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오랜만에 둘째 녀석과 엄마, 아빠가 함께 드라이브에 나섰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가 밤늦게 귀가하는 고달픈 일상의 고교 2년생이다. 방학도 없다시피 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지쳐있는 아들에게 몸보신겸 기분전환도 시켜줄겸해서 나선 길이었다.
아마 근처 맛집에서 든든하게 소머리국밥 한그릇씩 먹고, 간만에 함께 한 둘째 녀석 콧바람 쐬어준다고 강변을 따라 그 정취도 즐기도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던 때였던 것 같다.
유난히 더운 여름 날씨 탓이었던지 오래된 우리집 SUV 자동차가 소음도 없이 부드럽게 너무 잘 나갔다. 그 느낌에 취해서 제비아빠가 한마디 했다.
“아! 오늘은 정말 부드럽게 잘 나가네. 이 정도면 뭐 폐차시키기는 아깝다.” 이에 질세라
“그렇지? 외관도 이 정도면 깨끗하고, 아직 14만키로도 안 탔는데..... 정부조치만 아니면 한 3년 더 타서 20년 채우는 건데.... 정말 아깝긴 해!”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엄마, 아빠가 17년을 탄 울집 경유차 폐차를 두고, 아깝네, 잘나가네, 아쉽네하며 맞장구에 열을 올릴 때, 아무런 반응없이 보조석에 앉아 창틀에 팔을 얹고 손으로 턱을 괴고 무심히 앞만보고 있던 녀석이 툭 하니 한마디를 던졌다.
“차 한 대 사서, 20년을 탄다?? 하~~ 그건 욕심이다!!”
제 눈엔 아무리 봐도 낡고 오래된 구닥다리 구형차?를 두고 나누는 엄마 아빠의 대화 내용이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숨쉬듯 무심히 혼잣말로 탁 뱉어낸 그 한마디에 우리는 “빵” 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정곡을 콕 찔린 것 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또 울 아들의 말투가 백마디 설명이 필요없이 그 느낌이 그대로 배어나온 탓이기도 했다.
그 민망함에 나는 쌍용이 차를 너무 잘 만들어서 그런거 아니냐? 적당히 만들었으면 중간에 고장나서 몇번은 바꿨을텐데......그래서 쌍용이 망한거라고 시덥잖은 농담으로 응수 했다.
엄마, 아빠가 과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가?
2006년 봄에 우리 둘째가 태어나고, 그해 12월! 이 차가 우리집 새 식구가 됐으니, 따지고 보면 둘이 동갑내기 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아이들의 오랜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추억 덩어리이기도 하다. 잔고장 한번 없이, 사고 한번 없이 우리와 함께 안전하게 17년을 달려왔고, 지금도 늙은 티? 안내고 조용히 우리곁에 함께 하고 있다.
그 때세살이던 우리 첫째는 대한민국 1%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형 SUV 차량의 선두주자로 화면 가득 고급스런 이미지를 풍기던 그 차에 반해서 오랜동안 쌍용의 광팬이 됐었다. 놀다가도 티비에서 그 광고 음악 소리만 들리면 하던 일 멈추고 달려와 티비 앞에 시선을 고정했다. 쌍용차 홈페이지에 가서 보고 또 보고 그렇게도 좋아라 했다. 맨날 아빠처럼 돼서 아빠만 따라다닐거라더니, 하루는 진지하게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나 아빠처럼 ㅇㅇㅇ 안돼면 안돼?"
"왜?"
"나 쌍용자동차 가서 자동차 만들게!"
그 질문이 너무도 진지하고 심각해서 우리는 한참을 웃었었다.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다더니, 아빠가 쌍용차에 밀렸다고 농담을 하면서 말이다. 우리 첫째는 그렇게나 그 차를 좋아라 했다.
우리 차는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이란다. 그전엔 그런줄도 모르고 다녔다.
한국자동차환경협회로부터 우리차가 5등급 경유차이며 노후 경유차 운행단속 시행으로 위반시 과태료가 부과되는데, 그 금액이 10만원이니, 저공해조치를 하라는 안내장을 몇년전부터 받아왔다. 조기폐차나 매연저감장치 부착시 지자체에서 일부 금액을 지원해주니 저공해조치로 프리패스하라고 말이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이런게 다 있어 했는데 정부시책이 확대됨에 따라 우리차를 운행하는데 직접적으로 제한을 많이 받게 됐다.
