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과일 있어요?
늦가을 바람은 쌀쌀했다.
고3이었던 나는 야간 자율학습 후, 주소와 정류장 이름이 적힌 쪽지를 들고 이사 간 집을 찾아갔다. 버리고 줄여도 7식구 짐이 들어가기엔 비좁아 짐이 짐을 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오늘 밤 잠이나 잘 수 있으려나.’
한숨이 나왔다.
그때 열어 둔 창밖으로 검은 그림자가 재빠르게 지나갔다. 다세대 가구 주변을 점령하고 있는 들고양이다.
겨울이면 결로로 가구 뒤에 짙은 회흑색 곰팡이가 올라왔고, 부엌은 천장에 백열등 하나 달린, 두 사람이 앞을 보고 지나가기도 비좁은 공간이었다.
송파구 가락동에서 고만고만하게 지내던 때였다.
아버지는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젊은 시절에는 집을, 중년에는 전세금을 날렸다. 남은 건 보증금 200만 원이었다.
거여동 비닐하우스 집까지 염두에 두었으니 내가 기억하는 가장 추웠던 시기다. 외부에 있는 공동 화장실은 할머니에게 위험할 거라며 엄마는 7식구가 길에 나앉지 않게 하려고 발품을 팔았다. 이사 가기 전날 기적같이 얻은, 문정동 반지하 보증금 200만원 월세 집.
“엄마, 과일 있어요?”
하교 후 현관문을 열자마자 인사 다음으로 나는 과일의 안부를 물었다. 변변찮은 간식거리 없는 집에서 일상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건 식탁 위에 1인분씩 소분된 과일 조각.
사과 한 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퍼지는 연노랑 단물. 입 안에서 울리는 사각사각 소리가 시원했다.
엄마는 이른 아침, 문정동 가까이에 있는 가락동 농산물시장에 오래된 카터를 끌고 갔다. 새벽시장, 도매가 끝나고 한산해진 그곳엔 정품으로 빠지고 남은 B품 과일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에 떨어져 멍든 사과, 삶에 부대껴 흠집 난 사과들. 소박한 상자 안에 올망졸망 겸손히 들어앉은 ‘그래도 사과’. 가성비와 가심비를 충분히 만족시키며 우리 집에서 환영받던 과일이었다.
문을 열고 활짝 웃었던 엄마의 미소가 아련히 나의 입가에 떠오른다. 할머니는 만성 변비로 좌약 없인 하루도 편할 날 없었고, 엄마는 날마다 사과를 잘게 썰어 결혼 생활 내내 시집살이시킨 시어머니를 봉양했다.
내 꿈은 마당에 과일나무를 심고 계절마다 과일을 따 먹는 거라고 말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과일은 사람의 손길이 닿기 이전,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간식.
사과, 포도, 복숭아, 석류. 어느 것 하나 부족할 것 없이 각자의 모양과 색깔, 향을 지닌 자연의 선물이다.
특히 나의 마음을 끄는 것은 화장이라도 한 듯 매끈한 과일이 아니라 조금은 부족한 듯, 배시시 웃고 있는 그것이다.
귤은 시골 아낙의 발그스름한 얼굴에 뿌려놓은 주근깨 같은 점이 있는 것, 자신의 모습을 조금은 감추고 싶어 흠집 난 얼굴을 아래로 하고 주인을 기다리는 사과, 알이 굵지 못해 조금 저렴하게 나온 새콤달콤한 흑색 포도.
완전하진 않지만 그 한 알에 깃든 시간까지 헤아려지는 과일. 시장에 가면 그들도 나를 알아보는 듯 하다. 반가이 맞으며 내가 기꺼이 값을 치르고 시장바구니 안에 넣어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가족은 왜 이런 걸 사냐고 묻는다. 선물할 때처럼 우리도 이쁘고 좋은 것 사자고 싫은 티를 낼 때 이런 말이 불쑥 나온다.
“그럼 얘들은 누가 사가니?”
묘연한 관계.
문득 가락동 농산물시장에서 아침마다 과일을 사 온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의 사과. 나는 시장에서 그 사과를 마주하면 차마 떠나지 못하고 손을 내밀고 만다. 물론 맛이 있는 건 기본이고 애써 익어간 그들의 일생을 구제한다는 만족감은 덤이다.
결국 그 시절 내 안의 이야기가 너를 선택하게 했구나.
인풋과 아웃풋.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건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에게 말을 걸겠지.
가능하면 따뜻하고 다정한 것으로 오늘을 채우고 싶다.
엄마의 향과 빛이 담긴,
흠집 난 부분은 도려내고 깨끗한 부분을 골라 깎아놓은 과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