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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Jul 04. 2022

헤어질 결심

; 결심은 스스로 깊은 곳으로 잠식하는 수밖에

박찬욱은 박찬욱이다 뻔한 영화를 뻔하지 않게 만드는 매력을 가졌으니까 그동안 그가 만들어온 영화들은 배우들의 연기력도 좋았지만 미술 음악 연출의 기가 막힌 조합으로 독보적인 영화들이 많았다 그랬기에 기대했던 사람들 중에는 실망한 사람도 있었겠지


어떤 영화는 초기작에서 보이던 싹이 차기작들에서 디벨롭되어 보이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최신작에 그동안 감독이 쌓아온 감각이 녹아 나오기도 하는데 이번 영화는 후자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초기작 같은 미니멀한 느낌이다 지루하다는 평들이 있었는데 초반에 늘어지는 컷들이 몇 장면 있었고 그 외에는 지루보다 과도한 미장센과 메타포로 개연성이 살짝 떨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박찬욱의 영화에서 가장 큰 특징은 연극적인 톤을 가진 것인데 이번 영화 역시 대사나 공간에서 연극적인 톤이 묻어난다 단순히 살인사건이나 심리스릴러 혹은 멜로에 치중하지 않고 그가 만든 무대에서 캐릭터들이 움직인다 생각한다 사라진다 장르가 모호한 것도 모호 필름의 장점일 수 있겠다 이곳에서는 영화를 만들 뿐이지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다 공식이 없다 그래서 뻔한 신파도 뻔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다소 아쉬운 지점들이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이 영화는 그가 만든 영화 중 가장 현실적인 세계이자 캐릭터일 것이다 올드보이에서의 부녀나 박쥐에서의 신부님과 유부녀, 아가씨의 그녀들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들이 이곳에도 있다. 피의자와 경찰이라는 부도덕에 불륜이라는 부도덕을 더해 극적이게 한다 형사는 아름다운 피의자를 의심하면서도 그 의심이 거짓이길 바라고 또 그것이 무너지면서 다시 쌓이길 바라는 치정이 미장센에 묻어난다 가장 박찬욱스러운 방식으로


이제부터는 스포일러;


해준(박해일)은 애초에 아름다운 미망인 서래(탕웨이)를 신문하면서 자신처럼 결벽증이 있는 그녀에게 자신을 투영시킨다 의심이 관심으로 관심이 사랑으로 확장된다 해준이 잠복수사를 핑계로 그녀를 지켜보게 되며 호감이 사랑으로 번지는 과정을 매력있게 연출한다


아내와 섹스 도중에 티브이 속 여주에게 집중할 정도로 둘의 섹스는 의무적이고 결혼생활 역시도 루틴일 뿐이다 자신의 불면증이 아닌 정력을 걱정하는 아내와의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틈에 피해자일지도 모르는 피의자를 알게 되면서 자신과 비슷한(결벽증)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그녀를 구원해주고 싶어 한다 그녀에게 비싼 초밥까지 대접하며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녀가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가 되어야 자신의 사랑이 적어도 불륜에 그치니까


혐의를 벗은 그녀와 아내 몰래 데이트를 즐기면서 해준은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몸소 보여준다 자신이 그녀를 감시하면서 녹음해둔 보고서이자 마음을 중국어 공부까지 하던 그 마음을 그녀 또한 그의 서울 집에 붙여놓은 사건 사진을 불태우며 이런 걸 들여다보니 잠을 못 자는 거라면서 그를 재워준다 그녀에게 핸드크림을 발라주고 서래는 그에게 자신이 바른 립밤을 그에게 발라준다던지 은근히 마음을 전하는 스킨십들은 단순히 에로스적인 불륜관계가 아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랑임을 보여준다 담배를 태우면 죽일 듯이 대하던 아내와 달리 요리하면서도 담배를 피우는 그녀에게 재떨이를 대주는 해준의 모습은 마치 홍콩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는데 그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해준의 마음으로 보이기도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불륜 소재는 살인보다 불쾌하다


