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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Oct 22. 2021

수선화가 피어있던 자리에

나르시시스트를 만났던 기억

산책을 하다가 도로에 떨어진 박스를 보았다 저거 치워야하는데 그래야 사고나지 않는데 치우다 내가 사고 나지 않을까싶어 나는 걸음을 재촉한다 그거 치웠어야 했는데 종일 도로 위의 박스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착해서 그래 착해서, 아니야 나 안 착해 나도 나쁜 생각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진짜 돌면 나도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니까 


선함이 약점이 된 적이 있다. 누군가 내게 착하다는 말을 건네면 소름부터 끼친다. 내가 만났던 악마의 목소리가 어제 일처럼 들린다 언니는 왜 이렇게 나에게 잘해줘요 언니는 너무 착해서 문제야 호구같아 착한 척 그만해 가식 좀 그만 떨어 재수없으니까 착하게 사는 나를 늘 놀려 먹었잖아 내 이름을 팔고 다니고 내 이름 앞세워서 니 사업을 시작했잖아 우리 집으로 출근하듯 와서는 사업 계획서고 서류고 나는 네 사업에 필요한 노예가 되어 주었잖아 너는 언제나 하나님 이름 팔았지 언니 기도해야 돼 찬송해야 돼 예배 가야돼 선교해야 돼 언니 타로 보지마 사주 보지마 주님만 섬기면 돼 나처럼, 우리 회사는 예배도 드리고 직원들의 심리도 케어할거야 너는 선한 일들만 나열했는데 정작 회의 때마다 우리에게 술을 권했고 심리테스트까지 해댔지 우리의 약점을 잡기 위해


"언니 나는 선교마을을 만들거야 그곳에 약자들과 성도들이 모여 살 수 있도록 만들거야 학교도 어린이집도 다 내가 만들거야."


그런 거 잘못 만들면 폐쇄적인 신앙터가 될 뿐인데


"언니 그러니까 도와줘 이것도 모르겠어 봐주라 저것도 모르겠네 도와줘 역시 언니 덕분이야 고마워."


사업은 더뎌지고 너의 거짓말은 늘어가고 내가 다른 사람과 만나지 못하게 막고 내 동생과 나를 멀어지게 만들고 빚을 지게 만들어놓고 페이백 해줘가며 도와줬던 우리가 월급받지 못하도록 너는 사업지원금 나오기 일주일 전에 잘라버렸지 사악하게 사악하게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지않은 말들을 늘어놓으며 피해자인 우리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며 배신자라고 박해하고 하지도 않은 말들을 사람들에게 옮기고 다녔지 

그 무렵 사람들이 내게 욕을 해왔습니다 


너의 본색은 짙은 붉음이어서 나는 

피칠갑을 하고 너를 저주했다 단 한번도 너를 

의심하고 미워한 적 없었는데 기억하지 널 만날 때마다 꽈악 안아주었던 나였잖아

널 만날 때마다 너는 나의 연민과 사랑을 먹고 송곳니를 키워왔구나 

처음 네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너는 한마리의 어린양일 뿐이었는데


"언니 나 성폭행 당했어 가스라이팅 당했어 그동안 힘들었어 나는 약자야 나는 우울증과 트라우마를 겪고있어." 


초대받지 않는 네가 기어코 생일에 왔던 그날이 바로 지옥의 문이 열린 순간이었다


"그 남자, 다른 애한테도 집적대면서도 나한테 계속 잠자리를 요구했어 그남자를 캐릭터로 영화를 만들거야 나한테 한 짓 다 까발릴거야 영화관계자도 만나봤어 남자캐릭터는 조진웅으로 할거야 매력있고 멋있어야하니까 그 남자는."


너를 사랑해주지 않은 그 남자에게 복수하려고 지어낸 허언증이구나 

너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교묘하게 뒤섞으며 기만하던 시간들 

그녀의 sns에 그녀는 피해자 나는 가해자가 되어있었다 

자신이 베푼 호의에 배신을 한 개쌍년이 된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있다


시간이나 돈을 잃은 것보다 너를 잃은 것이 슬펐지만 

너라는 인간이 악마였다는 진실을 받아들여야하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고통이었어


너의 애인, 너의 동생 너의 거짓말에 휘둘리는 존재들

내 친구와 나를 이간질하느라 힘들었겠지만 우리는 굳건하다 


너는 내 친구와 내 동생에게 일은 시켜놓고 페이도 주지 않았지 심지어 내 친구가 나와 멀어졌다고 생각했는지 페이를 줬다고 거짓으로 세금 신고를 했다더구나 양심이 없는건 알았지만 멍청하기 까지 하다니 조정하던 날 내 친구에게 사과가 아닌 "오빠 보고 싶었어요 아직도 그렇게 딱딱하게 굴어요?" 라고 개소리했다고 들었어 잘못을 하면 사과를 하는게 인간인데 너는 역시 악마라는 생각이 들어 넌 그 순간에도 내 이름을 반말로 부르며 까불어서 혼났다며 너보다 열살이상 많은 사람에게 존대를 하는 게 예의라는 것이야 못배운 것아 필요할 때만 언니언니 부르짖는 건 뱀새끼고 사탄,  그래 넌 악마였지 잊을 뻔했구나 지금도 그애가 불쌍해 미우면서도 안쓰러워 그 애를 위해 울어왔으니까 죽이고 싶을만큼 증오해도 여전히 연민해 


나르시시스트

자기애성인격장애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테스트 점수가 높았다고 

약을 자꾸만 빼먹는다고 걱정하던

너를 걱정했었지


사탄아 그 애의 몸속에서 썩 꺼져라 


고칠 수 없는 병이란 것을 알게 된 뒤에도 나는

너를 용서하려고 몇번이나 나를 죽였습니다


내가 노래할 때 넌 내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내가 부르는 곡들마다 빼앗아 부르며 

언니같은 인재가 우리 회사에 있어줘서 다행이라며 한마리의 작은 양처럼 내게 파고들던 네가 

정신이 아픈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긍정적으로 말해줘도 어떻게든 부정적으로 따지고 들 때마다 

골이 지진 난 것 같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의 절반은 너의 몫이야 덕분에 나는 악마의 냄새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


"언니 내가 대표야, 언니는 내가 세운 팀장이고 그러니까 위계가 있어야지 질서를 잡아야지."


수직관계는 싫다더니 수평적인 관계로 이끌고 싶다더니 너는 본색을 드러낸 후 

어떻게든 내 머리채를 쥐고 흔들었지


"걔, 이번에만 쓰고 버릴거야. 이용가치없음 짤없어."


소름끼치는 순간들로 점철되는 작년 가을이었다


사람들이 악마는 피하는 게 상책이래 


그동안 나를 짓밟아온 많은 사람들을 용서해왔는데 너 또한 지독하게 용서를 해야하는구나 

이렇게 문득 문득 네가 떠오르는 날이면 나는 내 안에 선과 악이 요동쳐 폭풍처럼 

세상에는 너처럼 칼없이도 총없이도 사람을 고문하고 살인하는 악마들이 

용서와 화해가 되지않는 종족들이 천사의 표정을 지으며 살아 숨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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