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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Oct 16. 2021

추위를 대비하는 자세

    가을은 늘 순식간에 왔다 간다.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쌀쌀해지고, 피부에 닿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끼기보다는 움츠리게 될 때 우리는 가을이 다가오면서 동시에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지난 일 년간 무얼 하며 허송세월 했나 하는 후회가 살그머니 고개를 든다. 연초의 의지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하루하루 헤쳐나가는 데에 급급한 사람은 연말의 들뜬 분위기를 마냥 반갑게 맞이하지는 못한다.  


    많은 이들에게 가을이 쓸쓸한 이유는 단지 기온이 떨어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 해가 저문다는 표현에서도 볼 수 있듯이, 12월로 끝나는 달력에 자리한 십의 자리 월(月)들은 우리에게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태어난 날과 상관없이 한날한시에 나이를 먹는 우리에게 그만큼 초조함을 느끼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삶은 어디에서고 편집점 없이 계속하여 흘러간다. 인생은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여러 개의 에피소드와 시즌으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에 시작이나 끝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재미있는 부분이든 없는 부분이든 넘길 수도 없고 반복할 수도 없다. 그러니 지난 일 년을 별일 없이 보낸 사람도, 매우 힘든 시기를 지나온 사람도,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사람에게도 연말은 공평하게, 그리고 멈추지 않고 다가올 것이다.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이 느끼는 씁쓸함이 개인의 무능함이나 나태로부터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기대로부터 온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수행하다 보면 좌절을 느낀다. 지향점이 있는 사람은 지금의 처지와 되고 싶은 모습 사이의 괴리를 괴로워한다. 그러니 당신의 성취가 부족하고 결과가 보잘것없다고 느낀다고 해서 실제로 당신이 별 볼 일 없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만큼 자신의 삶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목표가 있는 삶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을 얻었든, 놓쳤든, 치열하게 살았든 빈둥대면서 흘려보냈든 그 모든 순간이 생의 일부임은 알아야 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한 해를 보내겠다는 다짐은 삼백예순 다섯 번의 화살을 쏘아 매번 과녁의 정중앙에 맞히겠다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결심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노력은 해보겠지만, 완벽하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약에 마땅히 해냈어야 하는 간단한 과업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우리가 "했을 수도 있는" 수많은 좋은 것들이 실제로도 좋았을지 아니면 시시했을지,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는 지나간 기회들이 우리의 아쉬움을 자극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막연한 성공에 대한 기대가 불러일으키는 감상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날씨가 추워질 때 우리는 대비를 해야 한다. 스스로의 일 년을 평가하며 이런저런 아쉬운 부분을 들춰낼 필요는 없다. 이번 해에는 글렀으니 내년에는 정말 새로이 태어나겠다는 부질없는 계획을 또 세우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러나 매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임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결과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과정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해하고, 더 늦기 전에 따뜻한 옷과 두툼한 이불을 꺼내는 것은 다가올 계절을 맞이하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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