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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회사, 국내 장비 엔지니어 생활의 시작(1)

신입, 그리고 반도체 현장에서 배운 성장 기록

by 산조세

나의 직무 : CS 엔지니어

우리나라 반도체 생태계에는 수많은 직무와 역할이 있지만, 나는 장비를 다루고 문제를 해결하는 엔지니어다. 스스로 표현하자면, 장비 의사와도 같은 역할이다. Software와 Hardware를 동시에 이해해야만 가능한 직업이기에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직무



# 첫 직장생활의 시작, 신입의 하루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한다는 것은 내게 참 낯설었다. 회사라는 조직의 문화와 가치를 익히고, 그 안에서 필요한 존재로 자리 잡아야 했다. 사실 신입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경험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적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고, 무엇을 하게 될지도 잘 몰랐다. 그저 나의 회사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질문하고 배우며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처음 입사했을 때 나는 당찬 패기를 보여주려 노력했다. 입사 첫날부터 중국어 가능 여부와 다양한 경험들을 선배들에게 어필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조금 더 천천히 배우는 과정을 즐겼으면 좋았을 것 같다. 열정은 중요하지만, 회사라는 공동체에서는 때론 지나친 패기가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 조직 문화와 업무환경

내가 몸담았던 국내 장비 회사의 조직은 딱딱한 분위기였다. 직급 체계는 엄격했고, 업무 전달 방식도 수직적이었다. 입사 후 2주간의 연수 과정에서 동기들과 친목을 다지며 공부했던 시간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면서 회사는 성과를 내야 하는 곳이며, 개인이 자신의 역할을 온전히 해내야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특히 반도체 장비는 정교한 작업이 요구되었고, 사소한 실수조차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었다. 반도체 웨이퍼의 가격이 자동차 한 대 값에 육박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내가 다룬 장비는 반도체 웨이퍼 제작 시 필요한 가스를 일정하게 공급하고 제어하는 설비였다. 전공이 전자공학이었지만, 처음 접하는 장비와 부품들이 많아 모든 것이 낯설었다. 장비를 이해하려면 각 부품의 작동 원리와 연결 구조를 알아야 했다. 6개월 동안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도면을 보고, 케이블 연결 방식을 익히고, 하나하나 배워갔다.


# 첫 해외 출장, 중국 우시로 가다.

입사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중국 우시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해외 출장은 처음이라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시작했지만, 현장의 작업 환경은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거리와 흙먼지 날리는 공사판은 상하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반도체 라인 구축과 설비 세팅 작업을 위해 안전모와 안전화를 항상 착용해야 했다.

작업 환경뿐만 아니라 문화 차이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어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향적인 성격 덕분에 중국 엔지니어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며 협업을 이어갔다. 주말에는 우시에서 상하이까지 고속철도를 타고 여행도 다니며, 출장의 기쁨을 만끽했다.

해외 출장은 금전적으로도 매력적이었다. 출장비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월급은 대부분 저축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중국 출장이 있을 때마다 내 이름이 언급되며 출장 기회가 주어졌다.

중국 우시 여행 중 찍은 사진


# 엔지니어에게 필요한 역량

엔지니어로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협업과 의사소통 능력이라 생각한다. 반도체 장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계, 전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간의 긴밀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고객의 요구사항과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 문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객의 요청사항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반복해서 질문하며 명확히 이해하려 노력했다. 문제를 파악한 후 팀원들과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성급히 장비를 다루다 실수를 저지르는 대신, 팀과 협력해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다.


# 코로나 때의 해외파견 : 중국 시안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나는 원래 그 해 3월 미국 여행을 갈 예정이었지만, 회사의 요구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예매했던 비행기표와 숙소를 모두 취소해야만 했다. 그렇게 아쉬워하고 있던 그때, 부장님이 나를 중국 시안으로 파견을 보내겠다고 통보하셨다. 처음엔 무슨 이런 시국에 미국은 못 가게 하면서 위험한 중국으로 파견을 보내냐며 원망하기도 했지만, 해외를 또 나가고 싶었던 터라 또 부장님의 요구에 응했다. (물론 가라면 가야 하는 입장..ㅎ) 그렇게 나는 코로나가 한창인 4월, 삼성에서 띄워주는 전세기를 타고 중국으로 향했고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곧바로 호텔로 격리가 되었다.

2주간은 호텔방 안에서 직원들이 가져다주는 도시락만 먹었고, 매일 방에서 뒹굴뒹굴거리며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만 감상하며 지냈다. 격리라는 게 처음 2-3일은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겨워졌고 너무도 나가고 싶었던 터라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을 영상으로 찍어 그렇게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그렇게 호텔방에서만 있어도 출장비와 월급이 들어왔기에 금융치료를 하며 버텼던 것 같다.


격리가 끝난 후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시안의 작업 환경은 비교적 나았지만, 이동 제한으로 시안 시내에서만 생활해야 했다. 그래도 업무와 생활을 병행하며 나름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잠시 귀국했을 때는 한 달간 호텔에서 격리 생활을 했는데, 이 기간을 온전히 쉬며 재충전의 시간으로 활용했다.


회사는 성과를 내야 하는 조직이며, 관계가 중요한 공동체다. 좋은 상사와 동료를 만나면 업무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회사 생활 자체가 힘들어진다.

CS 엔지니어로서의 경험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뿐만 아니라 협업과 소통의 중요성을 배웠다. 이는 나의 성장 과정에서 큰 자산이 되었고, 앞으로도 나를 더욱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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