우연히 그녀가 피의자라는 증거와 마주했을 때 그가 느끼는 배신감은 세상이 붕괴 아니 자신이 붕괴된 것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더는 의심이 아닌 불신이 돼버린 사랑 그렇지만 그녀가 자신을 사랑했던 순간을 자신이 그녀를 사랑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있을까


원전(언제든 금이 가고 붕괴되면 모든 것들이 위험이 있는) 직원인 아내가 있던 이포로 내려가 형사일을 계속하는 동안 해준은 피골이 상접해간다 한편 서래는 남편의 돈문제로 여전히 남자에게 얻어맞고 있다 언제든 칼 맞을지 모르는 남편과 이사를 한 곳은 해준이 있을법한 이포다 우연인 듯 마주친 네 사람(이 영화에서 가장 어색하고 재미없는 씬이다 특히 항문 애널 드립은 쩝; ) 해준의 아내에게 그녀가 다시 해준을 만나러 이포에 온 건 안개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그 안개는 해준이겠지


두 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해준은 또 그녀가 범인일 거라며 서래에게 집착하지만 자신이 없으면 죽어가는 그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일어날만한 사건을 일으키게 하는 것뿐_남성들에게 늘 맞고 사는 약자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는 강한_서래의 남편이 해준의 아내에게 죽기 전 전화한 일로 서래와 해준의 사이를 의심하며 다른 남자로 갈아타는데 사실 가장 개연성이 떨어진 지점이었지만 생각해보니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늘 전화로 부부관계 수다 떨던 사람이 남자고 아내는 이미 그와 불륜이고


그녀를 여전히 의심하면서도 서래와 함께 산에 다시 올라 해준에게 유골을 뿌려달라고 한다 절벽에서 자신에게 등을 진채 유골을 뿌리는 해준을 밀치기 않고 끌어안고 입 맞춘다 해준 역시도 그럴 수도 있다는 의심을 했겠지만 그녀를 믿고만 싶고 서래는 당신 말대로 깊은 곳으로 던져버리겠다고 그것이 서래 자신이 되겠다는 뜻인지는 해준은 몰랐겠지


영화의 끝에 서래는 죽기 전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나의 사랑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해준은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냐고 되묻고

전 남자 친구가 떠올랐다 내게 사랑을 주고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말한 적 있느냐던, 해준에게 호감은 있었지만 누구든 믿을 수 없던 그녀가 자신을 위해 죄를 덮어주고 증거인멸을 하라는 붕괴된 해준의 마음을 보고 그제야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당신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나 때문에 잠 못 들길 바란다고 그러려면 미결 사건이 되어야 한다고 그녀는 미결이 되기 위해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깊은 바다 모래 속으로 사장된다


서래의 집 벽지는 아시안 스타일의 파도 문양인데 산인지 파도인지 모호하기도 하고 그림체는 문득 <가스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가 떠올랐다 그 화가가 했던 있는 곳에 물들지 말라는 말도 이 영화에 의미가 있을까 엔딩에서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가 쓸려오는 파도가 모래산을 부수며 그녀를 잠기게 하는 미장센의 복선일까


모르겠다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를 사랑하니까 어떻게든 그의 곁에 남는 것이 아닌 그를 위해 사라지는 것이 사랑이 될 수도 있다고 결말이 없는 영화가 더 여운이 남듯이 그녀는 그렇게 해준의 사건에 미해결이 해준의 사랑에 미해결이 되고




+ 까메오였던 박정민과 이학주 연기 빛나더라

+ 탕웨이의 극중 이름이 서래인 이유는 박찬욱 감독이 서래마을 살아서 그런 건가 싶고

+ 인공눈물이 눈의 건조인가 마음의 건조인가 메타포인가

+ 번역기 성별이 남자에서 여자로 달라진점이나

+ 이주임이 남자였구나하는 지점

+ 138층 높이에서 사람을 죽였던 그녀가 스스로 자살 하고 나면 138분짜리 영화가 끝난다던지 하는


- 아쉬운 부분 1

탕웨이가 한국어로 뭐라고 말하는지 정확히 들리지 않았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오티티에 나오면 이어폰으로 들으니 문제없겠지만


- 아쉬운 부분2

김신영은 연기 잘했지만 캐스팅은 미스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극의 흐름을 깨버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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