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이후, 나는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을까
20대 초반, 친한 후배가 말했다.
“언니, 어제는 연필을 스무 자루나 깎았어요.
난 외로울 때마다 연필을 깎거든요…”
범생이 고등학생의 모습 그대로 지내던 후배는 어느 날 꽤 비쌌던 메이커 청바지를 사서 바로 밑단을 잘라 세탁기에 돌렸다고 했다. 밑단이 술처럼 풀어진 청바지를 보며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제는 너무 쓸쓸해서 청바지를 잘랐어요.”
어느 날은 머리카락이 귀밑까지 껑충 잘려 있었고 어떤 날은 기초화장만 하던 아이가 진한 화장을 하고 나타났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후배는 대학이 목표였던 시간을 지나, 대학생이라는 이름과 함께 지워진 자율과 책임이 버거웠던지 훌쩍 유학을 떠났고, 그 뒤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내일 배움 카드로 배우는 캘리그래피.
8주 동안 화요일 오후 7시~10시.’
강북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온 문자다.
4개월 동안 쉬면서 배움을 이유로 월요일부터 금요일, 어떤 때는 토요일까지 출근하듯 달려왔다. 지쳐 있던 참이었다. 이제는 뭐든 새로 시작하지 말고 직장과 해오던 일상에 충실하자고 스스로 타일렀건만… 또 신청하고 말았다. 이 불가항력은 대체 뭘까.
첫 수업, ‘감성공장’이라는 앱을 다운로드했다. 앱에 있는 배경에 내가 쓴 글씨를 합성하려고 사진을 고르던 중, 내 눈이 머문 사진 한 장.
벚꽃 만발한 교정에서 활짝 웃고 있는, 귀여운 단발머리 소녀.
너는 피구를 좋아해서 중학교 내내 피구부를 하고 대회에 나가 상도 탔지.
공을 잡기는 무섭고 제일 잘하는 건 끝까지 살아남는 거라고 종알거리는 네게
"피구는 잘 피하는 게 최고지."
이런 말을 했지.
구기종목이 영 어색했던 학창시절 (신체지능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게 아니라 평균 이하인 듯) 체육시간에 피구라도 할 땐 공 맞아 죽고, 나오면서 꼭 한 번 더 맞아 조바심 내며 수비 자리로 종종걸음치곤 했던 나와는 많이 달랐어.
아침 자율학습 1시간 전에 등교해서 쉼 없이 뛰다 1교시 시작했는데 손까지 떨렸다는 얘길 들을 땐 경이롭기까지 했단다. 머리 좋다는 말이 아닌 '성실하다'는 말로 평가받았던 너는 전교에서 1명 받는 국가 장학금을 받 사교육비로는 처음으로 그토록 원했던 영어학원을 다녔지.
안정되지 않은 삶의 터전으로 인해 학교 가는 벚꽃 가로수길을 울면서 다녔다고... 누구도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서야 한다고 다짐했다는 너의 늦은 고백.
나는 핸드폰 갤러리에 박제된 듯한 그 환한 사진을 외면하고 얼른 글씨를 찾아 배경 있는 글씨 사진을 완성했다. 다시 붓펜으로 글씨 쓰는 데 집중한다. 애써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는 듯.
그 때문이었을까.
막연한 불안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나는 그림을 그리고 노트를 열어 막스닥스(막 쓰고 닥치는 대로 쓰기)를 했다.
아파서 쉬었던 2024년 뜨거웠던 여름 내내 치료를 받으며 요리를 두 달간, 주 5일 배웠고 노인요양사 과정을 실습까지 포함해 하루 8시간씩 한 달 넘게 수강했다. 어린이집 교사로 다시 취업한 뒤에는 적응하느라 바빴다. 그러면서도 나는 7개월 과정의 글공동체 일원이 되어 과제를 하며 더 바쁠 수 없는 삶을 살았다.
과유불급이거늘. 작년과 올해의 휴식 시간은 마치 누군가 딴생각을 못 하게 하려는 듯, 내 삶을 낚아채 가는 시간처럼 흘러갔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기도 했지만 비로소 왜 그토록 나를 모질게 몰아갔는지 저녁 7시에 시작해 밤 9시 지난 캘리그래피 시간에 선명해지는 감각.
그리움...
짝사랑조차 애초에 포기하는 현실주의자인 내가 2년 반 동안 앓고 있는 이름.
내 삶에서 참으로 의미 있는 존재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애달픈 울음소리를 내는 것뿐이었다.
그 울음이 가신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살아 있어야 했고, 살아내야 했지만 진이 다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 생각의 함몰로 인한 무기력과 그 위태로움이 불안해, 발딱 일어나 강박적인 달음질을 반복하며 여기까지 왔다.
보고 싶다.
많이 보고 싶다...
존재의 그리움이 이러함을, 상실 이후 감각의 파도가 온 몸과 정신을 후려치고 나서야 비로소 인식한다. 부인과 합리화, 좌절을 지나 원망도 미움도 아닌, 그저 따뜻한 한마디 위로를 전할 수 없는 애틋함이 커져 가슴앓이가 되었음을.
후배는 스무 살에, 자신의 쓸쓸함이 어떤 행위로 이어지는지 어찌 그리 생생히 알고 있었을까.
나는?
나는... 여전히 흔들리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은 용기 내어 시도하는 중이다. 한다고 했는데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 고통이 디폴트인 삶. 모양은 달라도 나만 느끼는 아픔은 아닐진대, 어쩔 수 없이 '살아내는 것' 말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
끼니 때면 밥 잘 챙겨 먹고 밤이 되면 딴짓하지 않고 잠들 수 있도록 나를 돌본다.
그렇게 불안에 떨던 앙상한 나뭇가지도 겨울을 지내고 나면, 봄이 되어 꽃눈을 틔울 테니.
오래된 기억 속에 있는 후배에게, 지금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그동안 자기 마음을 잘 다독이며 지냈는지 글로나마 안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