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살고 싶다
<넋두리>
- 춘천에서 살고 싶다
아주 오래전부터 난 은퇴하고 나면 춘천에서 살고 싶었다. 강이 있고, 호수가 있고, 산이 있고, 들이 있고, 그리고 바람이 있는 곳. 대학 시절의 기차 여행이 선명한 빛으로 남아 있는 도시 춘천. 안개의 두께가 내 선천적 그리움을 적당하게 가려줄 수 있는 땅 그곳. 그 춘천의 외곽 산중턱쯤에 너와집을 짓고 텃밭도 일구며 살고 싶었다.
내 이런 계획을 듣고 아내는 펄쩍 뛰었었다. 살고 싶으면 혼자 가서 살고 텃밭 가꿔서 나온 소출은 정기적으로 보내라고. 아내는 서울이 좋다고 했다.
우습다.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고향인 서울을 싫어하고, 경북 영주에서 태어난 아내는 서울에서 살고 싶어 하고. 아내는 내가 그런 말을 할 때 그냥 먼 미래 이야기이니까 그냥 무지개를 타고 싶어 하는 소년의 치기 어린 소망쯤으로 치부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랴,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면서 꼭 춘천은 아닐지라도 산에서 산바람 내음을 맞으며 살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곰배령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것도 좋고, 파로호 출렁이는 화천의 산그림자만 봐도 가슴이 울렁대는 것은... 어쩌면, 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복잡한 도회의 동적인 풍경보다 코스모스 흔드는 바람결이 고운 조용한 산길을 선천적으로 그리워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산 그늘을 지키던 부엉이는 아니었을까 싶다.
올해 예순두 살. 아직도 십수 년은 더 일해야 하지만, 시속 60km/h로 달려가는 육십 대의 나이를 생각할 때, 너와집 지붕 올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도 미리 마련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괜스레 마음이 급하다. 정말 이율배반적인 모습이지만 저잣거리의 속도전이 싫어 동경하는 산속 생활을 마음으로 이렇게 조급하게 준비하는 것이 내 속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시계의 똑딱거림 때문이리라.
산에 너와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며 살고 싶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고, 그림도 많이 그리며, 평생 치유하지 못한 선천적 그리움을 마음껏 풀어내고 싶다. 혹여, 고갯길 동무할 아내가 옆에 함께 있지 않을 거라는 염려는 벌써부터 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그때를 위해 마음의 건강과 몸의 강인함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먼저이리라. 텃밭을 갈기 위한 보습을 힘껏 쥐기에 부족함이 없는 내 건장한 팔뚝을 위해.
/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