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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교시 Dec 04. 2021

거짓말쟁이 교사가 되는 이유!

일 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12월 만의 설렘이 있다.

학기말 충격적인 업무 속에서도 설레는 이유는 바로 크리스마스 때문.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는 두 가지 고민에 빠진다.

하나는 '올해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은 뭘 해주지?'이고, 다른 하나는 '올해는 어떻게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속이지?'이다.

 일 학년 교사의 행복은 뭐니 뭐니 해도 아직 일말의 동심이 있는 아이들을 골리는(?) 재미에 있지 않을까. 그 재미를 나 혼자 본다는 게 아쉽지만 말이다.

 '요새 일 학년은 산타할아버지 안 믿지 않아요?'라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정확히 말하면 열린 결말의 느낌이랄까? 게다가 교사는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선생님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무언의 믿음이 있다.




학교 곳곳에서도 제법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오던 12월의 어느 날 이었다. 우리 반에서 똑순이 윤아와 발갛게 상기된 볼이 복숭아 같은 준수가 투닥투닥 싸우고 있었다. 싸움의 요인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 유무.


"산타클로스는 없어!"

"아니야! 있어! 나 작년에 선물 받았어!" 

"그거 다 엄마, 아빠가 사준 거거든?"

"아니야! 진짜거든!"


자신의 주장이 도통 먹히지 않자, 윤아는 논리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너희 집은 굴뚝도 없는데 어떻게 산타할아버지가 들어오냐?"


준수도 질세라 자신의 논리로 윤아에게 따졌다. 


"산타할아버지 썰매는 뭔데? 산타할아버지는 하늘도 날고 통과도 할 수 있거든?"

"어휴, 참 너도 진짜. 선생님한테 물어볼래?"


윤아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어 번 치더니 쪼르르 다가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산타클로스는 없지요!?"


준수도 질세라 말을 가로챘다.


"아니죠, 산타할아버지 있지요?!"


저 순수한 눈망울을 보라. 나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다. 아니, 못한다. 못해. 잠시 망설이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거짓말을 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음~ 산타할아버지 있는데요~?!"


윤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 아닌데? 산타할아버지 없는데?"

"선생님이 증거 보여줄까요?"


증거를 보여준다는 말에 어느새 다른 아이들도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저도 보여주세요!"

"저도요!!"

"자, 조용조용. 모두 자리에 바른 자세로 앉아보세요. 착한 어린이들한테만 산타할아버지 보여줘야지~"


아이들의 엉덩이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는 온몸에 있는 군기 없는 군기 세워가며 바른 자세로 나를 바라봤다. 괜히 배시시 새어 나오는 입꼬리를 마스크로 가렸다. 이럴 때면 나도 꼭 얄궂은 어른이 된 기분이다. 자리에 앉히는 것조차 착한(?) 어린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다니. 크리스마스는 사실 어른들을 위한 거다.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를 볼모로 수개월간 착한 어린이가 돼야 한다고 협박하는 어른들을 위한.


나는 눈을 감고 30까지 세보라고 한 뒤 얼른 유튜브에 산타마을이라고 검색했다. 중간중간 아무도 눈을 뜨지 않아도 "어허, 누가 눈을 뜨고 있네요.~" 하며 찡그린 눈을 더 꼬옥 찡그리는 아이들을 귀엽게 힐긋거리며.


아이들이 "이십팔, 이십구, 삼십!!"이라고 외치자 "짜잔~" 하며 스위스 산타마을 영상을 보여줬다. 아이들은 우와!라고 하며 저마다 한 마디씩 해댔다.


"역시 산타 할아버지는 있었어!"

"선생님 저 작년에 산타할아버지가요~ "

"선생님! 산타할아버지가 여러 명이네요?"

"산타할아버지는 제가 사달란 거 안 사주고 맨날 책만 사줘요!"  (민준이 어머니... 왜..그러셨어요...)


별의별 얘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쳐주고 있는데 윤아가 물었다.


"선생님, 그런데 저 작년에 말 잘 들었는데 왜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엔 안 오셨을까요?"

"저기 봐, 저 몇 명 안 되는 산타할아버지들이 전 세계를 가야 해서 너무 바쁘면 어떤 곳은 못 가기도 해. 그럴 땐 보이지 않는 선물로 주시기도 한대. 건강이나 행복 같은. 혹은 좋은 친구 같은! 윤아는 그런 선물을 받은게 아닐까? 정말 정말 바른 어린이니까."


팔짱을 끼고 골똘히 생각하던 윤아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럼 왜 엄마는 산타가 없다고 했을까요?"

"그건 말이지...."


나는 뒷짐을 진 채 뜸 들이다 속삭이듯 얘기했다.


"사실 산타할아버지는 자기를 믿는 사람에게만 존재하거든! 그런데 어른들은 산타를 믿지 않아. 그래서 어른들은 산타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엄마가 거짓말을 하신 건 아니야! 진짜로 산타를 잊어버린 거지... 산타할아버지는 산타할아버지를 믿는 아이들에게만 가니까." 


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언젠가 윤아도 이런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 만큼 크겠지? ... 그때 윤아가 다가와 내 귓가에 속삭였다.


.

.

.

.

.

"선생님, 저도 사실 산타 믿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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