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_ no 24

우리가 진정 사랑했을까

by 외별

<우리가 진정 사랑했을까>


1
조각조각 갈라진 사금파리 위에
기와깨미 한 줌 담아 놓고도
여보 되고 당신이 되어
아무 걱정 없이 웃음을 섞던 시절에
우리는 내일을 말하지 않았도 좋았다

가로등 같은 눈빛으로
땅거미 내린 골목길에서
사위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우린 사랑을 맹세했었지

꽃잎 같은 입술이 가슴을
처음으로 찾았던 날에
손은 마음보다 먼저
여린 젖꽃판을 어루만지고
죽어서도 변치 않을 마음이라고
울부짖었지

너의 산에서 무수한 꽃잎이 지는 소리에
내 안에 고인 물은 폭포가 되었던
그때에 우리는, 사랑했을까


2
발 밑에 말라붙은 무게 잃은 그림자에겐
말을 걸 필요가 없어,
변화 없는 표정으로도
속내를 알 수 있다고
무시로 중얼대며
서로의 식은 심장을
조금씩 뜯어대던 날에
살점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바람은 늘 그만큼씩 서걱거렸다

해가 뜨지 않는 흐린 날에
그림자는 말도 없이 외출을 하고
그때마다 우리는 소음 가득한
전화기를 종일토록 들고 있었다

해가 뜨지 않는 날
그때에도 우린, 사랑했는지


3
낯 선 사내의 방에
길게 누운 그녀의 그림자가
무채색을 벗고
나부(裸婦)처럼 빛나는 알전구 아래서
지축을 흔들고 있었다

내겐,
나보다 먼저 늙어버린
그녀의 그릇들이 수북하게 쌓여
지난 시간처럼 달그락댔다

함께 보낸 시간보다 많은 잔금 사이로
잊고 지낸 내가 실없이 새나가고 있는데

우리가 진정 사랑했을까,


/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