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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Oct 26. 2021

시차

한국에서 뉴욕으로 보내는 편지

편지를 쓰는 게 오랜만이야

요즘은 그리움이 없는 시대를 사니까

우리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으니까 이십 년 넘게 친구로 지냈구나 이십 년을 알아도 사실 난 아직도 네가 궁금해 우리의 거리가 늘 멀었던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딜 가든 편지지나 엽서를 보면 네 생각을 해 그때의 우리가 수업시간 책 밑에 끼워두고 필기처럼 적어 내려가던 비밀들 매일 주고받던 밀서들 말이야 그때처럼 너에게 쓰겠다며 수집하듯 사 모으는데 정작 쓰질 못하고 있어 언제든 너와 대화할 수 있다는 안일함에


너의 오후와 나의 새벽이 만나는 시간 너와 메신저로 대화하다가 쓰지 못한 편지지만 늘어가고 있다는 나의 변명에 너는 빨리 써달라고 재촉했지  괜스레 웃음이 났어 너도 기다리고 있었구나 나의 비밀들을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들을


글씨체가 잘 바뀌지가 않네 습관처럼  써오던 방식대로 쓰게 되니까 좋은 필체를 갖기가 어렵다 말은 더 그렇겠지 툭툭 뱉다 보면 수박씨처럼 쏟아지는 검정들이 내 모든 곳에 점처럼 오점이 되어가


욕을 줄이자고 해가 바뀔 때마다 다짐해보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 해가 곧 바뀌겠지 쿼터로 담기는 계절을 푹푹 떠먹다 보면 어느새 바닥이 드러나잖아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끝을 떠올리고 내일이 없을 것처럼 취하게 되는 것처럼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계절감을 느껴

마음처럼 통보하지 않은 채 온도가 낮아지니까 나는

아직도 사랑을 모르고 사람을 몰라서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는데 나조차도


확신되지 않는 것들이 늘어가 불안에 잠식당할까 두려워서 나는 나보다 신을 더 찾나 봐 인간보다는 믿을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타인에게 귀감이 되거나 위로가 되거나 본이 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자기 절제가 중요할텐데나는 저녁 한 끼도 술 한잔의 유혹도 뿌리치기가 어려워하는 삶을 살고 있사람들은 자신을 배신하기 위해 사는 것 같아


언제쯤 믿음에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언제쯤 나라는 존재를 확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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