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빙하트레킹] 길 없는 길 위에서 - 3

해발 3982 미터, 발목을 접질리고 주저앉았다

by 메이슌


트레킹 시작 2일 차. 해발 3870m 에서 일어났다.


오늘따라 침낭에서 나오기가 너무 힘들었다. 텐트에는 서리가 껴있었다. 10킬로가 넘는 배낭을 어깨에 둘러메는데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아래 허리는 돌멩이가 짓누르는 듯이 뻐근했다.




앞으로 놓인 길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빙하의 크레바스는 호수 밑에 도사리는 악어의 날카로운 이빨과 같다. 잔잔해 보이는 수면 아래, 여행자를 집어삼키려 기다리는 존재.


새하얀 눈 밑에 가려진 크레바스는 날카로운 얼음 칼날과 죽음과 꼭 닮은 끝없는 공허를 품고 있다.



라오잔이 “로프 꼭 가져가라”며 걱정스럽게 말한 소리가 마음에 박혀 두려움이 증폭되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강렬하게 위협으로 다가온 적이 언제였던가. 빙하 지대에 가까워질수록 걱정과 공포는 정당하게 얼굴을 드러냈다. 공포는 현재가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상상에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공포는 삶의 선물인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존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신이 내리는 벌 같다는 생각을 했다.




히말라야 가장자리에 접어들자 야크도 파시미나도 염소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커녕 동물의 발길도 닿지 않는 이곳엔 길의 흔적조차 희미했다.


풀은 허리춤까지 자라있었다. 그 사이로 숨은 땅을 보지 못한 채 발목이 허공을 딛는 순간, 나는 몸과 배낭 무게를 뒤틀린 발목으로 받아냈다.


뒤틀린 발목을 붙잡고 끙끙거렸다. 다행히 부러지진 않았다. 구조 신호를 보낼 장비도 없었으니, 만약 뼈가 부러졌다면 이 길을 3일 동안 기어 내려가야 했을 것이라는 끔찍한 상상이 들었다.



그렇게 땅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땐 잘 보이지 않았던 꽃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 모를 꽃잎은 진한 분홍색이 가장 생생히 피어난 황금기, 절정기로 보였다. 고산에 내려쬐는 강렬한 태양에 진분홍색 꽃잎이 말라버려 정열적인 주홍색으로 땅 위에 떨어졌다. 그렇게 꽃 무더기 속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아마도 앞에 나아가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몸도 마음도 흔들렸고, 그 와중에 발목이 뒤틀렸으리라..


나는 화창한 하늘을 향해 무심히 질문을 던졌다. 다친 발목과 얼룩진 마음으로 앞으로 어떻게 이 험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이제껏 어떻게 힘들게 걸어왔는데, 그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는 더더욱 싫었다. 앞길도 지나온 길도 부정하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현재’에 목이 졸린 채 땅바닥에 나부러져 한참을 있었다.



그러나 산은 삶처럼, 매정하다. 걸어야 할 길은 걸어야 했다.



마음이 내세우는 그럴듯한 부정적 감정을 거둬내고 상황을 바라보니 해답은 단순했다.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거나, 아니면 되돌아가거나. 나는 앞으로를 택했다.




두려움을 품안은 발걸음은 무거웠으나 숭고했다. 시야가 다시 드넓은 평야와 위엄 넘치는 산줄기로 향했다.



지금 나의 살결을 스치는 이 거대한 자연을, 나는 온전히 바라보기로 했다. 그래, 두려움과 함께 가자. 그렇게 한 발, 또 한 발, 천천히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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