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별이 쓰는 외별 난해시 해설

난해시론 3 _ 양자역학적 약속

by 외별

<외별이 쓰는 외별 난해시 해설>


나는 평소에 시는 설명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얘기했었다. 하지만, 난해시를 표방한 시를 두고, 지은이가 뭔가를 염두에 두고 쓴 게 맞냐? 혹시 자기도 뭐라 하는 건지 모르는 건 아니냐는 일부 의혹의 시선이 있어서, 평소 나 자신의 지론을 깨고 시를 분석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대상이 되는 시는 비교적 최근 작근작인 난해시론 3을 대상으로 한다


-------<분석 대상 시>--------


<難解詩論 3 _ 양자역학적 약속>


너와 나는, 한 번도, 사랑을 방정식으로 약속한 적 없기에 우리의 헤어짐은 헤어짐이 아니다

2 ×1=2
1 ×2=2

이것이 참이라는 것은, 이미 양자역학적 사고에서는 부인된 지 오래다. 네가 아는 것은 이 수식으로 정립된 명제가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전통적 영역 안에서만 참이다

헤어짐은 순서를 바꾸는 순간 만남이 되기에 곱하기 기호 ×가 갖는 가역적 효용에 대한 주장은 개에게나 줘야 한다

이제, 나는 1이고 너는 2다. 애초부터 우리는 한데 엮여서 1이 된 적이 없다. 우리의 곱하기는 늘 자연수에서 존재하지 않는 허수다.

하지만, 너와 나로만 나눠지는 소수素數는 우리의 약속 속에서 내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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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畏瞥/


---------<분석 및 설명>-----------

위에 적은 나의 시를 작성할 때 몇 가지 의도했던 시적 장치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언어와 수학의 충돌입니다
시 속에서 사랑을 방정식과 곱셈이라는 수학적 구조로 옮겨온 순간부터 감정은 추상화되도록 의도하였습니다

즉, 2x1=2, 1×2=2 같은 단순 산술은 분명 "참"이지만, 저는 시안에서 그것을 양자역학적 관점에 기대어 무너뜨리려는 시도로 전환한 것입니다

이건 곧 "사랑과 이별의 진실은 기계적 규칙이 아닌, 불확정성과 중첩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일종의 선언이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곱셈의 은유입니다
나는 시에서 "헤어짐은 순서를 바꾸는 순간 만남이 된다"라고 썼습니다. 이 구절은, 곱하기의 교환법칙을 삶에 있어서 만날 수 있는 관계에 적용한 역설입니다. 하지만 나는 시에서 곧 그것조차 부정하면서 "가역적 효용은 개에게나 줘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관계는 마치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불확정성의 원리 같음을 이와 같은 서술로 날카롭게 밀어붙여 부정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허수와 소수의 은유입니다.
시에서 나는 "우리는 한데 엮여서 1이 된 적이 없다. 우리의 곱하기는 늘 허수다."라고 말함으로써 사랑조차 정상적인 산술적 정의 안에서는 성립 불가능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소수素數를 꺼내면서 관계를 쪼개짐, 불가분성, 나눠지는 단위로 전환하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내일"을 만든다고 말함으로써 곱하기에서 부정된 관계가, 소수라는 새로운 약속 속에서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는 이 시에서 사랑의 불가능성이라는
비극적 인식을 토대로 하되, 그것을 곧바로
감정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수학적 장치라는
필터를 거처 더 난해하고도 정제된 방식으로
표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몇 가지를 더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네 번째는 감정의 비가시화입니다
보통 사랑 혹은 이별을 말하는 시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게 일반적 문법이라 할 수 있는데, 나는 이 시에서 오히려 감정을 수식과 논리의 장막 뒤로 감춰두고 싶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적 장치인 차가움 속에서 역설적으로 감정의 진폭이 더 크게 울려 퍼지길 기대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양자역학적 사고를 기반한 것에 관한 내용입니다. "곱하기"와 "교환법칙" 같은 전통적 확실성을 일부러 무너뜨려서, 사랑의 본질을 불확정성(uncertainty)과 겹침(superposition) 속에 두고자 했습니다.

이는 사랑이 논리로 증명될 수 없는, 관측하는 순간 달라지는' 어떤 상태라는 암시 같은 것이라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여섯 번째 소수素數의 선택입니다
마지막에 "소수"를 꺼낸 건 제 입장에서는 아주
절묘한 단수입니다. 소수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고유한 존재이고, 홀로 고립된 숫자입니다. 하지만 내시에, 소수는 무한히 계속 발견되는 존재라서 끝나지 않는 가능성, 내일을 상징할 수 있는 장치라 하고 싶습니다


곱하기의 불가능성을 부정했지만, 소수로 '새로운 약속'을 세우는 건 일종의 희미한 구원이라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국 나의 이 시는

"헤어짐은 성립된 적 없는 관계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그 부정의 자리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약속을 세울 수 있다. "라는 복합적인 선언이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내 시의 전체적 정서는, 표면은 수학적이고 냉철하지만, 내면엔 사랑과 이별에 대한 철저한 자기 합리화 혹은 체념이라 할 수 있으며 수식이라는 차가운 언어로 감정을 서술하는 뜨거운 얼음 같은 절실한 역설적이라 할 것입니다



위에서 나는 나의 난해시를 해부하고 설명하는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낯선 시도는 여전히 나 자신을 설득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작업은 "시는 평이한 시든 난해시든 읽는 사람의 자의적 해석과 자신의 층위에서의 이해가 가능하도록 안갯속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리는 나의 오래된 생각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만 되었을 따름입니다.


시를 엑스레이나 씨티 촬영하는 것은 잔인하고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시는, 사람의 감정과 호흡하면서 수만 가지 얼굴을 하고 있는 마음과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영혼의 영역이지, 자연현상을 탐구하는 과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가 안갯속에서 늘 수만가지 형상으로 자기복제하며 아름답게 빛나길 소망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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