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고통
이틀 전에 작성한 2월 일상 블로그에서 고통을 깎아내는 과정의 아름다움에 대한 에세이를 게재할 것이라고 공표한 바가 있다. 오래전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문과생들의 필력을 따라갈 수 없다고 느꼈던 나는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여기서 '나'를 상징하는 여러 가지 추상적 관념 또는 물리적인 형상이 있겠지만, 내 정체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공대생'이라는 특징을 잘 살려 수학이라는 학문으로 인생을 통찰하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렇게 방학 동안 쓸데없어 보일 수 있는 잡념들을 적분하듯이 모아 괜찮은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수학 지식을 인생의 고통이라는 관념에 녹여내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으면 하는 바이다. 수학에 문외한인 독자분일지라도 최대한 이론적인 부분보단 비유에 집중하여 써볼 것이니 참고 읽어주신다면 그에 맞는 임팩트를 드리기 위해 노력해 보겠다.
# 인생은 거시적으로 봤을 때 미분 불가능한 그래프이다.
우리의 인생이 롤러코스터처럼 변동이 심하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실패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 실수라는 과정에서 우리는 급하향할 때가 있고, 그 순간이 회복 불가능한 시점이라고 단정 짓고 올라갈 생각을 포기하거나, 극단적으로는 불연속적인 그래프로 인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순간이 도래할 때마다 포기해야 하는 걸까? 우리가 그런 나약한 생물이었다면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포기하려는 이유는 고통이 두렵기 때문이다. 필자도 약 23년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에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다. 자사고에 떨어졌을 때, 재수를 선택했을 때, 군대에 있을 때 아무런 변화도 원하지 않았고 올라가는 과정에서의 고통을 더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고통을 깎아내고 올라갈 수 있는 원동력은 아주 자그마한 변화, 즉 미시적인 변화에 있었다. 자사고에 떨어졌을 때에는 자공고를 써서 합격하였고, 재수하는 과정에서는 친구들을 자주 만났고, 군대에 있을 때에는 운동과 독서, 그리고 공부를 시작하였다. 즉, 거시적으로 봤을 때 미분 불가능한 인생의 그래프에 미시적인 변화를 주어 연속적이면서도 미분 가능한 그래프로 바꿨다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인생의 모든 구간을 미분 가능하게 바꿀 수는 없지만, 고통의 첨점이 생길 때마다 인생의 미세한 부분(differentiation)을 부드럽게 바꾼다면 어떠한 고통도 극복 가능한 형태(f'(a)=0)로 흘려보낼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은 불연속적이고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지만, 미분 가능한 곡선처럼 사실은 연속적이며, 작은 변화의 축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 적분은 미분의 역과정, 즉 고통이 쌓여 만들어지는 삶의 총합이다.
미분이 고통을 극복하는 순간적인 변화라면, 적분은 그 변화들이 누적된 결과이다. 다음 사진은 유명한 적분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생의 비유를 나타낸 것이다.
개별적 고통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하나의 큰 흐름, 즉 삶의 형태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만 바라본다면 허무주의이고 비관주의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 고통의 과정 속에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면 다른 동물들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고통은 삶의 깊이를 더하는 요소이다. 우리 모두 한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팠던 에피소드(미분 불가능한 첨점)가 있다. 하지만, birth에서 death로 가는 과정에서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경험이 있었기에 우리는 성장할 수 있었고, 강해질 수 있었다. 적분은 고통을 넘어선 삶의 총체적 경험이며,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성찰해 보는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고통을 미분적으로 보면 우리는 순간의 변화 속에서 버티고 극복해 나가지만, 적분적으로 보면 그 모든 경험들이 모여 우리 삶을 이루는 하나의 전체적인 그림이 된다. 결국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미분)이 삶의 총체적 의미(적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 독서와 자아성찰은 고통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도구이다.
여기부터는 공학수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고통에 대한 통찰이다. 우선 독서와 자아성찰을 각각 라플라스 변환(Laplace transform), 푸리에 변환(Fourier transform)으로 비유할 것이다. 라플라스 변환은 핵을 포함하는 적분 과정을 통해서 한 공간에서의 함수를 다른 공간에서의 함수로 변환하는 적분 변환을 통해 미분방정식의 풀이를 제공하는 도구인데, 이 과정을 독서에 적용한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한 공간에서의 함수는 위에서 비유한 인생의 고통에 대한 함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인생의 고통을 독서라는 다른 공간으로 해석함으로써 우리는 고통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다. 라플라스 변환을 배운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지막에 다시 원래의 공간으로 회귀하여 미분방정식을 해결할 수 있다. 그렇듯 우리의 고통도 독서(라플라스 변환)의 과정을 통해 더 간단한 형태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독서(라플라스 변환)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면 해결하기 어려운 난관의 순간(고난도의 미분방정식)에 도래할 때마다 포기하기 쉽지만, 독서를 즐기고 사색에 잠기는 사람들은 고통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시야(미분방정식의 해결 도구)를 얻게 될 것이다. 현재의 고통이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독서라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삶의 조화로운 일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푸리에 변환은 복잡한 파동을 여러 개의 단순한 주파수 성분으로 분해하는 과정으로, 이는 복잡한 인생을 단순한 성찰로 분해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우리 삶의 고통도 단순한 고통이 아닌, 다양한 크기와 주기로 나타나는 여러 고통들이 합쳐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아성찰(푸리에 변환)을 통해 복잡한 인생에서의 고통의 원인을 분석하고 단순한 형태로 분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이다. 혹자는 너무 복잡하기에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회피일 뿐이기에 결국 고통의 난관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우리는 자아성찰(푸리에 변환)로 고통의 주파수를 낮추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으며, 이는 삶을 더 지혜롭게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과정임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 성과는 step funtion의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흔히 성과가 선형적으로, 노력하기만 한다면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성과는 step function 형태로 나타나며, 연속적이지 않고 임계점을 넘는 순간 갑자기 도약하게 된다. 다음은 step function의 그래프를 나타낸 사진이다.
불연속적인 구간을 살펴보면, 인생의 정체기처럼 고통의 축적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미분적으로 보면 변화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적분적으로는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성과를 매 순간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축적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대게 그 과정을 기피하려 하지만, 인내하고 견디는 자에게 달콤한 성과가 주어지는 것이다.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미분적으로 보면 정체 상태이지만, 적분적으로 보면 결국 계단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게에 더더욱 우리의 고통을 적분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 함수를 다양한 실제 사례와도 연결이 가능하다. 우리는 대부분 학습, 운동, 독서, 자아성찰을 기피하려 한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통이 우리를 성장시켜준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혹자는 고통의 자유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누군가에게 고통을 받음으로써 그 심리를 충족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현실의 성과는 step function의 형태를 띠며, 보이지 않는 정체기의 축적이 결국 급격한 도약을 만든다. 그것은 본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통에 맞서 극복한다면 좋은 성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학적 관점으로 고통이라는 관념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고찰이며, 현실에서는 훨씬 더 복잡한 고통의 그래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또는 흥미를 가지고) 읽어주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깨달음, 그게 과분하다면 작은 위로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전해졌으면 한다. 공대생으로서의 내가 그냥 힘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이런 고찰에서 전해줄 수 있는 위로의 메시지가 더 인상적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