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안 괜찮을지도 몰라요
(사진 출처: unsplash)
매일 우리는 수많은 실수와 과오를 저지르고, 미안하다며 사과해야 할 상황에 놓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뿌리 깊은 자책과 함께 매번 비율은 다르지만 변명과 반성이 적절히 섞인 사과를 열심히 건넵니다.
또 동시에 저는 많은 사과를 받아봤습니다. 친구에게, 가족에게, 애인에게, 혹은 인생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에게도 사과를 받아봤습니다. 카카오 선물함과 같은 '인생의 사과함'이 있다면 주고받은 사과들로 사과 농장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크고 땡실한 사과, 빛깔만 번지르르하지 밍밍한 사과, 척 보기에도 빈약한데 맛도 없는 사과...아주 다양합니다.
이렇게 사과를 건네는 입장도, 받는 입장도 수없이 되어보자 '사과를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반응 패턴'에 대한 데이터가 어느 정도 쌓였답니다. 저는 반응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곤 합니다. ("뭘 잘못했는지 알긴 해?"는 뺐습니다. 그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낚아채서 저 멀리 던지는 셈이죠.)
1. 극구 부인형 반응
"에이, 그게 도대체 뭐가 미안할 일이야! 넌 너무 착해서 탈이야."
2. 쌍방 과실형 반응
"나도 전에 여러 번 그랬는걸, 미안해할 것 없어."
3. 그럴 수도 있지 반응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사과를 할 때는 그 행위에만 의의를 둘 것이 아니라, 상대의 반응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저도 이전에는 사과의 멘트에만 신경을 썼지만, 이제는 돌아오는 반응을 예의주시합니다.
우선 1번과 2번, 3번은 천지차이입니다. 전제사실 자체가 다르죠.
우선 1번은 잘못 자체를 부정합니다. 상대가 교토 사람이 아니라면, 이 경우엔 한 일에 비해 사과가 크고 땡실했던 모양입니다. 반대의 상황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2번은 속칭 '퉁', '쌤쌤이'입니다. 나도 그랬는데 뭘! 예전에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 준 상대가 고마워지는 말입니다.
3번은 좀,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괜찮다는 상대의 말을 너무 쉽게 믿고 싶어 하거든요.
괜찮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안도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배려심이 깊은 상대에게 배로 미안함을 느껴야 합니다.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한 게 아닐 수 있어요. 생각보다 가까운 사이에도 솔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과하는 상대에게 그를 탓하지 않고 나 대화법을 쓰며 "사실 어제 너의 행동 때문에 내 기분이 이러이러했어~"라고 나의 감정까지 깔끔히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기에, 괜찮다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서로를 아프게 찌르며 싸워 본 사이라면, 솔직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을 테지요.
음, 그렇지만 사실 괜찮다는 말을 듣고는 안도하는 사람은 많지는 않을 겁니다. 상대가 안 괜찮을 수도 있겠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해요. 그렇지만, 계속 신경 쓰기엔 매일이 너무 피곤합니다. 잠은 부족하고 할 일은 너무 많아요. 사과까지 했는데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싶은 마음도 들지요.
그럼에도 우리,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 것은 게을리하지 말도록 해요. 귀찮음이 이기게 두기엔 너무 중요한 사람이잖아요. 회사 사람에게 한 작은 실수로 하루 종일 마음 쓰여하면서 평생 볼 사람의 서운한 눈을 애써 외면한다면, 우선순위가 제대로 틀려먹은 셈입니다.
그러니 상대에게 최근 미안한 일이 있었다면, 내 사과를 받은 상대의 눈과 말을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내 행동이 어떻게 느껴졌을까 잠시 생각해 봅시다. 아주 흔하고 뻔한 '역지사지'라는 단어는 꽤나 마법 같은 힘을 갖고 있고, 생각보다 많이 어렵습니다. 나로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상대의 입장까지 상상할 힘은 없겠지만, 지금 잠깐이라도 생각해 보아요. 내가 그 사람이라면,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을 듣고 싶었을까. 답이 없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오늘 한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제 글을 100명이 읽는다면 그중 한두 명이라도 뭔가를 느끼고, 약간의 변화를 시도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쓰는 궁극적인 이유이기도 하지요.
물론 평생 무심했던 사람이 글 한 편 읽고는 아주 새 사람이 되어서 몰라보게 달라지는 일은 현실에서 없습니다.
다만, 사랑하는 이들이 마음으로 늘 밟히지만 당장 피곤해서, 지쳐서, 시간이 없어서 오늘의 다정함을 내일로 미루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글이 작은 울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딱히 최근에 잘못한 일이 없는 사람들도 지금 퇴근길이라면 가족이, 연인이 좋아하는 간식이라도 하나 사서 들어가 보세요. 혹은 고단함에 뭉친 그 어깨를 주물러주며 머쓱하게나마 고맙다고 말해봅시다.
사랑은 내 안에서 맴돌 땐 마냥 어렵지만, 꺼내는 순간 쉬운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