주중에 미세먼지경보 발령이 뜨는 날이면, 차를 몰고 집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한겨울부터 초봄까지 한4개월 동안은 지하 주차장에 고이 모셔두어야 할때도 있었다. 주말만 빼고.
하지만 주말 외에는 딱히 차 쓸일이 별로 없어서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또 근 3년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장거리 운전을 할 일도,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갈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이런 저런 사정으로 차량 폐차를 다음에, 다음에 그렇게 미루다 올해까지 왔다. 폐차시키기는 아깝고, 미세먼지 저감장치 부착은 부담스럽고 해서 말이다.
미세먼지저감장치 장착은 지자체의 지원으로 50여만원이면 해결되지만 의무사용기간이 2년이다보니, 그 사이 고장으로 폐차할 경우가 생긴다면 지원금을 다시 토해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수도 있다. 그 금액이 총 몇백만원정도다. 하여 가까운 지인들은 그 정도 탔으면 많이 탔다며 다들 조기폐차가 답이라고 입을 모아 조언했다.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조치의 일환으로 배출가스 저감장치(DPF)가 미장착된 노후 경유차량에 대한 운행제한 조치가 이뤄진지는 꽤 됐다. 2017년 서울을 시작으로 매년 경기, 인천 지역으로 확대되더니 지금은 전국으로 확대조치 되었다. 이 낡고 오래된 늙은 차는 서울시내 진입이 금지된지도 꽤 됐다.
오래된 경유차량이 품어대는 배기가스가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킬 뿐만아니라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의 주요 발생원인중 하나이기 때문이란다. 처음엔 미세먼지 경보발령이 뜨는 날만 운행제한이 이뤄지고 어길 시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하지만 근래에는 미세먼지계절관리제까지 실시하여 매년 12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강제로 운행제한을 한다. 대신 5등급 경유 차량이라도 매연저감장치를 장착하거나 조기폐차를 신청하면 일정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정부시책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는 출고시 매연저감장치가 부착이 안된 4등급 경유차까지 확대하여 조기폐차를 지원하고 있다.
차 쓸일이 별로 없는 우리집에서 더 이상 폐차 시키긴 아깝다는 이유로 이 차를 끌어안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올해 12월이 오기전에 과감하게 조기폐차를 신청하고 마무리를 했다. 협회로부터 조기 폐차 대상임을 확인하고, 인터넷을 통해 조기폐차를 신청했더니, 그 확인서가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그리고 집근처 차량폐차장에 전화 한통 했더니, 차량이 견인되고, 폐차가 완료되기까지 2~3일이면 족했다. 웬만한 노후 경유차들이 대부분 저공해조치를 다 해서 그런가보다. 이 조치의 정부지원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나보다.
견인차가 와서 꽁꽁 핸들을 묶고 견인해 갈때, 보내는 내 맘은 아쉬움 가득 눈물까지 날 지경이었는데......
그 일처리는 일사천리 너무 쉽고 빨랐다. 전화 한통으로 17년 추억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참으로 편리하고 간단하고 또 쉬운,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싶은 현실감에 맘이 참 씁쓸했다.
가족 모두 모여 기념으로 단체 사진이라도 하나 찍었어야 하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ㅎㅎ
대신 울 막내랑 나는 차량을 깨끗하게 비우고,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그 아쉬움을 달랬다.
울 둘째에겐 시간날때 기념 사진 한장 찍어 두라고 일렀더니, 그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전송해주었다.
니 동생 보내는 맘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좀 서운하단다.
동갑내기 ㅎㅎ
올해 스무살이 된 울 큰아들은 자기가 면허증 따서 좀 타고 다니게 두지 왜 폐차 하냐고.....
제 인생의 첫차이니, 손수 한번 운전도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집에 와서 17년을 노력 봉사한 우리집 자동차가 우리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되돌아보니 긴 세월이고, 그 오랜 시간동안 우리에겐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사실 난 이 차량에 매연저감장치를 달고, 차박전용차로 내부를 좀 개조해서 나만의 캠핑카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도 좀 있었다. 그 바램은 우리 제비아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은 때가 아닌가 보다.
차 한대 사서 20년을 타고자 하는 바램은 진정 욕심인가?
울 아들의 그 한마디가 뇌리에 박혀, 내가 또 어느 지점에서 그런 과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건 아닌가 하고, 순간순간 생각을 정리해본다.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본다.