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으니까
"자신을 사랑하세요?"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얼렁뚱땅 넘어갈 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지에 대한 확신이 없을 테니까. 그러나 "스스로를 증오하세요?"라는 물음에는 대부분 "아니오"라는 답이 돌아올 것 같다. 자신을 사랑하진 못해도 깊게 미워하긴 힘드니까.
스프라바토 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내가 떠나면 슬퍼할 사람들을 위해. 비록 내 삶의 값은 하찮을 지라도 그들의 슬픔은 어떠한 것으로도 보상되지 않을 테니까.
총 4회를 결제했다. 금액은 360만원 정도. 주 2회 치료기에 이주일에 400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셈이다. 스프라비토는 1회 치료에 2개의 약물을 쓴다. 의사 감독 하에 환자 스스로가 약물을 코로 들이마시는 방식이다.
치료에 앞서 'Beck 우울 척도' 검사를 진행했다. 1~4까지 문항을 보고 해당되는 문항 숫자를 옆에 쓰면 된다. 예로 1)나는 슬프지 않다 2)나는 슬프다 3)나는 항상 슬프고 기운을 낼 수 없다 4)나는 너무나 슬프고 불행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 등이다.
그 중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증오한다' 망설임 없이 해당 숫자를 적었다. 늘 스스로를 탓했기에 가족들에게 걱정만 끼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는 나를 숨쉬듯이 증오했다. 다 내탓이야.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된 건 전부 다 내 탓이야 라며 자신에게 상처를 줬다.
검사를 마친 뒤 의사 선생님이 약물을 들고 치료실에 들어왔다. 약물을 코로 들이마시는 법을 상세히 설명해주셨다. 두 약물을 모두 사용하면 한 시간 정도 해리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환각과 환청을 볼 거라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무서워하지 말라고도 덧붙이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주사기처럼 생긴 약물을 건네 받은 후 양쪽 코로 번갈이 들이마셨다. 음...아직까진 별 느낌이 없었다. 5분 뒤, 두 번째 약물을 들이마시자 순식간에 시야가 몽롱해졌다. 수면마취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잠드는 게 아닌 어딘가로 이동하는 느낌. 동시에 현실 감각이 사라진다.
파도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죽으러 온 건가. 내가 꿈꾸는 죽음이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바다에 안기는 것. 벼랑 위에서 파아란 바다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그래...이게 끝이구나. 하는 순간 또 어딘가로 이동했다. 시야가 어두웠다. 방...? 어두운 방 안에 가둬진 상태였다.
"아무도 널 원하지 않았어"
방 안을 가득 메우는 목소리. 아무도 날 원하지 않았다고? 혼란스러웠다.
엄마가 보였다. "엄마! 엄마!!" 아무리 소리쳐도 엄마는 날 보지 않았다. 아...엄마조차 날 원하지 않았다는 거구나. 그럼 왜 낳았어? 왜 태어나게 해서 날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어? 원망스런 마음에 눈물이 미친 듯이 흘렀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아까 본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나 자신을 증오한다'
아...어쩌면 나는 일찌감치 알았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날 원하지 않았다는 걸. 그래서 그렇게 쉽게 스스로에게 상처주고 증오했던 거 아닐까. 결국 나 자신조차도 나를 원하지 않게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