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ranaim Lee Sep 29. 2022

유독

1

사람들은 내가 겪은 일들을 늘어놓으면 왜 유독 너에게만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며 유별나게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심지어 엄마도 그렇게 말했다


2

너는 왜 그렇게 사사건건 얽히지 않은 곳이 없니


3

삼각관계 사각관계 중고등부 청년부 팀 프로젝트 밴드 어딜 가도 나는 튀는 존재였다 하긴 어릴 때 별명은 튀기였지 아이노코 혼혈아 같다는 말들 싫지 않았다 피가 섞인다는 것은 보라색이 되는 것처럼 신비로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믿었다 나는 하프일지도 쿼터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었는데_중학교 때는 지나가던 남학생들이 너 같은 계집을 어제 본 AV에서 봤다고도 말했다


4

주님 저는 과연 착한 인간이었을까요

지독하게 참는 법만 배우는 중인데


5

언니를 언니를 보면서 나도 꿈을 키웠어 그래서 존경하지만 그 애가 언니를 좋아하는 게 싫어, 누나 똑똑한 거 알아요 근데 꼭 그렇게 팩트로 분위기를 망쳐야겠어요 감성적이고 감상적이고 넌 위험한 애구나 넌 패륜아구나 넌 사탄이구나 넌 정말 매력적이구나 네 입술을 보면 죄를 짓고 싶어지는구나 왜 나는 좋아해 주지 않는 거니 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거니 보기에 도도하고 차가워 보여 다가가기 힘들 줄 알았어요 반전이에요 이런 나도 받아줄 수 있나요 왜 연락 안 받아요 문 열어줘요 조금만 있다가 가요 여기 앉아봐요 누워봐요 벗어봐요 닥쳐봐요 내 말 한마디면 너는 스타가 되고 창녀가 되리니


6

사람들의 혀를 끊어다 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길고 긴 끈을 엮고 싶구나


7

누군가는 팔자가 사나워서 그러는 거라고도 수군거렸고 누군가는 초년운이 좋지 못해 그러는 거라고도 했다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에 관대하지 못하니까 이유를 붙이고 과정을 들쑤시며 추론하기 좋아한다


8

아뇨 나에게만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세계 곳곳에 밑바닥부터 깨나 능력 있는 여성들에게 벌어지는 일일 거예요


9

나보다 한 살이라도 늙은 남자는 남자로도 안 보고 어르신으로 섬긴다 물론 보기에 젊어 보인다면 친한 선배 정도로는 곁에 둘 수 있다 거기에 매력까지 있다면 호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지극히 드물 것이다_본인이 조진웅 이병헌 이정재 정우성 류승룡 적어도 최진호 정도가 아니라면 늙고 못생기고 배 나온 할 저 씨일 뿐이다 혐오하지 않는 것 만으로 섬기는 거다


10

감독님은 글을 잘 쓰시니까 탐난다 솔직히 내 시나리오 같이 썼으면 좋겠다 연출은 못 맡긴다 그렇지만 시나리오는 정말 잘 쓰시니까 내 곁에 앉혀놓고 같이 작업하고 싶다 연출한 거 봤는데 솔직히 대충 했다는 거 치고는 잘하더라 그럼 이제 도약을 하셔야 하는데 그런 이상한 사람들 말고 나처럼 영화를 하는 급과 일을 해야 한다 감독님 내가 밀어줄까요 그래야겠다 내가 그렇게 해줄게요 그러고 싶어요


11

수많은 남자들이 어른들이 아재들이 갑들이 나에게 했던 말들, 내가 도와줄까 내가 도와줄게 그러니 내 애인이 되어달라는 말들 함부로 내게 자고 싶다고 떠드는 입술들


12

나는 남성과도 아재와 할아버지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순수한 여성이다 내 사상을 더럽히지 마세요


13

그런 분 아니시잖아요 저한테

함부로 대하시는 분 

그렇죠 저는 그런 놈들이 아니죠

우리 집까지 쫓아오면서


14

죽고 싶은 나날들이 늘어간다

종말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