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깊게 파고드는 자유의 세계
음악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으로 피폐해진 삶을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수단이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정의는 다를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음악의 정의는 이렇다. 정확히는 내가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음악이다. 세상의 그 무엇도 완전하게 무언가를 정의 내릴 수는 없다. 세상에 완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은 좋든 나쁘든, 또는 그것으로 가치 판단할 수 없는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인간은 시각으로 가장 깊이 있는 감각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귀로 느끼는 감각이 가장 가슴을 깊게 파고든다.
나의 기분, 감각, 상황에 따라 듣는 음악의 장르는 크게 달라진다. 일단 장르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힙합, 발라드, K-POP, J-POP, 클래식 등등 다양한 음악들을 감상한다. 힙합 장르 중에서도 트랩, 붐뱁, EMO, 드릴 등으로 나눠지며, ASMR, AI cover 등 기존의 음악 장르가 아닌 사운드 또한 듣는 편이다. 내가 음악을 감상하게 된 계기는 2015년 유튜브에 공개된 씨잼의 <신기루>라는 디스곡이다. 이 노래를 듣기 전까지는 내가 음악을 직접 찾아서 들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노래에 큰 충격을 받고 하나하나 찾아 듣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수많은 음악들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누군가는 우습게 볼지도 모른다. 사실 힙합 장르를 듣는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힙합 장르의 인식이 좋지 않았고, 지금도 돈, 명예만을 추구하며 사운드적인 쾌락만을 쫓는 한심한 장르라는 인식이 분명 많을 것이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힙합곡이 그렇다. 욕설이 난무하며 듣기 거북한 가사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힙합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줬고, 인생이 힘들 때마다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 줬던 음악이다.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어린 나에게 힙합은 자유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 줬다. 그 이후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가 되었다. 입시 시절 힘들었을 때 ASH ISLAND의 EMPTY HEAD라는 곡을 자주 들었는데,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무겁고 복잡한 나의 정신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센스의 The Anecdote라는 곡은 힙합이 한 사람이 걸어왔던 인생을 필름처럼 귀로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장르라는 깨달음을 주었고, 켄드릭 라마의 LOVE.라는 곡은 음악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예술이라는 영감을 주었다. 이 외에도 나에게 영감을 줬던 힙합곡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다만 내 음악 취향을 사람들에게 선뜻 이야기할 수 없는 음악적 문화가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리 나에게 힙합은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주고 있는 음악이라고 말해봤자 사람들은 쇼미더머니로 학습된 힙합의 더러운 면만 생각하고 무시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이런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는 것도 두렵다.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보이는 것, 남들이 하는 것들만 따라가는 현실이 안타까우면서도 한심할 뿐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크게 위로가 되어준 아티스트 3명만 꼽아보자면 ASH ISALND, JUICE WRLD, 조유리이다. 고3, 재수 시절 우울할 때마다 EMO 힙합 장르를 즐겨 들었는데, ASH ISLAND, JUICE WRLD는 그때 좋아했던 아티스트이다. 우울이라는 감정을 음악의 언어로 그대로 옮긴 힙합 장르가 바로 EMO이다. 내가 우울함에 빠질 때면 '괜찮아, 나도 너처럼 우울했던 시기가 있었어. 그러니까 나의 음악처럼 마음껏 울어도 돼.'라는 메시지가 음악으로 전달됐기에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또한 조유리의 음악은 군인 시절 힘들 때마다 큰 힘이 되어주었다. 힘들 때 손을 건네준 사람이 기억에 잘 남는다고, 아직까지도 조유리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힘들었던 시절이 생생히 떠오른다. 내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준 세 명의 아티스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R.I.P JUICE WRLD
최근에 빠져서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3명만 꼽아보자면 KENDRICK LAMAR, Playboi Carti, 슈베르트이다. 우선 KENDRICK LAMAR는 현재 가장 많은 영감을 주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그는 현시대 사회 전반에 대한 진중한 고찰과 메시지를 던지는 철학적인 가사를 힙합의 장르에 가장 잘 맞춰 쓰는 아티스트이다. 라임, 플로우, 테크닉 또한 완벽하며 무서울 정도로 랩을 잘한다. 영어 교양 시간에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주제로 발표를 했었는데, 캐나다 출신 교수님께서 켄드릭 라마와 드레이크의 디스전의 승자는 누구냐고 생각한다고 여쭤보셔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확실히 아메리카에서는 힙합이 메인 스트림이라는 것을 느꼈다. 디스전의 승자는 켄드릭이라고 생각하지만,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큰 규모의 디스전인만큼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즐겨 듣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죽음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슬픔을 안겨준다. 모두가 다치지 않고 오래오래 음악을 해줬으면 좋겠다. Playboi Carti는 사운드적으로 상당히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인간의 심연을 표출하는 자유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카티의 음악일 것이다. 힙합의 사운드로 쾌락을 느껴보고 싶다면 Whole Lotta Red 앨범의 수록곡들을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운동을 할 때 듣는다면 에너지 음료 같은 효과를 내줄 것이다. 죽기 전 카티의 콘서트를 직관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슈베르트는 위 2명과 같이 있는 게 이상할 정도로 동 떨어져 있는 아티스트이지만, 내가 슈베르트에 빠진 이유가 있다. 지금 읽고 있는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 슈베르트 음악의 철학이 나오는데, 상당히 인상 깊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사물의 본연의 상태에 도전해서 깨지기 쉬운 음악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로맨티시즘의 본질이고, 슈베르트의 음악은 그런 의미에서 로맨티시즘의 정수라는 내용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은 <악흥의 순간>이다. 짧지만 강렬하고, 불완전하다. 마치 우리의 인생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