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17>에 대한 고찰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파고드는 영화

by MDJ

최근 영화계에서 뜨거운 감자인 <미키17>의 반응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1주일 전에 여자친구와 보고 나오자마자 했던 말이 이 영화는 인생 영화가 될 자격이 있다는 말이었는데, 대중들의 반응은 냉혹했다. 봉준호 작품 중에 역대급 저점인 영화, 재미도 감동도 없는, 한국 감성이 숨겨지지 않는 최악의 영화라는 평 등 같은 걸 본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왜 그렇게 반응이 갈리는지, 또는 왜 그렇게 인생 영화라고 극찬하는지가 궁금하신 독자분들이라면 앞으로 써 내려갈 나의 감상 및 분석에 주목해 주셨으면 한다.

1. <미키7>과 비교했을 때의 감상

군생활 도중에 미키7을 읽어본 적이 있다. 미키7은 SF 소설로서 전개가 비슷한 듯 다르게 흘러가는데, 스토리가 오로지 내 머릿속에서만 전개되다 보니 내가 상상하는 대로 장면이 구현된다. 하지만 미키17에서는 cg로 구현한 괴물과 배경이 봉준호 감독이 의도한 상상의 나래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가 가미된 스토리의 전개는 점입가경이다. 미키7을 감상한 경험이 있더라도 미키17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영화로 구현해낸 것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2. 봉준호 감독의 철학

사람들의 평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다. 기생충이 대중화되면서 봉준호 감독의 작품성을 인정하고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더라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기생충에서 느낀 점을 찾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미키17을 보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이번 작품도 역시 인간의 역겨운 심연을 너무나도 잘 드러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기생충을 보고 나서 작품의 해석에 흥미를 느끼고 스스로 해석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번 영화는 인생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SF라는 장르로 둔갑하여 순수문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이번에도 뒤통수를 한 대 때리는 봉준호 감독이다.

3. 영화가 주는 메시지 (스포주의)

내가 고찰해 볼 만하다고 느낀 메시지는 크게 3가지이다.
첫째, 만약에 내가 미키와 같은 상황, 즉 나와 똑같은 기억이 저장된 복제인간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내 애인이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봉준호 감독이 설정한 멀티플이라는 요소는 인간의 이기심과 복제인간의 정체성, 더 나아가 그 기술이 미래에 사용될 때 어떻게 될지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까지 함축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복제인간 또한 서로 다른 인격체로서 보인다. 미키17의 대사에 의하면 이전 미키들은 성격과 행동 양식이 전부 달랐다고 한다. 즉, 나와 똑같은 기억을 가진 인간이라고 해서 그게 나 자신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 뉴런과 신체가 같다고 해서 마음까지 같지는 않다는 것을 미키17과 18의 대립되는 성격에서 보여준다.

둘째, 인간은 같은 종의 관점에서든, 다른 종의 관점에서든, 심지어 다른 외계 생명체의 관점에서든 역겹고 이기적인 면이 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일파와 케네스 마샬, 그리고 그들 앞에서 굽신거리는 모든 이들이다. 이 인물들은 비록 주어진 환경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우리 현실 사회에서의 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체재에 순응하면서도, 본인들의 안위를 위해 어떻게든 권력자에게 아첨하는 평범한 시민들, 허구의 추종 거리를 만들어 권력을 유지해나가는 권력자들, 그리고 그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까지 모두 현대에도 존재한다. 특히 영화를 보던 도중 미키17이 마샬의 식사에 초대되어 카이와 함께 식사하는 장면에서 나의 내면은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권력자들의 뉴런 구조는 쓸모없는 시민들의 목숨에는 관심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게 설계되었고 쓸모 있는 시민들을 어떻게든 본인들의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었다. 그 메시지와 대조되는, 교양 있는 클래식 음악은 블랙 유머의 정점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크리퍼를 무자비하게 학살하고자 하는 야망 또한 역겹게 잘 표현하였으며, 그 장면들로 하여금 미국인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 같았다. 그 장면은 미국 원주민 학살을 연상케 한다. 그들은 외부인들을 해칠 의도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미키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어찌 보면 영화의 트리거는 외계 생명체의 이타심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인간은 어찌 그리 이기적인 생명체일까,라는 봉준호의 메시지가 우리의 가슴에도 비수를 꽂는다. 번외로 하나만 언급하자면, 티모라는 인물은 가장 흔한 대중의 면모를 보여주며,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게 설정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중 그 누구라도 애인이 아닌 친구와의 관계에서 본인의 목숨을 희생하여 친구를 살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화 속 티모의 행동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물론 초반부에 등장하는 티모의 모습에서는 인성에 문제가 많다고 느끼긴 했다. 나샤, 카이 또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기적인 이타성을 가진 인물이다.

셋째,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존재이다. 만약 인간의 역겨운 모습만 보였다면 기생충처럼 마음이 찝찝한 상태로 영화를 보고 인생 영화라고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미키는 나샤와 사랑에 빠지고, 나샤는 익스펜더블로서 인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하는 미키를 항상 곁에서 챙겨준다. 몇 번째 미키든 똑같이 사랑해 주고, 심지어 미키17과 18이 같이 있는 상황에서도 둘 다 사랑한다. 미키18은 소위 말해 착한 또라이로 등장하지만, 그러한 나샤를 보며 나샤의 사랑에 목숨으로 보답해 준다. 폭파 버튼을 눌러야 하는 상황에서, 17을 누르면 미키17과 나샤가 죽지만, 18을 누르면 본인만 죽는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솔직히 나샤가 거기에 없었다면 17을 눌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라면 복제인간의 목숨을 위해 내 목숨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상황이라면 이성적인 판단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까지 우리의 목숨을 위해 희생시킬 수는 없다. 나샤가 미키17과 자신을 둘 다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자살 버튼을 누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을 버리고 충동적인 판단을 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번외로 얘기하자면, 육체적 사랑(?)이 없었다면 멸망 엔딩이었다는 것은 영화를 보고 온 사람이면 웃으면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감상이다. 매우 개인적인 고찰이지만, 그래도 나의 고찰이 누군가의 감상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ps. MBTI가 IN인 사람에게 이 영화를 특히 더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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