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 남편과 따로 사는 워킹맘

거리는 멀어도, 더 단단해진 마음

by 모모네

결혼 1주년을 보내고, 단 이틀 뒤 나는 엄마가 되었다.

생각보다 이른 임신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내게 임신과 출산은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큰 파도처럼 다가왔다.


임신 중 몸무게는 30kg이나 불었다. 뚱뚱해진 내 모습이 너무 싫었고, 출산 후엔 거울조차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었다.

회사 복직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내 변한 모습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걱정이 앞섰다. 기억력도 심하게 나빠져서, 하루는 현관문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간신히 집에 들어온 적도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물었다. ‘이렇게 망가진 내가 다시 사회에 나갈 수 있을까?’


모성애가 절로 생긴다는 말, 내겐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분명 사랑스러웠지만, 육아는 고되고, 변한 내 모습은 스스로를 더 깊은 우울로 끌고 갔다.


그러다 복직을 했다. 체중도 조금씩 감량되고, 업무에 몰두하며 서서히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아,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다시 느끼며, 마음도 점점 회복되었다. 운 좋게도 친정엄마가 육아를 도와주셨기에 나는 조금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복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큰 변화가 찾아왔다.

남편이 4년간 이집트로 해외 발령을 받은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따라가야지!”라고 말했지만, 내 마음은 복잡했다.

육아만 하며 다시 예전처럼 우울해질까 봐 두려웠다. 더 큰 걱정은 남편이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따라가면, 남편은 “가족이 있으니 버텨야만 한다”는 압박 속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회사에서 판촉, 마케팅, 기획, 지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중 실적 압박이 심한 판촉 업무가 가장 힘들었다.

이제 막 해외에서 실무를 맡게 된 남편이 그런 압박을 견딜 수 있을까? 내가 곁에 없어도 괜찮을까?

하지만 현실적인 고민도 컸다.

한국에서 집 한 채 보유하며 아이의 교육을 책임지기 위해선 경제적 안정이 중요했고, 맞벌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만약 남편이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그때 내가 경력 단절로 백수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평생 외벌이로 살아야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함께하는 삶이 아닌, 떨어져 지지하는 삶을 선택했다.

다행히 남편도 내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회사 특성상 휴가도 쉽지 않아, 우리는 1년에 단 두 번 만나는 것으로 약속했다.


물론, 혼자 육아하며 보내는 시간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이건 평생이 아니라 4년뿐이야. 지금의 이 구조가 우리 가족에게 가장 안정적이고 최선이야.”

나는 내 방식으로 가정을 지켜내고 있는 중이다.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