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교시 Sep 27. 2022

아픔이 있는 교사는 아이들을 통해 빛난다.

일 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나의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혼하셨다. 요새 이혼이 무슨 대수냐는 지인도 있었지만, 9살 인생에 있어서는 꽤나 대수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집은 나에게 엄마가 반겨주는 공간이었는데, 한동안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 집은 꽤 고독히 나를 반겼다.

 집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꽤 흥미로운 시간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간식들로 가득 채워놓은 간식함을 발견했을 때 그랬고, 옷상자마다 계절별 옷이 나뉘어 내 이름이 매직으로 또박또박 쓰여있는 것이 그랬고, 주인 잃은 화분 몇 개가 덩그러니 베란다 한 켠에 남아있는 것이 그랬다. 마지막까지 수고롭게 이것을 채워가고, 정리해갔을 엄마를 떠올리며 서서히 낮아져 가는 엄마의 온기를 느꼈다. 간식함이 텅 비고, 계절 상관없이 옷이 뒤섞여가고, 화분이 누렇게 변색 될 즈음에서야 비로소 이제는 더 이상 이 집에서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게 9살 끝자락이었다.

 내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을 무렵부터는 무던히 '엄마 없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애를 썼다. 나름 사고한 번 치지 않고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때 당시 이혼 가정의 어린이로서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엄마의 빈자리 영역'이 있었다.

 선생님이 가족 소개 관련 숙제를 내주실 때 가족 사진을 가져오지 못해 혼났던 일이라던지, 운동회나 학부모 초청 공개수업과 같은 행사에 안 올 줄 알면서도 수차례 뒤돌아 부모님을 찾는 일이라던지, 스승의 날 다른 아이들이 가져온 선물들 사이 내 용돈으로 산 빨간 프링글스 통을 바라보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던 순간이라던지, 갑작스러운 비에 마중 나온 엄마와 함께 집을 가는 아이들 사이로 가방을 머리에 인 채 눈물과 함께 달렸던 순간들이 그랬다.

 누군가는 ‘스승의 날을 챙기지 않으니 아이들이 교사를 공경할 줄 모른다.’라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요새는 학교 행사에 학부모를 잘 초청하지 않으니 추억이 없겠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런 부분이어떤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좀 더 나은 세상에 되어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교육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스승에 대한 감사함을 교육할 수 있고,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추억을 남겨주고 있다. 공교육에서조차 그런 모든 활동을 부모님과 함께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세상을 홀로 살아가기 전부터 홀로 살아가야만 하는 어떤 어린이들에게도‘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너희에게도 공평해.’라는 환경과 믿음을 만들어주는 것이 공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믿는다.


 우리 반 현준이는 내 손을 좋아했다. 아침에 오면 내 손을 잡고 자기 볼에 가져다 부비며 살냄새를 맡거나, 내 손을 목에 끌어안고 앞장서서 걸어 다니곤 했다. 하지만 나와 있을 때 온순한 모습과 달리 친구들과의 교우관계에 있어서는 서툴렀다. 그래서 아버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학교에 오기 싫어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과서의‘가족’단원을 나가던 중 현준이가 엄마 손 잡는 걸 좋아했고, 지금은 더 이상 엄마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들은 오히려 자신의 슬픔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한다. 그리고 현준이는 자신의 슬픔이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비밀이 되어야 하는지 아직 모르는 나이였다. 나는 그저 비밀 없는 나이의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달려가“현준이는 엄마가 없대!”라고 설명했을 때, 아이의 부모님이 별다른 편견의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아침에 학교에 오면 컴퓨터를 켜고 나서 꼭 손을 씻었다. 그리고 현준이가 등교하면 내가 먼저 비누향 나는 손을 내밀기도 했다.‘내가 이렇게 손을 잡아주면 그래도 아침에 학교 오는 게 좀 더 좋지 않을까?’하고. 그런 내 마음을 느꼈는지 어느 날 현준이가 말했다.     

“선생님 좋아. 엄마! 엄마라고 부를 거야.”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 전, 그 찰나의 머뭇거림이 사라지도록 현준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현준아, 선생님도 현준이가 참 좋아. 선생님은 엄마가 될 순 없지만, 엄마처럼 좋은 선생님이 되도록 노력할게.”     



 동학년 협의회 시간에 모여 얘기를 나누던 중 한 동료 선생님이 학급 내 학생의 문제 행동에 대해 고민하시며 조언을 구하셨다. 옆에서 듣던 다른 교사분이‘이혼 가정 애라서 그래.’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아직 교육 현장에서 더 바뀌어야 할 무언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겪지 못한 아픔을 겪은 아이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더 심사숙고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부족하지만 생각해봤다.

  아픔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교사가 되면 좋겠다매해 다양한 아픔을 가진 교사들을 만나며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는 교사를 대학을 가는 그 순간까지 한 명이라도일 년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이전 18화 거짓말쟁이 교사가 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