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일기
<발칙한 상상 _ 일부일처? 다부다처?>
몇 년 전 큰 아이의 학부형들과 무척 친하게 지내며 가족들끼리 정기적인 모임을 갖던 적이 있었다. 남자들이야 기껏해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났지만 엄마들은 아이들 교육을 빙자(?)하여 일주일에도 서너 번씩 만나서 수다도 떨고 약간의 알코올을 곁들여 가무를 즐기기도 했었다. 그 자리에서는 집집마다 이불속 사정 이야기까지 아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분위기가 되어 내가 본의 아니게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었다.
그 당시에 우리 부부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부의 일을 치렀고 컨디션이 괜찮은 날이면 연장전도 무리 없이 해내던 때였던지라 아내는 그게 일반적인 부부의 모습인 줄 알고 그대로 얘기를 했었더란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 모인 아줌마들이 나를 아예 변강쇠 취급을 하여 00동 강쇠씨라고 별명까지 지어 부러움 반, 놀림 반으로 불러대곤 했었다.
그 학부모들 중에서 유독 친하게 지내는 집이 있었다. 그 집은 남편은 내 대학 2년 후배였고 아내는 내 고등학교 5년 후배였기에 그런 특별한 인연으로 인하여 다른 집 보다 훨씬 자주 만남을 갖고 술자리도 꽤나 거나하게 취할 정도로 친밀하게 지냈더랬다. 형님, 아우에 오빠, 동생 하면서 전혀 허물없이 가족 같은 분위기였기에 아이들도 그 만남을 은근히 기다리며 언제 또 모이냐고 채근까지 하는 형국이었다.
그 집은 부부가 모두 소위 말하는 '말술'이었다. 각자 소주 서너 병은 기본이고 2차에 3차까지 연장을 하지 않으면 술 마신 게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애주가 부부였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취약한 사항이 바로 부부의 은밀한 관계 부분이었다. 아내와 만나면 항상 아내를 부러워하면서 자기네 집은 연례행사라고 푸념을 늘어놓더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술자리가 3차까지 가서 꽤나 취기가 도도했던 날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 집 아내가 혀가 조금 꼬인 목소리로 말을 했는데 그 말에 대한 그 집 남편의 말에 우리는 아예 뒤집어졌었다.
그 집 아내 : "여보, 아까 여기가 수녀원 아니냐고 전화 왔었어. 아마, 우리가 관계를 명절에만 갖는다고 소문났었나 봐"
그 집 남편 : (약간 화내는 듯한 목소리로) "일 년에 두 번씩이나 하는 수녀가 어디 있노? 그래도 해 넘기지 않으니까 된 거 아이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런 말을 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것도 그랬지만, 그 말투와 내용이 어찌나 우습던지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었는데 정작 나를 놀라게 한 말은 그 이후, 이어진 그 집 남편의 말이었다.
그 집 남편 : "형님, 형님은 우리 동네 강쇠니까, 우리 마누라한테 좀 나눠주소. 마, 죽으면 썩는 긴데 아끼면 뭐 합니꺼? 부탁하입시데이~"
그 집 아내 : "오빠가 그렇게 해준다면 나야 좋지.. 난 준비 됐어"
아내와 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 집 부부가 놀랍기도 하고, 또 너무도 적나라한 그들의 대화가 민망하기도 해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그 집이 분당으로 이사를 가면서, 자연스레 모임이 뜸해지고, 차차 연락이 끊어지게 되어, 요즘은 기껏해야 서너 달에 한 번씩 아내에게 안부 전화 오는 것이 전부가 되었지만, 그때의 그 부부의 말과 함께 오래도록 은근하게 이어지던 그 집 여자의 강요가 무척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가족 형태가 등장했다고 한다. 복수의 부부가 한 가족으로 복수의 남편, 복수의 아내가 되어 한 공간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스와핑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가족 형태다. 그들 구성원들은 서로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한다고 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윤리와 가족 개념에 비춰봐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 가족 형태. 그런데, 그 가족 형태가 정말로 모든 사람의 비난을 받을만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과 같이 이혼율이 높은 사회에서, 재혼, 삼혼, 사혼을 반복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에서, 결혼 제도의 다양화의 일환으로 저런 신개념의 가족 형태도 어쩌면 또 하나의 대안 가족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마치 그 사람들이 절대 범해서는 안 되는 금단의 열매를 딴 죄인이나 변태처럼 여겨서 돌을 던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일부일처의 결혼제도 과연 인간이면 마땅히 지켜야만 하는 절대불변의 윤리 원칙일까? 인간도 사회도 바뀌는데 하물며 제도가 바뀌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닐까? 그런 새로운 형태의 가족 틀 안에서 아이들에겐 어떤 영향이 미쳐질까? 혹시 그 집 부부는 이런 형태의 가족제도 출현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은근히 내게 그걸 권한 것은 아닐까? 갑자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한 오후다. 밖에 흩뿌리던 비가 그쳤는데.... 마음속이 젖어 있다.
2009. 08. 27 / 외별 /
불과 십육 년 전의 글인데, 아주 잠시라도 저런 생각을 화두에 올려서 일기에 적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마도 나는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급진적 개혁성향을 갖고 있었나 보다.
어찌 되었건 저런 발칙한 상상을 상상으로 끝낸 건 정말 가슴 쓸어내리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2025. 07. 24 / 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