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일 사이, 나는 잠시 멈췄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향한 믿음으로 3년 반을 버텼다.
남편은 이집트로 떠났고,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인천 친정집으로 들어갔다.
회사는 서울에 있었고, 매일같이 2시간의 지하철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 전, 출퇴근이 힘들어 명품 가방을 할부로 샀던 기억이 난다.
할부를 갚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했으니까.
하지만 아이를 출산한 후, 내 삶에서 회사는 점처럼 사라졌다.
예전처럼 크고 무겁게 다가오지 않았고, 그저 흐릿한 배경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회사에 전혀 상관없는 유아교육 전공자가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른 분야로 넘어올 수 있었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단순히 말했다.
“그냥 입사지원서 써서 지원하면 돼요.”
그 단순한 말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았다.
내 삶에서도 그런 순간이 필요했다.
주어진 일을 그냥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에 집중했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고, 퇴근 후에는 아예 그 일을 잊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점차 그 습관이 몸에 배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긴 출퇴근 시간을 힘들어했지만
나는 그 시간이 오히려 소중했다.
누구의 엄마도, 아니도 아닌 내 생각과 감정, 숨결을 조용히 들여다봤다.
회사에서 내 자리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지만,
육아는 여전히 흔들리는 파도 같았다.
퇴근과 동시에 나는 다시 엄마가 되었고,
주말이면 친청엄마의 눈치를 보며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키즈카페, 문화센터 아무데나 좋았다.
엄마에게 잠시 쉴 시간을 주기 위해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육아를 도와주시던 친정엄마가 다리를 다쳐 수술을 받으셨다.
동네에서 제일 활발한 우리 아들은,
무릎에 핀도 빼지 못한 채 목발을 짚고 있는 친청엄마 앞에서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엄마는 목발을 짚고 뒤뚱뒤뚱, 아파트 단지를 홀로 돌며 결국 아이를 찾아냈다.
그 모습을 듣고, 상상하며 또 미안했다.
회복도 늦어져 핀을 제때 빼지 못한 엄마에게
나는 더 이상 육아를 부탁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결국 나는 휴직을 선택했다.
얼마 전 진급을 했고, 팀에서 맡은 역할도 많았다.
휴직이 누군가에게 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내 자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결정과 동시에 상사에게 먼저 이야기했다.
혹시 내가 돌아왔을 때 다른 부서로 가야 해도 괜찮다고,
그만큼 신중하게 결정한 일이라고.
하지만 상사는 말했다.
”잘 다녀와요. 기다릴게요. “
그 말에 나는 울컥했다.
일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
그리고 그것을 행동과 말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망설임 앞에서
그렇게 말해주는 슬기로운 어른이 되겠다고.
그리고 지난주,
나는 아이와 함께 이집트로 왔다.
아들이 돌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떨어져야 했던 우리 가족.
이제는 진짜로 함께하며, 그 짧은 6개월 동안만큼은
소소한 행복을 제대로 누려보려 한다.
너무 소중해서, 잊고 싶지 않아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시간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 될지도 모를 이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