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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Oct 25. 2021

건강에도 세금이 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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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에 진심이었다 삼 개월 동안 한 끼 샐러드를 주문했고 가진 돈의 사분의 일을 샐러드에 쏟아부었다 덕분에 질 좋고 맛 좋은 샐러드를 요리처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매일 한 끼씩 먹을 수 없다 그럴 능력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채소를 구입하자니 유통기한이 짧고 값이 비싸서 매끼 먹지 못하면 일주일 만에도 무르고 썩어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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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나 다이어트 어쨌든 비슷한 단어지만 저 둘을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유기농, 무항생제, 1등급, 비건, 방목까지 가뜩이나 비싼 재료들에 수식어가 덕지덕지 붙으며 값은 치솟는다 마치 모두가 건강하지 못한 것들만 구입할 수 있고 건강한 것을 먹으려면 건강비라는 명목의 세금을 더 내야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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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도 마찬가지다 5년 전에는 아르바이트비의 반을 운동에  썼다 스무 살 때부터 헬스, 요가, 필라테스, 수영을 고루고루 하다가 플라잉 요가를 한 뒤로 정착했다 어릴 때부터 서커스를 보며 공중곡예에 대한 꿈이 있었고 놀이터에서 높이 오르는 것들만 좋아하던 내게 딱 맞는 운동이었다 과한 호흡 없이 자연스럽게 근육을 늘리고 균형과 자세를 잡는 일 그러나 플라잉 요가의 단점은 필라테스만큼 고가의 운동이라는 점이다 인원이 적을수록 그러하고 월 5만 원에도 가능한 운동과는 달리 기본이 10만 원 이상이다 무엇보다 센터들은 월별 결제를 하지 않는다 최소 3개월부터이고 길어질수록 할인율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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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연기, 음악, 글쓰기처럼 돈이 되지 않는 일들만 해왔기 때문에 내게는 평생직장이나 계약직보다 알바가 것도 단기 알바가 익숙하다 마트에서는 명절마다 선물세트를 팔고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을 화이트데이에는 캔디를 어린이날에는 인형과 로봇을 크리스마스에는 와인을 팔았다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지만 밤새 글을 쓰거나 영화를 봤던 나로서는 최상의 일이었다 물론 다리가 붓고 목이 붓고 다른 매대의 직원의 시비와 질투를 견디는 것은 내 몫이었다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백화점도 다를 바는 없었다 식품관에서 사과도 팔고 특별매장에서 와인도 팔았다 마트에서 만나는 진상 손님보다는 덜하지만 부유한 사모님들과 연예인들의 여유 있는 쇼핑을 보고 있노라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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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을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것만큼 괴로운 게 있을까 평생을 글을 쓰고 있겠지 쓰지 않는 삶은 도통 떠올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건강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황정은 작가는 오래 앉아있어야 하므로 코어운동만큼은 확실히 한다고 그의 에세이에 기록했다 그래 작가는 코어지 척추와 손목 관리는 글 쓰는 이들에게 평생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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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려면 건강한 것들을 먹어야지 내가 먹는 것들이 내가 되니까 나에게서 풍기는 냄새는 내가 먹은 것들로 이루어지지만 나는 도통 육식을 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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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운동을 하고 싶다 운동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누군가는 조깅이라도 해보라고 게으른 나를 탓 하지만 조깅도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골반이 자주 틀어지고 기관지나 폐활량이 약하고 발목이 약한 나는 조깅도 어렵다 산책이나 정적인 운동이 최선이다 성격상 지루한 운동도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해본 결과 필라테스나 플라잉 요가가 최선이었다는 것 어쨌든 운동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적 물질적 정신적 여유다 복지에도 운동이 덕목처럼 필요하다 특히 예술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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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것이 많다 제주도 배경으로 로맨스, 부에노스 아이레스 배경의 로맨스, 시집을 위한 시 수정, 읽어야 할 책들이 담처럼 쌓여있다 책과 담을 쌓은 게 아니라 책으로 담을 쌓고 있다 두께는 왜 이리도 두꺼운지 이럴 땐 내가 여럿이고 싶어 적어도 둘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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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려면 한시도 쉴 수가 없다 즐기면서 일하려는데 이게 남을 위한 일이 아닌 나를 위한 일이다 보니 자꾸 미루게 된다 역시 인간은 데드라인이 필요하다 죽음이 있으니 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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