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집인가, 끈기인가?

혁신의 문턱에서 버틴 사람들

by 에스에프써티포

혁신이라는 말은 늘 반짝이지만, 그 그림자에는 언제나 고독한 외침이 존재합니다.
대부분은 ‘지금의 문제’에 집중합니다. 그게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소수는 ‘내일의 가능성’을 봅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 모두가 “그건 안 돼”라고 말할 때

누군가는 “그래도 해볼게요”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버티면 ‘끈기’가 되고 무너지면 ‘아집’이 됩니다.


이토록 결과론적인 정의는, 때로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공하면 끈기, 실패하면 아집"이라는 말이, 그 사이의 모든 노력과 감정을 지워버리니까요.

끈기와 아집 사이, 그 경계에 선 사람들


1. Airbnb – “남의 집에 잘 사람이 어딨어?”


“거실에 에어 매트리스를 깔고 낯선 사람을 받자”는 아이디어.
누가 봐도 이상했습니다. 실제로 투자자들은 외면했고, 서비스도 한참 버벅였습니다.


하지만 브라이언 체스키는 직접 유저 집에 찾아가 물어보고 고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몇 주, 몇 달이 지나자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세상은 그 ‘이상한 아이디어’에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2. Dyson – “진공청소기가 뭐 얼마나 다르겠어?”


무려 5,127개의 프로토타입,
15년의 집착, 그리고 수많은 “안 팔린다”는 말.

다이슨은 누구보다 오래 버텼고,결국 세상을 바꿨습니다.

기계는 그를 배신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결국 그의 기술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3. Slack – “망한 게임에서 나온 채팅툴?”


실패한 게임의 부스러기에서 슬랙은 태어났습니다.

내부 협업용 채팅툴이 우연히 빛을 보게 된 것이죠.


그러나 그 이후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메일 없이 협업할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장점을 밀고 나간 집요함이 슬랙을 세일즈포스 품으로 이끌었습니다.


4. Figma – “웹에서 디자인? 그림판이야?”


웹에서 디자인 툴을 만들겠다던 딜런 필드.

말도 안 되는 소리였죠. 그런데 그는 4년 넘게 묵묵히 버텼고,

팬데믹과 함께 기회는 찾아왔습니다. 이젠 누구나 Figma를 씁니다.

‘포기하지 않은 웹툴’이 어도비도 사려고 했던 기준이 됐습니다.


5. Netflix – “DVD를 우편으로? 스트리밍은 또 뭐야?”


처음엔 우편 DVD, 그 다음은 스트리밍. 기술적 한계도, 사용자 반감도 있었죠.

하지만 넷플릭스는 ‘추천 알고리즘’과 ‘사용자 경험’에 끈질기게 집착했습니다.

그 결과, 세상은 TV에서 벗어났고

넷플릭스는 콘텐츠 왕국이 됐습니다. 이외에도


스타킹을 잘라 새로운 시장을 연 Spanx,

‘누구나 디자인’을 실현한 Canva,

창작자 구독 생태계를 만든 Patreon,

조용히 퍼지다 폭발한 Notion,

언어 교육을 게임처럼 바꾼 Duolingo까지.

이 모든 사례는 처음엔 “말도 안 돼”라는 말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말 속에서도 끝까지 버텼기에,지금의 그들이 존재합니다.


아집과 끈기, 그 경계에 서 있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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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내가 지금 고집하고 있는 건 단지 ‘이기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믿기 때문에’인지.


끈기와 아집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그래서 정답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실패하더라도 ‘검증’은 해야 후회가 없다는 것.
그것이 시장을 설득하는 유일한 방법이자,
나 자신을 납득시키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누군가는 “세상은 안 바뀐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내가 조금 바꿔보겠다”고 나섭니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우리는 오늘의 혁신을 누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고집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요?
그것이 누군가의 불편을 해결하고,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건 ‘끈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직 결과가 없더라도 괜찮습니다.
그 경계에 오래 머무른 사람이 결국 세상을 바꾸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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