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런 성격이라구요?
나는 사주를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인생이 불안하고 막막할 때 종종 찾아보고 의지한달까.(하지만 정확한 출생시간을 알고자 출생신고서까지 떼 본 것을 보면 솔직히 좋아하는 것도 맞다.) 이제는 사주집에 꼭 가지 않아도 사이트에 내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입력하면 성격과 대운과 인생의 큰 흐름에 대해 상세하게도 말해준다. 심지어는 우리의 든든한 친구 ChatGPT에게 내 사주를 입력하면 지피티 특유의 친절한 말투로 자세히도 알려준다!게다가 지피티는 어떤 사주라도 좋은 점을 찾아서 예쁘게 말해주는 녀석이기에 해석에 기분이 상할 일도 없다. 좋은 세상, 인터넷 만만세.
이렇게 인터넷 만세를 외침에도 어쩐지 일 년에 한 번은 자그마한 사주타로가게들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졸업한 무렵부터 사기업 취업준비의 암흑기를 거쳐 이제 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근래까지, 사회가 날 써주지 않을까, 시험에 붙을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며 흔들리던 청춘에게 사주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나한테 관이 세 개나 있다니! 공무원이 될 팔자인가 보다!
사실-사주가 일종의 바넘효과임을 부정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지금은 말단에서 조금씩 벌겠지만 40 이후론 크게 돈을 만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오오-나 나중엔 잘 번대! 라며 친구와 박수짝짝 기뻐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어느 조직에 있든 40이 넘어가면 슬슬 중간관리자 진급의 기회가 올 테니 아주 당연한 말이었다. 내가 30에 사업으로 대박내고 그걸 40에 말아먹지 않는 이상, 월급쟁이로 산다면 높은 확률로 그렇겠지요.
게다가 일간이 금이라서 남자 같은 성향에 자존심이 센 편일 수 있다고 했을 땐 옆에서 듣던 친구가 먼저 갸우뚱했다. 얘 천상 여자인데요...나도 같이 갸우뚱. 자존심 딱히 없는데...물론 나중에 복기하면서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 것 같기도'를 겪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가끔 대범한 것 같기도, 가끔 자존심 센 것 같기도... 하지만 인지부조화를 줄이는 이런 후보정 작업을 하지 않으면 사주에서 들은 몇몇 내용들은 지금도 갸우뚱스럽다. (사업을 해도 좋은 기질이라는데 나를 본 어떤 사람도 동의하기 힘든 말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숨겨진 적성이 있으려나?)
그래도 사주의 순기능도 있다. 물을 어릴 때부터 안 마시던 내가 사주에 물이 없다고 물마시란 말을 듣고 하마가 된 것이다. 물론 방광염에 잘 걸리는 탓에 예방차원도 있지만, (이 와중에 사주에 물이 없으면 방광도 약하다고 한다. 홀리몰리.) 아무튼 순기능이 아닐 수 없다. 물을 잘 마셔서 엄마는 좋아한다... 텀블러를 자주 쓰니 집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텀블러들도 같이 좋아할 수 있겠다.
사주가 얼마나 믿을만한지, 확률에 대한 학문이라면 그 신뢰도 및 타당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어쨌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이다. 올해 재물운이 있다 해도 이런저런 기회를 잘 잡아야 돈이 제대로 들어올 것이고, 건성으로 지내며 취준생으로 머문다면 재물운은 기껏해야 추석에 친척들이 쥐어주는 세뱃돈에 그치는 법이다. 이성운이 있다 해서 소개팅이 줄줄이 잡힌다 한들 관계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연애로 이어지지, 팔짱 낀 채 어디 더 구애를 해보거라-하는 고자세로 굴다가는 오던 이성도 밥맛이라며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니 사주를 보고 돌아서며 할 이상적인 생각은 내게 주어지는 운을 어떻게 잘 살릴까, 정도일 듯하다. 그래서 좋은 말을 들으면 소중히 잘 접어서 마음 한켠에 넣어두고 힘들 때마다 '이 운이 오도록 노력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조심하라는 것들은 두려워하기보단 소홀하지 말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려 한다.
최근에 본 사주에서는 작은 돈이 새는 것을 조심하라며 가계부를 작성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예쁜 가계부를 사려고 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사주 선생님의 조언을 잘 새겨들은 듯하다. 집 앞 다이소가 저 멀리로 확장이전이라도 해서 나를 더 이상 유혹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