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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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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Mar 28. 2021

세상이 다 망해있었다

20210202

1
끊어진 다리 위에서 우리는 아래의 도로를 내려다봤다 오 미터는 되어 보이는데 사람들은 하나둘씩 그곳으로 뛰어내렸다 이건 분명 꿈일 거야 다리 아래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허공만 느껴질 뿐이었다 차마 뛰어내리지도 못해 유리화분을 던졌다 유리는 도로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들이 우리를 올려다보며 욕을 했다 피할 곳이 필요했다

2
스케이드 보드를 타고 허공을 날았다 내려다보이는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약탈하는 지옥일 뿐이었다 
해변 위의 바위섬이 보였다 저기는 이미 그들이 점령한 곳이라고 말했다 오십 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벙커를 찾아봐 나는 같이 타고 있던 그에게 말했다 그는 구글맵을 뒤지고 있었고 우리는 아까보다 더 휘청거렸다

마을로 내려왔다 그곳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내가 타고 있던 버스로 다시 돌아가 짐을 챙겼다 그곳에 숨어있던 지인은 애인과 마주 본 채 이별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반역죄로 자진 출두해야 했고 그녀에게 내려진 벌은 삭발을 포함한 노역이었다 눈물이 났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그와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들을 보며 다짐했다 잡히면 안 된다 절대


3
밤이었다 낯선 건물 앞에 있었다 경찰에게 00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냐고 물었지만 몰라하는 눈치였다 건물로 들어가 인포메이션을 찾았다 지도를 주실 수 있나요 그들은 내게 어디를 찾냐고 물었다 나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대학인지 시청인지 모를 건물을 찾는다고 했다 그들은 이 건물 뒤에 있는 역을 말하는 것 같다며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렸다 그제야 내가 있는 곳이 전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이곳에 혼자 오게 됐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4
꿈의 순서는 선명할수록 맨 끝장이더라

5
일하던 의상실 문 앞에 비닐들과 함께 버려진 가방이 보였다 이거 가져도 되나요 그들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그러라고 했다 파란 가방을 가지고 그곳에서 나와 어느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커피나 차를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어느새 나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에이프런까지 두르며 그곳에서 일을 했다 해가 막 질 무렵인데 의상실 디자이너들이 그곳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나를 벌레 보듯 쳐다보며 자리로 안내받았다

6
레스토랑은 전망 좋은 이층 건물이었다 외부 돌계단을 내려오면 도로 가는 운치 있는 골목으로 바뀌었다 해가 지고 어두운 골목 벤치에 앉아 내일을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길고 지루한 일을 이어나가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다가와 물었다

맞죠 아까, 

그가 나를 알아본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마터면 내가 보이냐고 물을 뻔했다 처음으로 내일이 기대되었다
더 이상 유령처럼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7
세상이 망하기 전의 꿈이 먼저였는지 망하고 난 뒤의 꿈이 먼저였는지 순서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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