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진_<뱁새>를 듣고

by 숭늉

최근 내가 가장 많이들은 곡 중 하나는 이무진의 <뱁새>가 아닐까 싶다. 따라 부르기도 쉽지 않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사와 고조되는 기타 반주, 특유의 청량하면서도 미성은 아닌 보컬이 참, 이무진다운 노래이다. 처음에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들었는데, 자주 듣다 보니 이제는 가사가 들리기 시작한다.


가사를 곱씹다 보니 시작과 끝을 수미상관처럼 아우르는 구절이 참 인상적이다.


끝까지 하면은 된다는 말이 때때론
끝까지 틀리는 때도 때때론


이 가사를 들을 때마다 '끝'이라는 시점의 모호함에 대해 생각해 본다. 끝까지 하면 된다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는 성공의 문턱을 넘을 때까지는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법이다. 열 번의 시도 끝에 울며 그 자리를 뜬 사람에게 왜 열한 번째 시도는 하지 않았는지 감히 다그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열한 번째가 마침내 그가 맺을 결실의 순간이었다면?... 그러한 가정법(假定法)만큼 잔인한 것도 없을 테니 넣어두자.


한편, '끝까지 하면 된다는 말이 끝까지 틀리는 때' 역시 이를 판단하는 시점은 달성, 혹은 포기의 순간이다. '될 때까지 한다'에서 될 때가 먼저 올지, 포기하고 뒤도는 순간이 먼저 올지는 누구도 모르며, 지쳐서 뒤돈 후에는 만약을 곱씹는 것도 이제는 무의미하다.


최근 읽은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에서도 이런 구절을 읽었다.

"어떠한 일의 비용은 짧든 길든 그 일과 맞바꾸는 인생이라고 불린 것만큼의 양이다."

인생의 매몰비용과 포기한 길에 대한 기회비용은 우리를 끊임없이 계산하게 하고, 겁먹게 한다.


자 이제 하나둘 곁을 떠나가는
한때는 같은 날을 꿈꿨던 사람을
거짓 없이 응원하고도
나 아무렇지 않도록
모든 걸 놓아보려 해


한편으론, 내가 단념하고 뒤돈 길에서 묵묵히 모험을 계속하는 이들이 떠오른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한때는 같은 날을 꿈꿨던 사람'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하나, 사실 하난 남겼어
놓지 못하겠어서
계속 쥐고 있던 건
아마 오늘 같았던 절경
두 걸음 남은 절벽
끝의 날 잡아줬던 너
그제서야 처음 어린아이처럼
네 품에 안긴 채 펑펑 울었던 기억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괜찮아'를 되뇌던 '내'가 무너지는 순간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야 하는 우리를 울게 하는 건 어쩌면 시련 그 자체보다 다독이는 손길 하나인 듯하다. 마치 힘든 하루의 끝에 들은 엄마의 목소리에 울먹임을 참지 못하듯, 애써 웃어 보이던 나날 중 누군가 알아봐 준 가면 뒤 울상에 그만 자리를 박차고 나가듯 말이다.





세상의 모든 외로운 뱁새들을 향해 말해주고 싶어서 가사 끝에 한 줄 덧붙여본다.

어쩌면 이 말조차 '모진 이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겠지만, 그래도, 약간의 희망을 (내가) 얻고 싶으니깐.


끝까지 하면은 된다는 말이 때때론
끝까지 틀리는 때도 때때론,
...그렇지만 끝끝내 맞는 때도 때때론-


뱁새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크는 게 좀 많이 느린 새끼황새였는지도 모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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