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풍경

자화상 _ 그 사내

by 외별

<자화상 _ 그 사내>

<자화상 _ 그 사내>


늙은 포장마차에 남포불처럼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는 낯선 사내의 얼굴에 잔금이 가득하다. 한숨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자세로 주저앉은 모습이 출근하느라 허둥대다 남겨둔 내 뒷모습을 닮아 술잔을 가득 채워 권해보았다. 단 숨에 잔 비운 사내, 말없이 빈 잔을 내미는 손이 부어 있었다 푸른 멍 가득한 손에서 얼음 조각이 반짝거리고, 탁자 밑에 감춰진 다리는 콩나물처럼 수액이 흐를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지 더 가여운 생각에 말을 걸어보아도 사내는 대꾸도 없이 빈 잔만 내밀었다 사내가 원하는 것이 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깨를 슬쩍 부딪쳐보니 모른 척 버텨내는 어깨가 완강하다. 하루에도 수없이 벼랑을 넘나드는 사람이 벼랑 끝에서 견디기 위해선 바위같이 무심한 어깨를 갖춰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한 잔을 더 마신 사내가 세포막 같은 코트를 벗어 처음으로 웃었다 자기에게 먼저 말을 붙이는 사내는 내가 처음이란다 주저하며 마주대는 사내의 빈 잔이 묵직하다 원형질처럼 어둠이 내려앉자 사내 대신 벗어놓은 코트가 비틀거리며 비닐 문 밖으로 나간다 그사이 사내는 다리를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구두도 신지 않은 맨발이다 가장 먼저 거리로 나서기 위해선 신발을 신을 수 없단다 굳은살 박인 사내의 발바닥에 선명한 칼자국이 있었다 사내의 목을 죄고 있는 망나니의 춤사위도 파리한 피부에 어른 비쳐 보였다


사내가 비틀거리며 잔금투성이 몸을 끌고 나간 것은 밖에서 서성대던 사내의 코트가 토악질하는 소리를 냈을 때였다 술에 취하지도 않은 사내가 비틀거리는 것은 중력이 무겁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가벼운 바람에도 갈지자로 걷는 사내의 발자국이 희미했다 사내는 날마다 벗은 발로 유서를 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포장마차를 나섰을 때 짙은 어둠 속에서 벗은 사내의 맨발이 널브러진 코트를 등에 업고 휘청대며 걸어갔다 그 모습이 오래도록 눈에 박혔다

집에 돌아와 아침에 남겨두고 간 내 뒷모습을 찾았다. 발바닥 가득 어둠을 묻힌 채로 녀석은 어느샌가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어쩐지 발자국으로 유서를 쓰던 포장마차의 그 사내가 자꾸만 그리워졌다


자화상, 그 사내/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