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옥이
<정말 보고 싶다, 친구야~>
_ 인옥이
대학 때, 이성이지만 마치 동성친구인 양 격이 없이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소주값이 모자라서 전화하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술도 못 마시는 녀석이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와 마신 술 값을 치르고도 입가심하라면서 한 병을 더 사주던 넉넉했던 친구.
대구에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제 용돈도 빠듯했을 텐데 한 번도 싫은 표정을 짓지 않던 친구, 인옥이..
우리 학교의 정문에서 본관까지 이르는 길을 백양로라 불렀었다. 백양나무가 많은 길이라 붙여진 이름이겠지만, 내가 다니던 시절의 그 길은 백양목보다는 은행나무가 많았었다. 가을이 오면 온통 노랗게 물든 거리에서 잠시 꿈도 노랗게 물들이던 시절에 그 친구와 나는 약속이란 걸 하지 않으면서 만났다.
만날 시간 약속을 하지 않아도,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꼭 그 은행나무 무성하던 백양로에서 조우하였기에 따로 약속을 정할 필요가 없었다. 백양로를 오가는 수많은 학생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한 백 년쯤은 떨어졌다가 만난 사람들인 양, 굳은 포옹을 나눴던 친구, 서로 가슴을 꼭 붙이고 끌어안고 어깨를 두드려도 봉긋했던 가슴을 느끼기보다는, 이성이라는 느낌의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기보다는, 마치 전쟁터를 같이 누빈 전우 같은 편안한 우정을 느끼게 해 주었던 친구, 김인옥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친구 앞에 여자를 붙여 여자친구라 부르기 어색한, 그냥 친구 인옥이가 은행잎과 함께 기억 밖으로 불쑥 솟아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한 것 때문에 연락이 끊어졌지만 아주 오래도록 좋은 친구로 기억되는 그 녀석이 올해도 어김없이 노란색 기억으로 솟아오르고 있다.
이제는 팔뚝도 굵어질 대로 굵어지고 적당히 배도 나와 세월의 옷을 입고 지낼 녀석. 지금이라도 다시 만나면, 아무 걱정이나 염려도 없이 그 옛날처럼 깊은 포옹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녀석, 인옥이가 참 보고 싶다. 나중에 결혼하면 네 남편이랑 내 아내랑 이렇게 넷이서 만나서 진하게 놀아보자고 했던 약속은, 해마다, 은행잎에 노란 시간이 익으면 올해도 지키지 못했노라며 아쉬워하고 있는데...
어디서 살고 있니? 잘 살아내고 있는 거지? 참, 많이 보고 싶다. 김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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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명대사 한마디
인옥이는 말을 참 재미나게 했던 친구였다. 같은 농지거리를 말해도 그 녀석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곁들여지면, 친구들은 그야말로 자지러지곤 했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한잔씩들 거나하게 걸치고는 불콰해진 얼굴로 마주 앉아 있는데, 혼자만 술을 먹지 못해 말짱한 얼굴로 앉아 있던 인옥이 녀석이 한마디 툭 던진 말. 우리들은 그 말 때문에 너 나 할 것 없이 또 한 번 뒤통수에 혹이 생길 정도로 뒤로 넘어갔었다.
"야, 근데 왜 나는 이렇게 가슴이 절벽이냐? 있어야 할 데는 좀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없어야 하는 배는 산타클로스 선물주머니처럼 튀어나오고, 미치겠다 이거" 뭐 대략 이런 말이었다.
남자들 사이에 앉아서 아무런 표정도 없이 제 가슴을 만지며 던졌던 저 말,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회자되었던 녀석의 농담. 그리고, 인옥이 앞에서 허물어졌던 성별의 경계.
인옥아~ 이제, 가슴은 좀 커졌냐?
/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