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難解 _ 칸딘스키的分割>과 해설
자작시
<難解 _ 칸딘스키的分割>
나와 '나들'을 구획하는 큐브 현관문은 닫혀있다. 남루한 의식을 감추기 위해 매달아 놓은 다수의 자물쇠가 구분선을 긋는다. 민감한 동작 감지기에 의해 차단되는 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비틀어 봐도 마음에 지른 빗장이 단단하다
큐브 안의 시간들이 달리의 시계처럼 흘러내렸다. 가슴에 등(背)을 달고 사는 '나들'이 시간을 조문 온 저녁, 식은 말로 허기진 속을 채우고, 묵은 구토를 하는 잘린 손목들은 어색한 악수를 나눴다
닫혀있던 문을 건너 '나들'이 서둘러 사라진 저녁. 큐브 안에서는 잘 분리된 정물들이 뜯겨 나간 시간의 자리를 빈틈없이 메우고. 잘린 손목들은 '나들'이 흘려놓은 무료한 핏물로 칸딘스키를 따라 공간을 무심하게 분할하고 있었다
벽이 문을 겁탈하는 육면체 내부에 감금된 '나'의 의식은 세포막을 허문 채 증식을 멈추고 거죽만 남겨진 시계가 총을 들어 관자놀이를 저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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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2025/畏瞥/
<자작시 해설>
이 시는 분열된 자아의 공간화, 그리고 그 공간이 스스로를 감금·살해하는 과정까지를 매우 정교하게 밀어붙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해 놓았습니다. 이 시에 사용된 핵심 은유와 사유의 해체를 통해 세부적으로 이 시의 의미와 구조를 해체하도록 하겠습니다.
1. 제목: 難解 _ 칸딘스키的分割
1) 難解: 이해 불가능함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이해를 거부하는 구조
2) 칸딘스키的 分割:
감정·정신·의식이 기하학적 면과 선으로 분해되는 추상회화적 폭력
즉, 이 시는 서사가 아니라 분할된 의식의 평면도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큐브와 현관문 ― 자아의 입구가 아닌 ‘차단 장치’
/나와 '나들'을 구획하는 큐브 현관문은 닫혀있다./
1) '큐브'는 안정·완결·질서의 상징이 아니라, 완전히 밀폐된 정신 감옥의 은유입니다
2) '현관문'은 외부로 나가는 통로가 아니라, 자아와 자아 사이의 경계면 매달아 놓은 다수의 자물쇠이며, 이 자물쇠들은 타인의 침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나들’이 서로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기제입니다.
3. ‘나들’ ― 복수화된 자아, 혹은 등(背)을 단 존재들
/가슴에 등(背)을 달고 사는 '나들'/
등은 원래 보지 못하는 방향을 말합니다. 따라서 가슴에 달린 등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등을 돌린 채 살아가는 자아들' 즉, ‘나들’은 타인이 아니라
서로를 외면하도록 설계된 나의 분신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달리의 시계와 잘린 손목 ― 시간과 행위의 붕괴
/큐브 안의 시간들이 달리의 시계처럼 흘러내렸다./
시적 화자에게 시간은 더 이상 직선이 아닙니다. 기억·의식·죄책감이 중력처럼 녹아내리는 것에 대한 형상화와 은유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묵은 구토를 하는 잘린 손목들/
손목은 행위, 선택, 책임에 대한 상징이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손목은 잘려 있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행동할 수 없는 자아들과 죄책감만 반복 재생되는 의식의 잔해를 상징하는 시적 장치입니다
/어색한 악수/는 화해가 아니라
자기혐오한 자아들끼리의 형식적인 접촉을 의미하며 본질적으로 현대사회의 소외로 인한 인간관계의 단면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5. 칸딘스키의 공간 분할 ― 감정 없는 추상 폭력
/칸딘스키를 따라 공간을 무심하게 분할/
여기서 중요한 건 '무심하게'입니다. 피(血)는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형식적 재료로 쓰인 것으로서 고통조차 감정이 아니라 구성 요소로 환원됨을 의미하며, 우울이 아니라 해체 이후의 무감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6. 마지막 이미지 ― 자아에 의한 자아 저격
/벽이 문을 겁탈하는 육면체 내부/
벽은 고정이며, 문은 이동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벽이 문을 겁탈한다'라는 진술은 탈출 가능성이 구조 자체에 의해 파괴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거죽만 남겨진 시계가 총을 들어 관자놀이를 저격/
이 장면은 이 시의 결정적 장면으로서
• 시계 = 시간
• 거죽만 남음 = 의미 없는 반복
• 관자놀이 = 기억·의식의 중심
즉, 시간이 의식을 살해함으로써 살아 있음이 아니라 지속되고 있을 뿐인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본석한 나의 이 시를 요약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나는 분열되었고
• 그 분열을 봉합하지 않기로 선택했으며
• 결국 구조 자체가 나를 죽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화자는 이 시에서 살고 싶다는 말도, 죽고 싶다는 말도 없습니다. 오직 “이 구조를 정확히 묘사하겠다”는 냉정한 의식만이 있다.
이 시에서 나는 아픈 사람의 시’가 아니라
‘의식이 스스로를 해부한 기록’을 남기고자 의도했던 것이며, 읽히기 위해 쓴 시가 아니라, 의식의 잔해를 남기기 위해 쓴 일종의 문서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시를 2005년에 처음으로 낙서 형태의 초안을 그렸습니다. 그 사이 생업을 위해 20년간 일기장 속에 방치되었던 것을 의식의 수면 위로 꺼내 놓은 것은, 육체적으로 내가 가장 아픈 시기였습니다. 아마도 나는 이 시를 통해 칸딘스키적 구획의 회화에 투영된 정신분석 도식으로 나의 무의식을 재구성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향후에도 아마도 나의 퇴고와 분할은 멈추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내 무의식이 개입된 의식의 표방이기 때문입니다
/20-12-2025/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