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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Nov 22. 2021

낮은 기대, 높은 기준

    즐겁고 흡족한 일보다는 괴롭고 지루한 일이 더 많은 인생을 조금 더 참아줄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만족스러운 외적 조건을 바꾸는 일만큼이나 삶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인생의 무게를 더 가볍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기대를 낮추는 것이다. 어떠한 경험이나 사람이든, 직업이나 취미든, 심지어 맛이나 향에 대해서도 가장 낮은 기대를 한 사람만이 가장 높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기대를 낮추라는 조언이 패배자의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 매일같이 눈부시게 성공한 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지 조언하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인생은 멋진 것이고, 당신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으며, 더 많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재의 순간에 충만해지는 방법에 대해서는 얼버무린다. 원대한 포부를 갖고 더 나아질 미래만을 꿈꾸며 지금을 지지부진한 준비 기간으로만 여기면 세속적 성공은 할 수 있을지언정 생존은 더없이 무거운 과업이 된다.


    진정으로 기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안분지족한 삶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아득바득 남의 것을 탐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인색하게 굴고, 가진 것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 오히려 가진 것이 적어도 상관없고, 더 많은 것이 내게 주어져도 동요하지 않으며, 또한 그 많던 것들이 사라져도 소박해진 대로 또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이가 더 온전히 삶을 즐기고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조건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기대를 없애면 어떤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나답게 살 수 있다.


    낮은 기대에 대한 또 다른 착각은 이를 부정적인 전망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행을 준비하며 화창한 날씨나 맛있는 토속 음식에 대한 기대를 버리기 위해서, 현지에서 바가지를 쓰거나 길 위에서 고생하는 상상을 하며 여행을 떠나는 일 자체를 고역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기대를 낮춘다는 것은 여행에 대한 환상을 품거나, 여행을 가봤자 좋은 경험일 리가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험이 좋거나 나쁠 것이라고 머릿속으로 미리 판단 내리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기대를 "낮추는"데 신경 쓰기보다 기대를 "없애는"데 집중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이 평균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판단력을 과신하고, 따라서 자신의 기대가 터무니없을 수 있다는 사실은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그토록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이유 중 하나는 제한된 정보와 지식으로 세상사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정해놓고선 매번 실망하기 때문이다. 겪어보기 전에 지레짐작하지 않는 태도는 우리를 편견과 실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가볍게 살기 위해 기대를 낮추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기준을 높이는 것이다. 기대는 없애라면서 기준을 높이라니 모순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대는 세상일에 대한 것이고 기준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다. 정확히는 우리의 주의와 관심을 어디에 둘 지에 대한 기준을 높여야 한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대상은 곧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스스로가 선택하여 무언가를 좋아하고 가까이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많은 것들은 무의식 중에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는다.


    관심의 기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어떠한 것도 함부로 들여놓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의식을 집이라고 생각해보자. 인터넷에서 본 세일하는 상품, 번화가를 돌아다니다가 예뻐 보여서 산 것들, 당장은 필요하지 않지만 언젠간 쓸 수도 있어서 쟁여놓은 물건들은 집안을 어지르고 정작 중요한 가구나 물건을 사용할 때 불편함만 가중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사에 무분별하게 주의력과 관심을 나눠주는 것은 내면을 온갖 심심풀이나 근심, 후회나 불안이라는 잡동사니로 가득 채우는 짓이다. 온갖 것을 마음에 담아놓고 삶을 가볍게 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처럼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문제는 오늘날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뉴스 기사는 우리를 화나게 만들고, 감각을 자극하는 게임이나 드라마에는 쉽게 몰입하게 되며, 술이나 약물 등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없이 살아가기 힘들다. 외부 자극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행위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점검하고, 기준을 두어 진정으로 필요한 자극 외에는 관심을 거둬야 한다.


    당연하게도 단번에 우리의 의식을 어지럽히는 일들로부터 멀어지기는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활동에 관심을 갖는 것도 좋으며, 그 대상은 운동이나 그림 그리기, 산책이나 수학 문제 풀이 등 어떤 행위여도 상관없다. 그렇게 삶의 고삐를 자기 자신에게 돌려주는 훈련을 계속하면 특별히 어떤 대상이나 사람도 우리를 좌우할 수 없고, 그제야 우리는 오롯이 본인의 기준에 맞춰 어디에 관심을 줄지(또는 주지 않을지)를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기대를 없애면 세상이 내게 무엇을 던지든 불평할 이유가 없다. 이는 삶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이 어떤 고난이나 시련을 던져도 흔들림 없이 나의 삶을 향유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관심을 끌어도 좋은 대상을 엄격하고 까다로운 기준으로 판가름하면 중요하지 않은 일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이를 실천하는 사람만이 언제나 세상을 여유롭게 둘러보며, 조바심 내지 않고 가볍게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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