끄러웠다. 일조량이 어떻고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어떻고는 이 나라를 살짝 맛보기 위한 일회용 스푼에 불과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루마니아에 온 이유는 순전히 욕심 때문이었다.
‘그’ 나라에 가고 싶은 것보다 내 배낭에 붙일 국기가 늘어나는 것, 기념품을 하나 더 사는 것, 여권에 도장이 더 찍히는 것, 다이어리에 붙일 티켓이 더 생기는 것, 내 발자취를 기록한 구글맵이 더 빼곡해지는 것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욕심이 발길 어디에나 치이는 여행길을 걷다 보면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여행이라 칭할 수 없게 된다. 천천히 그 나라의 문화에 섞여 들어가며 음미하는 시간보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어딘가 검색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은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여행이 아닌 방황을 하고 있었다.
세르비아에 도착했을 시점 나는 두 달 동안 이미 9개국을 여행했다. 아무리 나라 간 이동이 쉬운 동유럽 여행이라 해도 바삐 움직여 얻은 결과였다. 그럼에도 하나라도 더 많은 나라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이랬다. 나의 이 여행이 조금이라도 다채로워지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도대체 누구의 인정을 받고 싶었을까?
걷다 보니 기차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오후 2시 26분에 브라쇼브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다.
티켓에는 오후 6시 21분 시비우 역 도착이라 쓰여있다(과연 그럴까 싶지만). 고작 4시간 밖에 안가네 하고 생각했다. 고작이라니! 이제 이 정도 거리는 체감상 서울-경기 정도로 느껴졌다.
한 번 겪어봤다고 금방 플랫폼 번호를 찾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 기차를 탔다.
루마니아에서 타는 마지막 기차.
이번에 나를 데려다줄 기차는 티미쇼아라에서 탔던 기차보다 신식이다. 외관으로 봤을 때 독일에서 탔던 기차와 비슷했다. 내부도 쾌적했다.
그러나 루마니아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창문이 깨져있었다. 이건 야구공 같은 걸로 깨트린 게 아니라 오함마로 세게 쳤거나 총을 쏜 듯했다. 두꺼운 유리인 만큼 금이 굵게 나 있었는데, 그 부분을 하얀 본드로 붙여놨다.
깨진 유리를 보고 있자니 철도청 직원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장면이 연상됐다. 나에게 소리쳤던 직원이 이 망할 놈의 기차를 다 부숴버리겠다고 소리치며 망치를 들고 쫓아온다.
“To Anyone!”
쓰레기통에 불을 질러 플랫폼 기둥이 연기에 그을린다(애석하게도 이건 그저 기둥일 뿐이라 ‘검은 기둥’이라는 칭호를 얻지 못한다). 기차를 기다리던 승객들은 캐리어를 집어던지고 도망친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상상을 하며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수 십 개의 간이역을 거쳤다.
이제 달려가나 싶으면 간이역에 멈춰 서 사람들을 내리고 태웠다. 어떤 역에서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문을 열어놓고 바람이 통하게 두었다.
간이역에 도착하면 역장이 유니폼을 차려입고 깃발을 흔들며 기차에 신호를 보낸다. 늙은 역장은 하루에 몇 번 들어오는 기차를 맞이하기 위해 멋진 모자를 쓰고 하루종일 기다린다.
밀밭으로 둘러싸인 외딴 간이역에는 들개가 기차를 맞이한다. 승객들은 열린 문을 통해 챙겨 온 빵이나 소시지를 던져준다. 나도 뭔가 줄 게 없나 싶어 가방을 뒤져봤지만 짧은 여정이라 챙겨온 먹거리가 없었다. 들개는 보채지 않고 의젓하게 앉아 기차를 바라본다. 나는 그 개 너머로 지는 노을을 바라봤다. 그 노을은 다채로운 색을 품고 있었다. 하늘의 푸른색과 지는 태양이 남기고 간 주홍색, 그 사이 가장 옅은 부분엔 노란색, 가장 진한 부분엔 붉은색, 뒤섞인 구름은 분홍색. 간이역에 걸어둔 루마니아 국기가 펄럭였다. 이 노을의 색과 닮아있었다.
루마니아는 깨진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가을풍경 같은 나라다.
얕은 정보가 일회용 스푼이라면, 기차가 보여준 루마니아의 노을은 언제든 현상할 수 있는 필름이다. 흑백 필름인지 컬러 필름인지는 모르겠다. 왠지 지금 알고 싶지는 않다.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그 필름을 들고 현상소에 가고 싶다. 그때가 되면 내 방 벽지색이 그 사진과 어울리는 색이면 좋겠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사진을 붙여두고 잠이 안 오는 새벽에 보고 싶다.
기차는 4시간을 달려 마지막 간이역을 지났다. 나는 일몰의 열기와 함께 시비우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