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고 이른바 '잠수'를 탔다
자살 시도 실패 후,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물론 자의가 아닌 타의였다. 당시의 나는 '저 아파요' '힘들어요' 회사에 말할 용기도, 힘도 없었다.
3개월 동안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서울의 공기는 너무 갑갑하고 삭막하다. 모든 것이 숨 가쁘게 돌아간다. 그 속에서 나도 그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차도, 지하철도, 사람들도 너무 한 순간에 지나간다. 뒤 돌아볼 수 있는 여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친언니가 사는 영종도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무슨 일 있는 거냐는 지인들과 취재원의 연락조차도 받지 않았다.
내 상태를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싫었다. 나도 내가 너무 버거운데 어찌 이런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을까. 그저 매 순간 숨쉬는 것에 집중했다.
너무도 자유로웠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나도 누군가를 찾지 않는 삶이란 생소했지만 꽤나 즐거웠다.
영종도는 나름 한적한 곳이다. 사람도 비교적 적고 공기도 맑다. 그래서 그 곳에서의 아침 산책을 참 좋아했다. 산책하며 만나는 길고양이들이 유일한 내 친구였다.
은둔 생활 중 가장 많이 한 질문은 '왜?'였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왜 나는 죽고 싶은 걸까', '왜 이렇게 됐을까' 등...답이 없는 질문들이 머리에 자꾸 맴돌았다.
그러나 답이 없다고 해서 회피하진 않았다. 그 질문들에 대해 깊게 파고들며 지난 날을 회상하고 과거의 나를 스스로 위로했다.
그런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바뀌는 건 아니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모두 어떤 일이 벌어지면 '왜?'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가령 교통사고가 나면 '왜 내가 이런 사고를 당했지?'...대부분의 '왜'에는 답이 없다.
그저 답을 만들어 갈 뿐이다. 그래야만 살 수 있으니까, 버틸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