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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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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Mar 28. 2021

연못 귀신

20210211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달이 밝은 밤이었다 잔디 위에 스프링클러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그곳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고 연못에는 파리한 얼굴을 한 여자가 아이를 안고 불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갈 곳이 없는데

그녀는 자신의 딸과 함께 연못에 있고 싶다고 했다 춥다고 했다 물을 좀 따뜻하게 해 드릴 테니 제발 스프링클러부터 잠가주세요 그들은 물을 멈추게 했고 나는 약속대로 연못에 온수를 틀어 주었다 연못에 김이 오르고 있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사방은 환했다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봄이었다 분명 겨울이었는데 무려 4개월이나 지나가 있었다 다시 돌아가야 했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내 얘길 듣더니 연못 귀신을 만난 것 같다며 어느 식당으로 찾아가 그 집 아들을 만나보라고 했다 찾아간 식당은 허름한 백반집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모르는 일이라며 회피했지만 때마침 택배 박스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아들과 마주쳤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무슨 연유 때문인지 묻지도 않고 위층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그는 연못 귀신에 대해 설명했다 무환자나무 가지를 꺾어 모아 두툼하게 만든 다음에 연못으로 가면 푸른빛이 돌면서 귀신을 쫓는다고 말했다 많을수록 좋으니 한 사람당 두 개씩 들고 가라고 했다 나는 무환자나무 가지를 들고 잠에서 깨어났다

연못에 있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말 연못 귀신이었을까 어쩐지 슬퍼 보이던 그녀의 표정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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